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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토요스케치]옆집과 똑같은 가구? 우리집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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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바람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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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대다. 인테리어도 자기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셀프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에 맞춰 유통업체들은 쉽게 가공할 수 있는 DIY 가구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벽 장식에 활용할 수 있는 ‘DIY 폼벽돌’(위 사진)도 있고 카탈로그 앱을 통해 셀프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동아일보DB


결혼 3년 차인 손모 씨(35)는 올해 8월 여름휴가 때 경기 고양시에 있는 가구단지를 샅샅이 뒤졌다. 이사 갈 새집에 어울릴 만한 가구와 소품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손 씨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초록색 계열 창문 블라인드와 TV장을 골랐다. 손 씨는 “주변에 장식품을 놓을 수 있는 TV장이 유행이라는 얘길 들고 블라인드 색깔에 맞췄다”며 “거실을 꾸미는 데 모두 300만 원 정도를 썼지만 발품을 판 덕분에 시세보다 평균 30만∼40만 원 정도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손 씨는 요즘도 인테리어 전문점을 종종 찾는다. 최근엔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에 들러 작은 그림 몇 점을 샀다. 거실에 어울릴 러그(작은 카펫)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이 덕분에 새집은 손씨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급성장하는 셀프 인테리어 시장

최근 손 씨 같은 신혼부부와 영유아 자녀를 둔 가정을 중심으로 ‘셀프 인테리어’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21일 BC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인테리어 전문점의 신용카드 결제금액을 조사한 결과 절반가량(47.5%)이 신혼부부와 영유아 자녀를 둔 소비자가 쓴 금액이었다.

올해 3월 아들이 태어난 한모 씨(31)는 “아토피가 생길까 봐 걱정이 돼 아기 방에 사용할 친환경 페인트를 검색하다가 직접 페인트칠까지 했다”며 “주변에도 아기방을 꾸미다가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요즘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 대여+메이크업)’ 다음엔 셀프 인테리어가 꼭 해야 할 ‘아이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신혼부부에 뒤를 이어 초중고교 자녀를 둔 가구(전체 결제금액의 18.8%)가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고 성인 자녀를 둔 가구(14.4%), 1인 가구(13.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1인 가구 중에선 소득이 있는 여성이 셀프 인테리어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들이 해당 전문점에서 결제한 금액은 전체 1인 가구 결제금액의 36.9%를 차지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살고 있는 홍모 씨(29·여)는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유일하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인 집을 아늑하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에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며 “이젠 필요한 게 있으면 전동드릴로 직접 조립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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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인테리어 문화가 확산되면서 관련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BC카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인테리어 전문점의 건당 결제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3% 증가했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가 2013년 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로그 카페 등에 올라온 글을 분석한 결과 셀프 인테리어 연관 키워드나 서술어가 포함된 빈도가 2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 올해 7월 셀프 인테리어가 언급된 건수는 1568건으로 2014년 7월(695건)보다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실용적 소비가 셀프 인테리어 인기 주도

셀프 인테리어가 인기를 끄는 건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실용적인 소비를 선호하는 시대 분위기에다 직접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재료도 다양해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장석호 BC카드 빅데이터센터장은 “저성장이 장기화되며 실용적인 소비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외국의 ‘DIY(Do It Yourself)’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면서 셀프 인테리어가 하나의 소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새로 가정을 꾸리면서 상대적으로 집 안 꾸미기에 관심을 쏟는 신세대 신혼부부들이 셀프 인테리어 인기에 불을 지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셀프 인테리어는 시간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실제로 해볼 수 있다”며 “신혼부부 등이 이런 조건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갖추고 있는 데다 아기를 위해선 디자인뿐 아니라 친환경 재료 등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옷 등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부분에 대한 투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과시적 소비’ 문화의 쇠퇴가 셀프 인테리어 인기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의 만족과 행복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훈 계원예술대 리빙디자인과 교수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옆집과 똑같은 가구로 가득 찬 집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다”며 “예전과 달리 인터넷에서 어떻게 꾸미거나 만들어야 하는지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값 상승 등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단독주택 선호 현상이 나타난 것도 셀프 인테리어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슬기 NH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집값이 오르고 전월세 부담이 늘어나면서 적은 비용으로 집을 꾸미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홈 퍼니싱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며 “노후 건축물이 늘어나면서 인테리어 시장의 성장세도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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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주택가격 동향 조사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울 주택(아파트·단독·연립)의 평균 매매가격은 5억198만 원으로 2008년 12월 이후 가장 높았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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