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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뉴스AS] 박근혜 대통령 ‘녹화사과’는 어떻게 탄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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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회견 10여분 전 기자들에 통보…엠바고 사유 설명 안해

“의혹 불거진 뒤 사과 전까지 대응이 신뢰 잃게 만들어”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유출과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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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연설문 등이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에게 넘어갔음을 시인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해명과 다른 정황과 증언이 이어지면서 ‘거짓 해명’ 논란이 더해진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의·응답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만 밝힌 ‘95초 통보 사과’가 사전 녹화된 화면이라는 사실에 분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대통령의 사과는 왜 실시간으로 보도되지 않은 걸까요? <한겨레> 청와대 출입기자의 도움을 얻어 25일 기자회견 전후 상황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청와대가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표명한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린 건 이날 오후 3시30분께였습니다. 사과문이 공식적으로 보도되기 30분 전이었죠. 당시 청와대는 오후 3시45분 출입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이 입장을 밝힐 것이며, 오후 4시까지 보도유예(엠바고) 사항이라고 ‘통보’ 합니다. 언론계에서 엠바고란, 주요 기관이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한 뒤,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는 겁니다. 엠바고는 모든 언론사가 수용해야 성립이 되는데요. 청와대는 이러한 고려 없이 보도시간을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한 셈이죠.

그렇다면 기자들은 왜 보도유예 요청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이 춘추관으로 오기 10여분 전에야 기자회견 사실을 급박하게 전달받은 까닭에 보도유예 요청을 수용할지 말지 논의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거의 모든 언론사 기사 마감시간은 오후 4~5시인데요. 여러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큰 뉴스이므로 지면 배치나 방송 순서를 흔들고, 여러 꼭지의 뉴스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었지요.

박 대통령은 오후 3시43분 춘추관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습니다. 사과문을 읽고 기자회견장에서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분이었습니다. 입장 표명 시간이 그렇게 짧을지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이 실제 사과문을 읽기 시작한 시각과 보도 시각의 차이는 약 17분입니다. 이날 청와대는 보도유예 요청 사유를 기자들에게 따로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실시간 중계가 부담스러웠던 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는데요. 이에 대해 청와대 쪽은 “생중계를 하려면 장비 준비가 필요한데 시간이 촉박해 녹화로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춘추관에 들르는 일 자체도 드문 경우인데요. 새해 기자회견을 제외하고 춘추관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난 건 2015년 8월6일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담화 발표 이후 1년2개월 만이었습니다. 이날 노종면 전 <와이티엔>(YTN) 노동조합위원장은 박 대통령 사과문을 미리 입수해 오후 3시59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뒤이어 이런 글을 남겼지요.

한겨레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고도 많은 시민들이 ‘뒷목’ 을 잡는 건 ‘녹화사과’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사과 내용’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국정에 영향을 끼쳤을지를 염려하는 건데, 그러한 의혹을 해소해주거나 설명해주지 않았다. 사과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책임을 진다면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도 전혀 없었다. 대통령이 사태의 엄중함을 이해하고 있는지 또 다시 염려하게 된다.”

<쿨하게 사과하라> 공동저자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사과의 효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고(실수나 잘못)가 일어난 시점과 사과를 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짚습니다. 사과 말고 더는 할 것이 없는, 궁지에 몰려서 하는 사과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지난 9월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운영에 대통령 최측근인 최순실씨가 개입했고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온 이후 박 대통령의 사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여 동안 청와대와 대통령은 대응조차 하지 않거나 거짓 해명을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25일 사과문을 분석할 것도 없이, 대통령이 사과하기 이전 대응은 여론의 지지와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최순실 의혹에 대한 청와대·대통령 반응>

◆9월20일 <한겨레> 케이스포츠 재단 운영에 최순실씨 개입 의혹 보도

→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에 전혀 제가 언급할 가치가 없다”

◆9월20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최순실씨와의 인연으로 발탁됐고 박 대통령의 헬스트레이너인 윤전추 행정관도 최씨 추천이라는 의혹 제기

→ 정연국 대변인 “언급할 만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

◆9월22일 박근혜 대통령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

◆9월27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개입했다는 녹취록 공개

→ 정연국 대변인 “일방적인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10월19일 <제이티비시>(JTBC)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고쳐왔다고 보도

→ 정연국 대변인 “말이 되는 소리인가”

◆10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장서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아는 사이는 분명하나 절친한 건 아니다”

→ 최순실씨가 연설문을 고친다는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당일에도 최순실씨가 국정 운영전반에 관여했다는 의혹 보도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온갖 의혹들이 쏟아져 나와 하나하나에 대해 다 말할 수 없다. 드릴 말씀이 있으면 하겠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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