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 실제 보니 가슴이 쿵쾅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평화교육가 호수씨, 핫핑크돌핀스의 돌고래모니터링 가보니...

한국일보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제주 강정마을에 살아요. 마을 삼촌들이 “예전 강정 바다엔 돌고래들이 참 많았지” 하시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해요. 해군기지가 들어선 지금 마을 앞바다는 많이 변했어요. 시멘트 구조물이 가득하고 물은 흙탕물처럼 뿌옇지요. 돌고래를 봤다는 이야기가 뚝 끊긴 지 오래됐고요. 그 와중에 다행히도 옆 마을 법환에서 보이는 범섬 주변과 반대편 옆 마을 월평 쪽 바다에서 아주 간간이 돌고래들이 나타나곤 하네요. 이래저래 듣는 이야기들 때문에 제 마음속에 돌고래를 실제로 만나고픈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작년부터 ‘핫핑크돌핀스’와 함께 어린이 돌고래캠프와 정기 모니터링에 참가하며 돌고래를 만나기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매번 허탕만 치고 말았지요.

그런데 마침내 ‘그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찾아온 10월에 참가한 돌고래 모니터링에서 입니다. 친구들로부터 영락리 쪽 바다에 돌고래가 자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솔직히 이번에는 보겠거니 예상하기는 했어요. 그래도 돌고래를 실제로 보는 것이 어떨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오전 11시부터 모니터링이 시작되었어요.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차로 이동하기도 했지요. 갑자기 큰 카메라를 든 친구들이 멈추어 시선을 고정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눈길과 발길을 재촉하며 얼른 바다 쪽을 바라다보았지요. 아직 관찰이 익숙지 않아서 앞에 나타난 돌고래를 찾기도 쉽지는 않았어요. 찰칵찰칵 옆에선 바쁘게 사진 찍는 소리가 났지만 일렁이는 파도인지 돌고래의 지느러미인지 분간이 잘되지 않았어요. 마음은 초조해지고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얼마나 바라보고 바라봤는지 모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드디어 비명을 질렀습니다. 돌고래가 힘껏 뛰어오르자 저도 모르게 함께 폴짝폴짝 뛰었어요. 아! 그때의 감격과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230㎏ 가까이 되는 남방큰돌고래가 그 정도 높이로 점프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햇빛에 반짝이며 일렁이는 파도와 함께 매끈한 피부를 빛내며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며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릅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들을 눈으로 한 번 쫓기 시작하니 바라보는 것을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혹시라도 눈을 깜박하는 사이, 고개를 잠깐 돌리는 사이 돌고래들이 지나 가버리면 어쩌나 하며 한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요. 솔직히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어요.

이처럼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돌고래를 만나는 순간을 기다린 일은 제 마음을 설레게 하고 제 몸을 흥분하게 했습니다.

한국일보

제주도 대정읍 바다에 돌고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양상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씁쓸하고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어요. 저희가 해안가 위치를 바꿔가며 돌고래를 기다릴 때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낚시꾼도 제법 되었고 놀러 온 관광객들도 꽤 있었어요. 자신들이 묵는 펜션 앞바다에 돌고래들이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제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돌고래를 목격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환희에 차 보였어요.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더군요. “우리 오늘 돌고래 봤으니 로또 사야겠는걸”, “에이, 돌고래가 점프를 좀 더 했으면 좋겠네, 사진 찍고 싶은데 말이야. 더해봐 더해!” 이런 말들을 들으니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왔습니다. ‘돌고래를 보는 것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구나’라는 것입니다.

바다에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면서도 마치 돌고래쇼를 보는 듯 자신들이 원하는 포즈를 취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돌고래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떻게 하면 돌고래를 보호할 수 있는지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습니다.

모니터링 중에 영락리와 무릉리에 계획된 풍력발전소에 반대하는 양식업자분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마을 주민이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더라고요. 한 주민은 자신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앞바다에 아침이면 떼를 지어 놀고 있는 돌고래들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셨어요. 그분의 핸드폰 사진 폴더에는 온통 돌고래 영상이더군요. 영상을 보여주시는 내내 돌고래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질 못하셨어요.

“매일 아침이면 요 녀석들이 나타나요. 어떤 날 안 나타나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진다면, 돌고래들은 더 이상 여기에 살지 못할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해요"”이렇게 말씀하시는 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점차 노을로 물들어 갔습니다. 햇빛도 강렬함이 누그러져 부드럽게 반짝이더군요. 해안도로에 다시 차를 세웠습니다. 돌고래를 만나러 높은 바위들을 내려가는 일쯤은 이제 망설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더 가까이 보려고 바다 가까이 다가가 돌고래들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위쪽에서 내려오는 돌고래들이 보이더군요. 오후 내내 만났는데도 다시 보니 또 폴짝 뛰게 되고 탄성을 지르게 되더라고요.

돌고래는 정말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생명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힘이 인간인 우리를 마구 끌어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요 녀석들을 한 번 만나고 나니 자꾸만 바다로 가고 싶어지네요. 눈을 감아도 바다에서 힘차게 헤엄치는 돌고래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일보

평화교육가 호수 씨가 돌고래가 있는 제주 대정읍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양상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물결의 번쩍임을 기뻐하는 듯

따뜻한 선의의 존재,

화관(花冠)으로 항해를 장식하려는 듯,

마치 화병 허리에 띠를 두르듯,

뱃머리를 가로지르며

즐겁게

다칠세라 불안한 마음 버리고

뛰어오르고 밀리고 다시 뛰고

그들은 파도와 숨바꼭질하며...

-마리아 라이너 릴케의 시, ‘돌고래’ 중에서-

호수 (평화교육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