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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수상 거부?…'파격의 노벨문학상' 이후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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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록가수 밥 딜런 수상자 선정 후폭풍

한림원 연락 안 받고 '묵묵부답' 일관

파스테르나크·사르트르 이어 세번째 거부자?

예상 빗나간 출판·서점가 '밥 딜런 자서전'만 인기

'문학의 경계' 놓고 작가들 찬반양론 뜨거워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지난 13일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심사위원회는 “미국의 위대한 음악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며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포크록가수 밥 딜런(75·본명 로버트 앨런 지머맨)을 선정했다. 사랑 타령 일색이던 팝음악에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가사를 녹여낸 밥 딜런은 1990년대 후반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수상을 점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노벨문학상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격렬한 찬반 논란은 물론이고 노벨문학상 후광효과를 기대하던 출판계도 당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여기에 밥 딜런이 수상을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노벨문학상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양산하고 있다.

◇ 한림원 연락 포기한 밥 딜런…혹시 세 번째 수상거부?

노벨문학상 발표가 열흘 남짓 지났지만 밥 딜런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당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했다. 그러나 수상소감은 물론이고 노벨문학상 자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나를 지금 바꾸려고 하나요’(Why Try to Change Me Now)란 제목의 노래를 마지막 곡으로 불러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후 밥 딜런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란 문구가 게시되면서 수상거부 논란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노벨문학상 수상자’란 문구가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 급기야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노벨문학상 선정위원인 페르 베스트베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공영방송 SVT와의 인터뷰를 통해 “밥 딜런의 대응이 무례하고 오만하다”며 현재 한림원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뒤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림원은 현재 밥 딜런과의 연락을 포기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오는 12월 10일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는 밥 딜런이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만약 노벨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한다면 밥 딜런은 역대 세 번째 수상 거부자가 된다. 첫번째 수상 거부자는 1958년에 선정된 당시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이고, 두 번째 거부자는 1964년 수상자인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다. 다만 소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파스테르나크는 정치적인 상황 탓에 불가피하게 수상을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한림원은 수상을 보류했고 이후 1989년 그의 아들에게 대신 상을 주었다.

◇ 빗나간 예상과 뜻밖의 행운

국내 출판계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유력하게 점쳤던 작가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케냐 출신의 응구기 와 티옹오, 미국의 필립 로스, 시리아의 아도니스 등이다. 실제로 응구기 와 티옹오의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와 ‘한 톨의 밀알’ 등은 10월에 출간되기도 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오프라인 대형서점과 예스24 등 인터넷서점들은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꼽혔던 작가들의 책을 미리 구비하며 ‘노벨문학상’ 특수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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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앨리스 먼로, 파트리크 모디아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의 책이 수상 후 한 달여간 1000권 이상 판매되며 최대 4674배의 판매증가세를 보였다. 교보문고도 지난해 알렉시예비치의 수상 이후 국내서 발간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가 330배의 판매신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밥 딜런이 수상자가 되면서 여러 출판사·서점의 기대는 기대로만 끝났다. 다만 밥 딜런이 쓴 유일한 자서전인 ‘바람만이 아는 대답’(2005)만 판매량이 급등했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출간한 문학세계사 관계자는 “2005년 책을 발간할 당시에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수상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밥 딜런의 자서전은 지난 11년간 7000~8000권 정도 팔렸는데 수상 이후 주문량이 급등해 현재 1만 5000부를 더 찍었다”고 말했다. 문학세계사는 예상치 못한 행운에 마치 ‘로또 맞은 것 같다’는 분위기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밥 딜런 자서전 구매계층 중 50~60대 남성이 30%가량 차지하고 여성보다 남성의 관심이 높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밥 딜런의 음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문학의 경계’를 두고 뜨거운 논란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로 발표된 후 열흘간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한림원의 선택이 적절했는지’다. 문학의 경계를 두고 연일 뜨거운 논쟁이 오갔다.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어빈 웰시는 자신의 SNS에 “나도 딜런의 팬이지만, 이것(노벨 문학상)은 노쇠하고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는 히피의 썩은 내 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 상”이라고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바티칸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또한 “밥 딜런의 노래가사 중 일부는 아름다우며 세대에 영향을 미친 진정한 예술가의 작품”이라며 “그러나 딜런은 (작가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이기에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이 필립 로스, 무라카미 하루키 등 진정한 작가에게는 반갑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인도 출신 영국 소설가 샐먼 루시디는 SNS를 통해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부터 노래와 시는 긴밀하게 연결돼 왔다. 딜런은 음유시인 역사의 찬란한 상속인”이라며 밥 딜런의 수상을 지지했다. 최근 박경리문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응구기 와 티옹오도 “한림원에서 밥 딜런의 단순히 대중가수로서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다른 많은 의미를 찾은 것 아니겠느냐”라며 “문학의 폭을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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