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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동물도 남의 속마음 엿보는 능력 지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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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과학

마음 이론


한겨레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무도리 고(Go)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여러 출연자들에게 찾아갈 목표 지점들을 지정해 주고 다른 사람이 어디 갈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지점을 자유롭게 찾아가도록 하는 게임을 벌였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은 오직 사람만 갖고 있다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으나, 최근의 연구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체도 그런 능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한도전’ 무도리 고 특집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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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학과 고인류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이미 20세기에 ‘인간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의 후보를 추리고, 이에 걸맞은 특성을 지닌 초기 인류 화석을 찾고자 노력했다. 인간이 자연의 중심이며 진화의 최종 결과라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상식’을 뿌리째 뒤흔드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과연 ‘인간의 조건’이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트로오돈이라는 공룡이 있다. 백악기 말인 약 7700만년 전에 살던 종으로, 몸무게가 최대 50㎏까지 나가는 비교적 작은 공룡이었다. 수각류의 일종으로 커다란 새처럼 생겼으며, 체구에 비해 뇌가 큰 편이라 상당히 똑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 중 일부 집단은 후기로 올수록 두뇌가 커지는 경향이 있었는데(이 말이 모든 공룡이 두뇌가 커지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뜻은 아니며, 동물 전반에 이런 법칙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즉 뇌가 커지는 것이 진화한 동물의 전제 조건은 아니다) 트로오돈도 그런 집단에 속해 있었다. 두 다리로 걸었고 앞발가락 움직임도 다른 공룡보다 자유로웠다. 본격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살아남은 공룡인 새가 그렇듯 나중에 지저귀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캐나다 국립자연박물관의 학예사 데일 러셀은 트로오돈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두뇌 용량이 사람에 버금가게 커지고 도구도 쓰며 말도 하는, 인간 비슷한 지적 생명체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1982년 발표했다.

러셀은 이 상상 속의 동물을 ‘디노사우로이드’(Dinosauroid)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하면 ‘공룡인’이라고 할까. 비록 검증할 방법이 없는 흥미 위주의 가설이었으나 전문가가 발표한데다 내용이 그럴듯해 꽤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아이디어라는 비판이었다. 러셀의 가설은 공룡이든 영장류든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똑똑하고 손 잘 쓰며 언어로 대화하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모두 사람의 특징으로 꼽히는 특징들이다. 그가 생각한 상상 속의 공룡인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진화의 결과라고 정해놓은 뒤, 그 싹이 될 만한 요인을 과거의 트로오돈에서 거꾸로 찾은 결과였다.

거의 모든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간이 자연의 중심이며 진화의 최종 결과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많은 가치판단의 기준이 인간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자주 오류로 귀결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종족의 우상이다. 과학은 이런 우상을 깨는 데 첨병이었다. 지동설은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님을 알려줬고, 진화론은 그 안에 사는 생물 가운데에서도 인간이 결코 특별한 지위를 지니지 않았음을 알려줬다. 인간은 무수한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진화라는 보편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일 뿐이었다. 2000년대 이후에 각광받고 있는 뇌과학은 인간의 숭고한 정신활동 상당수가 화학물질인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에서 비롯된다고 밝히고 있다.

큰 두뇌, 언어 사용 등을 근거로
인간이 진화 종착점이라 주장하나
고릴라에게 문자 가르칠 수 있고
새도 언어 비슷한 노래 만들어내

대형 유인원도 다른 개체의 의도
파악할 수 있다고 ‘사이언스’ 보도
침팬지도 ‘마음 이론’ 적용될 수도
문화는 인류 독점적 특성 아니다


그럼에도 인류가 다른 생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인간만의 고유하고도 우월한 특성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지 연구하는 진화학자와 고인류학자는 이런 특성의 존재를 가장 열심히 탐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미 20세기에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의 후보를 추리고, 이에 걸맞은 특성을 지닌 초기 인류 화석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런 특성의 흔적을 지닌 화석은 고인류학자들의 ‘성배’였는데, 최초의 인류를 찾기 위한 여정은 바로 이 성배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들의 격렬한 논쟁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류의 특성 후보는 크게 네 가지였다. 큰 두뇌(빼어난 지적 능력), 두 발로 걷는 능력,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그리고 도구 사용이다.

