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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남중국해' 대신 실리… 필리핀·중국 '신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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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테르테·시진핑 정상회담

중국과 필리핀이 신(新)밀월 시대에 접어들었다.

20일 관영 신화통신과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두테르테 대통령 방중을 환영하는 중국군 의장대 사열 등 행사를 함께 한 뒤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6월 취임한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을 제치고 중국을 먼저 방문한 데 대한 환대였다. 양국 정상은 필리핀 고속철사업을 비롯한 기초시설(인프라), 에너지, 투자, 미디어, 검역, 관광, 마약퇴치, 금융, 통신, 해양경찰, 농업 등 13건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중국의 필리핀 투자액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라몬 로페스 필리핀 무역장관은 양국이 135억달러(약 15조2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필리핀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이웃이며 양국 국민은 혈연상친의 형제”라며 “이번 방중을 중국·필리핀 관계를 우호적인 기반으로 되돌리고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양국 국민을 행복하게 하자”고 말했다.

이에 두테르테 대통령은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은 필리핀의 친구였다”면서 “우리들의 유대의 뿌리는 깊고 쉽게 단절될 수 없다”고 화답하며 대중 관계 강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어 “겨울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베이징에 도착했음에도 우리 관계는 봄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국 갈등의 최대 현안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시 주석은 “비록 우리가 비바람을 겪었지만 선린우호의 정감 기초와 협력의 소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잠시 미뤄두고 공동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양국 국민에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 주석은 양국 발전을 위한 정치상호신뢰, 실무협력, 민간교류, 지역·다자간사무협력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과 중국의 유구한 우의는 동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양국이 해양경비와 어업협력 문제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고만 말했다. 스카버러 암초는 중국이 점유해 인공섬을 건설한 대표적인 영유권 분쟁지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갈등이 첨예한 영유권 문제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택했고, 중국은 통큰 선물 보따리를 안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뿐 아니라 외교분야 양국 신밀월도 가속될 것으로 보여 남중국해 분쟁 등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외교 지형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베이징 거주 필리핀 동포커뮤니티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당신이 내 나라에 머무는 것은 당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이제 작별할 시간이 됐네, 친구”라고 말했다.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후 “나는 더 이상 미국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거기서 단지 모욕을 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창녀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등 미국을 향한 반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를 두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친미반중 노선을 취했던 전임 베니그노 아키노 정부와 달리 반미(反美) 또는 미국을 멀리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는 원미친중(遠美親中) 노선으로 돌아선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필리핀과 미국은 1951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맹방이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미국과의 연합군사훈련 중단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미국과의 합동순찰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미국과 거리두기 행보를 보였다. 이에 따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남중국해 전략도 상당 부분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필리핀, 베트남 등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국가에 일본까지 포함하는 남중국해 군사협력을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베이징=신동주 특파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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