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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10년 만에 꿈꾸는 아시아 정상… 전북의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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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주월드컵경기장에 걸려 있는 별이 그려진 현수막. 전북은 2009년과 2011년에 이어 2014년, 2015년 프로축구 시즌 2연패로 K리그 리딩 클럽으로 우뚝 섰다. 전북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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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은 양극화와 불평등을 꼬집는 말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진짜 ‘기울어진 운동장’도 있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전북 현대의 옛날 훈련장이 그랬다. 현역시절 전북에서 뛴 김도훈(48)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그라운드가 약 1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패스를 위로 올리면 저절로 아래로 내려오곤 했다”고 기억했다. 기울기가 진짜 15도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만큼 훈련장 상황이 열악했다. 지금 전북의 위상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다.

전북은 2006년 이후 10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린다. 다음 달 19일(홈)과 26일(원정)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과 결승전을 치른다. 10년 전과 지금의 전북을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과거 전북은 클럽하우스조차 갖추지 못했다. 숙소로 여관을 전전했고 모기업인 현대자동차 사원아파트를 썼다.

최강희(57) 전북 감독의 회고다.

“예전 숙소를 농담 삼아 ‘마구간’이라 불렀다. 우리가 5,6층을 썼는데 축구화가 복도에 쌓여 여름이면 냄새가 풀풀 났다. 경기 당일 새벽에 주민들이 주문한 치킨, 족발 배달 오토바이가 왔다 갔다 했다.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우리 애들(선수)은 지금 자고 있을까 나처럼 저 소리를 듣고 있을까’생각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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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북 현대의 홈경기 모습. 관중도 많지 않고 녹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 응원단도 거의 없었다. 전북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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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전북 현대의 홈경기 모습. 녹색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일사불란하게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전북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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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도 시원찮았다. 2005년 7월, 최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 우승은 언감생심, 상위권에 오른 적도 없다. 2000년 4위가 당시 최고 성적이었다. 2005년 FA컵에서 우승해 출전한 2006년 챔스리그에서 깜짝 정상에 오른 게 전환점이 됐다. 아시아 1위 자격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나가 모기업 로고를 유니폼 가슴에 달고 뛰자 홍보에 제법 큰 역할을 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어렵게 틔운 싹을 토대로 축구단은 점차 모기업의 관심을 이끌어냈고 이를 발판 삼아 가파르게 성장했다. 구단 1년 예산도 2006년 120억 원에서 올해 30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우수 선수를 잇달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해 2009년 창단 후 처음 정규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1년 우승, 2014년과 2015년 2연패로 리그 최강 클럽 자리를 굳혔다. 10년 전 6,566명에 불과하던 평균 관중은 올해 1만6,277명에 이른다. 숙원이었던 클럽하우스도 생겼다. 2009년 우승 뒤풀이에서 정의선(48) 구단주(현대자동차 부회장)가 최 감독에게 “필요한 건 없느냐”고 물었고 최 감독은 “클럽하우스를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바로 다음 날 결재가 떨어졌다. “아시아의 모든 팀들이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지어라”는 정 부회장 지시에 따라 3년 가까운 공사 끝에 2013년 10월 완공됐다. 수중치료실 등의 최첨단 기기와 천연 잔디 훈련장 2면, 실내 인조 잔디 그라운드 등 세계적인 시설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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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클럽하우스 전경.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최첨단 시설과 환경을 자랑한다. 전북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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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은 올 시즌 개막 전부터 “최우선 목표는 챔피언스리그다”고 늘 강조했다. 2011년 결승 안방 경기에서 알 사드(카타르)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

10년 전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때 전북은 거의 관심 받지 못하는 K리그에서도 변방인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시아 전체가 전북을 주목한다. 지난 4월 ‘심판 매수’ 사건도 선수단이 전의를 불태우는 촉매다. 전북은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승점 9점 감점, 1억 원 제재금 징계를 받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여전하다. 전북이 정규리그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우승해도 후한 평가를 받기 힘든 현실이다. 지난 15일 제주에 2-3으로 져 33경기 무패(18승15무)행진 제동이 걸린 뒤 최 감독은 “우리 말고 모두가 원하는 결과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구단을 향한 싸늘한 시선을 잠재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아시아 축구제패라고 전북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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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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