우선 도구부터. 인류가 속한 직계 ‘가문’에 속할 최초의 인류 후보를 찾던 영국 태생의 고인류학자 메리와 루이스 리키 부부는 1960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부서진 두개골 일부와 아래턱뼈, 치아, 그리고 부서진 손가락뼈 화석을 발견했다. 새로운 인류 화석이었다. 마침 이 지역에서는 돌로 만든 조악한 도구도 많이 발견됐다. 이 미지의 인류가 바로 석기를 만든 주인공이라고 확신한 리키 부부는 1964년 과학잡지 <네이처>에 새 화석을 발표하면서 ‘호모 하빌리스’(손 쓴 인간)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키가 이 종을 자신있게 새로운 호모 속 인류로 분류하고 이름까지 붙여준 데에는, 도구를 쓰는 게 인류의 중요한 특징이자 조건이라는 당시의 인식도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동물행동학 연구 결과는 도구가 인간의 조건이라는 미신을 깨고 있다. 도구를 쓰는 건 생각보다 고급 기술이 아니며, 인류만이 그 과제를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 거의 모든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 19세기부터 보고된 특성이다. 도구로 삼는 재료도 나뭇가지와 나뭇잎, 풀, 돌 등 다양하다. 이들은 긴 나무나 풀로 물이나 꿀, 개미 등을 먹고, 돌을 이용해 단단한 견과류를 깨먹는다. 코트디부아르의 열대우림 내 침팬지 유적을 연구한 영국 레스터대 연구팀의 2007년 논문에 따르면, 침팬지가 도구로 돌을 쓴 흔적의 연대는 43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침팬지가 인간에게 배워서 도구를 쓴 게 아니다”라며 인류와 침팬지 공통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성일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짧은 노랫가락 전하는 십자매

침팬지와 가까운 대형 유인원인 보노보 역시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밝혀졌다. 긴 나무나 돌, 뿔 등으로 땅을 파기도 하고, 돌로 뼈를 부숴 골수를 빼먹는다. 인류의 조상이 했으리라 짐작하고 있는 도구 사용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유인원만의 일도 아니다. 조류인 까마귀 역시 도구를 쓴다. 까마귀는 깊은 곳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긴 물건을 적절히 구부려 갈고리처럼 만든 뒤에 꺼내 먹는 수준으로 응용도 한다. 지난 19일 <네이처>에는 브라질의 원숭이도 돌을 깨 구석기와 꼭 닮은 돌조각을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물론 명확하게 도구로 사용할 의도를 가지고 돌을 깼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언어는 어떨까. 역시 여러 동물에서 다양한 수준의 의사소통용 언어가 발견된다. 침팬지의 경우 서아프리카에서 중부아프리카까지 모든 집단이 언어를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언어가 다르다. ‘사투리’가 있는 셈이다. 고릴라에게는 문자를 가르칠 수 있고 이를 이용해 간단한 의사소통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장류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드러났다. 새에게서 언어의 흔적을 찾는 학자도 있다. 명금류(노래하는 새)에 속하는 십자매는 짧은 노랫가락을 일정한 문법 규칙(순서)에 맞춰 조합해 다양한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이를 교육을 통해 아래 세대에 전수하기도 한다. 십자매는 동남아시아의 야생종을 길들인 것인데, 길들인 새(십자매)가 야생종보다 복잡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노래를 연구하는 오카노야 가즈오 일본 도쿄대 교수팀에 따르면 길들여진 새는 야생에서보다 생존의 위협이 적으며, 따라서 수컷은 암컷이 좋아하는 복잡한 노래를 부르는 데 에너지를 더 쏟을 수 있다. 복잡한 노래 혹은 언어가 반드시 두뇌가 발달한 인류에게서 독점적으로 태어날 이유는 없다. 성선택 등 언어가 진화할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면 작은 새도 언어에 준하는 복잡한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류의 고유한 특성으로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두 발 걸음과 큰 두뇌다. 이 가운데 두 발 걸음은 아직까지 인류와 비교할 만한 동물이 없다. 침팬지와 고릴라 등 대형 유인원 일부가 두 발로 걷지만, 평소 네 발로 걷다가 잠깐씩 손을 들고 걷는 것일 뿐 일상적인 이동 방법은 아니다(이런 식이라면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종종 두 발로 선다). 두뇌 용량의 급격한 증가 역시 다른 대형 유인원과 인류를 가르는 명백한 특성이다. 두뇌 용량의 증가 시기와 특성이 다른 유인원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장자크 위블랭 박사팀이 2015년 ‘영국왕립학회 철학회보B’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류의 두뇌 크기는 약 200만년 전까지 비교적 일정하다가(침팬지보다 약간 크다), 그 이후부터 커지기 시작한다. 대략 우리의 직계 조상 호모 속이 등장한 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때는 몸집도 함께 커졌기 때문에 체격 대비 두뇌 크기 비율이 급히 늘어난 것은 아니다. 체격 대비 두뇌 크기가 증가한 시기는 약 60만년 전부터다(크리스토퍼 러프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팀의 1997년 <네이처> 논문). 어느 쪽이든 이미 인류가 다른 유인원과 결별한 뒤에 일어난 일로, 인류 고유의 특성임은 분명하다.

