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朴 대통령, 왜 전문가도 아닌 최순실을 택했나

댓글 1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혹만 더 키운 해명

“과거 도와준 인연” 설득력 희박

2014년 이후도 국정 개입 의혹

국무회의ㆍ靑 비서진 자료 등 보유

광범위한 국정개입 가능성 충분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사실상 인정한 ‘비선’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은 한 마디로 ‘왜 최순실인가’다. 최씨가 국정에 개입한 범위와 기간, 역할에 대한 의혹 또한 여전하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되기 전까지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과 관련해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4시 긴급히 마련된 대국민사과 회견에서 472자로 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1분35초 동안 읽어 내려갔다.(▶전문) 먼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이란 단서를 달아 최 씨의 국정개입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 그만뒀다”고 했다. 최씨가 국정에 개입한 기간을 특정하지 않은 채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된 기간만을 인정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비판이 따른다.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 과정을 일체 설명하지 않은 것도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청와대의 대통령 연설문 보좌체계는 이미 취임 초부터 구축돼 있었다. 더구나 박 대통령 연설문은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2004년 천막당사 시절부터 올해 7월까지 전담해왔다. 때문에 조 전 비서관이 올해 초 “(작성해 올린) 연설문이 자꾸 이상하게 돼서 돌아온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것이 다시 회자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최씨에 대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과 새마음봉사단 활동을 함께한 최태민 목사의 딸로 1976년부터 이어온 개인적 인연을 강조한 것이다. 사인(私人)인 최씨를 공무(公務)에 동원한 배경 설명으로는 부적절하다. 최씨는 단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한 뒤 한때 서울 강남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학식이나 경륜을 갖춘 전문가도 아닌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을 첨삭한 이유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셈이다.

한국일보

지난 24일 JTBC 방송이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44건 등 국무회의 모두발언, 대선 유세문, 당선 소감문 등의 각종 발언 자료를 실제 연설 전에 받아봤으며,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이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최씨의 사무실에 있던 PC에 저장된 파일들을 공개한 방송 화면. JTBC 방송화면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 PC에 담긴 문건의 작성 시기는 18대 대선이 있던 2012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모두 19개월이다. 박 대통령 설명대로라면 최씨의 자문이 중단된 시점은 공교롭게도 비선실세 정윤회씨 사건이 터진 때와 맞물린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최씨가 2014년 6월 이후에도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청와대 핵심실세인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인 정호성 제1부속 비서관을 통해 “최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너 받아 검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메일 등을 통해 전달되던 것이 출력한 문건 형태로 바뀌었을 뿐 청와대 문건 유출은 계속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가 개입한 국정의 범위와 역할 역시 문제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씨 소유의 PC에서 확인된 문건 중에는 국무회의 자료와 청와대 비서진 인사 자료까지 포함돼 있다. 인사 자료는 국정원과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하는, 사실상 대통령만을 위한 자료로 꼽힌다. 여권 관계자는 “이런 자료까지 최씨가 볼 수 있었다면 광범위한 국정 개입이 없었다고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설명이 맞는다면, 박 대통령이 알지 못하는 최씨의 국정개입이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과거 대선후보 경선 때도 서울 삼성동팀 논현동팀 강남팀 등으로 불리는 비선조직이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나 친박계 핵심 인사들조차 박 대통령의 최종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다시 보는 '정윤회 파문' 결정적 장면들

☞ 청와대 안에선 무슨 일 있었나

☞ '박지만 vs 정윤회' 청와대 밖 암투의 진실

☞ 과거 속으로… 권력 암투 첫 고리는 '최태민'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