호모 에렉투스는 빗살무늬 그림 남겨

하지만 과학은 명석한 두뇌에 대한 신화마저 해체하며 계속 인류의 특권적 지위를 박탈하고 있다. 지난 7일 과학잡지 <사이언스>에는, 대형 유인원이 다른 개체에게도 자신과 다른 의도나 욕망, 믿음, 지식 등 속마음이 있고 그에 따라 행동함을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흔히 ‘마음 이론’이라고 부르는 능력이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능력으로, 그동안 오직 사람만 갖고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예를 들어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무도리 고(Go) 특집 프로그램을 보자. 피디(PD)는 여러 출연자들에게 찾아갈 목표 지점들을 지정해 주고 다른 사람이 어디 갈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지점을 자유롭게 찾아가게 했다. 다만 각각의 지점을 가장 먼저 찾은 사람만이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출연자들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다른 출연자를 따돌리며 목표 지점을 향했다. 하지만 작전에 실패해 번번이 허탕을 치는 출연자가 있었고, 이들 모두의 동선과 의도를 훤히 알고 있는 시청자는 출연진의 잘못된 판단과 그에 따른 허탕을 보며 재미있어했다. 여기에서 출연진의 의도(속마음)를 알아채는 시청자의 능력이 바로 마음 이론이다. 이 능력 덕분에, 시청자들은 출연진의 생각이 현실과 불협해 어이없이 틀림을 알고 재미를 느낀다.

연구팀은 ‘무한도전’과 비슷한 실험을 침팬지를 대상으로 했다. 먼저 침팬지들에게 사람이 보통 가장 마지막에 봤던 곳을 먼저 찾는다는 사실을 영상을 통해 알려줬다. 그 뒤에 대상을 찾는 사람의 영상을 보여줬는데, 침팬지들은 사람이 마지막에 봤던 곳에 이미 찾는 대상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상태였다. 만약 침팬지들이 ‘사람이 잘못된 추정을 하고 있음’을 안다면 사람이 실수할 위치를 쳐다볼 것이다. 실험 결과는? 침팬지 다수가 실제로 물건이 있는 곳이 아니라 잘못된 곳, 즉 사람이 이전에 대상을 봤던 곳을 쳐다봤다. 사람이 거기에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로 향하리라고 속마음을 짐작한 것이다. 허탕을 치는 사람을 보면서 침팬지들이 무한도전 시청자들처럼 재미있어했을지는 미지수지만, 침팬지가 다른 개체의 속마음을 추정하는 능력이 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높아졌다.

마음 이론만으로 의심스럽다면, 문화의 총화인 예술을 보자. 극히 최근까지 학자들은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이외의 종은 제대로 된 예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믿었다. 문화는 현생인류의 독점적 특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5~6년 사이에 나온 연구 결과들은 이 영역에서조차 우리가 특출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가까운 친척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이 안료를 이용해 멋을 내고 장신구를 만들었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수십만년 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가 조개껍질에 빗살무늬를 그렸다는 연구도 있다. 분명 이들의 문화는 지금 우리의 문화에 비하면 조악하다. 하지만 우리와 ‘그들’ 사이에 넘볼 수 없는 질적 간극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동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진화의 법칙을 넘어설 수 없는 하나의 종일 뿐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인간 조건 따위는 없다고, 겸손하라고 말하고 있다.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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