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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백남기 부검논란]부검영장 발부에 검·경 '안도'·시민단체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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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진상규명' 피한 경찰…시민단체와 갈등 격화

검·경 부검영장 청구 행보…"책임 피하려는 것 아니냐" 지적

뉴스1

백남기 투쟁본부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에서 정부의 사죄, 부검 시도 즉각 중단, 국가폭력 종식과 물대포 추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6.9.29/뉴스1 © News1 허예슬 인턴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숨진 농민 백남기씨(70)에 대한 부검영장이 28일 발부되면서 검찰·경찰과 시민단체 사이에 강한 충돌이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검찰과 경찰은 백씨 부검에 열의를 보이면서 영장 발부를 위해 전방위로 뛰어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검·경의 모습을 두고 백씨 사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백씨는 지난해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쓰러져 중태에 빠진 뒤 25일 오후 1시58분께 숨을 거뒀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과 결국 사망하기까지 정치권과 시민단체, 검·경은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백씨 부검 영장이 발부되면서 격한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경찰 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씨…가족·시민단체 "경찰 사과하라"

지난해 11월 백씨는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위독한 상황에 빠졌다. 백씨가 쓰러진 후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일어나 '강신명 청장 사죄·퇴진 촉구' 집회를 열었다. 백씨의 가족들은 당시 책임자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백씨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시민단체와 경찰의 갈등은 심화됐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수천명 규모의 집회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맞서 경찰은 번번히 집회·행진 금지 통보를 내렸다. 양 측의 갈등이 격화되는 사이 법원은 "집회, 행진 금지는 위법"이라고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12월 1만여명이 참가한 '제2차 민중총궐기 대회', 그 이후로 이어진 '제3차 민중총궐기 대회'는 그렇게 진행됐다.

올해 초부터 대책위는 도보순례에 나서며 정부에게 "국가폭력을 사과하라"며 촉구했다. 백씨의 의식불명 상태가 100일이 넘어서자 백씨 가족은 그해 3월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지난 5월 백씨의 의식불명 상태가 200일째에 가까워지자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서 '백남기 사건'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백남기 청문회 열기로 전격 합의했다.

청문회 개최를 합의했지만 갈 길은 험난했다. 경찰은 백남기 사건에 대한 야당의 자료제출 요구를 번번히 거부했다. 지난 6월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것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해 논란을 자아냈다.

정치권이 정체되자 시민사회단체가 다시 나섰다. 지난 7월 백남기대책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청문회 실시를 촉구했다. 8월에는 4·16협회·백남기대책위 등이 청문회를 촉구하며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농성 다음날 여야는 청문회를 열기로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여야 진통 끝에 열린 청문회…'사과·진상규명' 피한 경찰

여야 진통 끝에 지난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주최로 청문회가 개최됐다. 강신명 전 청장이 증인으로 참석해 당시 상황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강 전 청장은 당시 "사람이 다쳤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백남기 농민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를 거부했다.

이어 강 전 청장은 "경찰은 불법폭력시위 대처 중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규명하고 있지만 주최 측은 현장 경찰관에 살인미수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며 "객관적 조사와 법원 판결에 따라 나오는 책임에 대해 사과방문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청문회에서는 백씨의 중태 원인과 경찰의 살수차 사용 방식에 대한 문제점 등이 지속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체조직에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살수차의 위험성은 전세계적으로 공인됐다"며 "디지털 장치로 수압을 조절해 사용할수 있음에도 눈대중으로 맞췄다는 점을 경찰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소방 구급활동일지와 당일 촬영된 여러 동영상에 따르면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병원에 옮겨지기까지 44분이나 걸려 경찰의 후속 조치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의 공식사과나 진상규명 움직임은 없었다.

이철성 신임 경찰청장 역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청문회 결과에 따라 경찰의 법집행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법원 판결에 의하면 그날(지난해 11월14일) 공무집행은 적법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해 공식적인 사과는 피했다.

이 청장은 "집회규모가 커지면 집회하는 분들과 대화해서 가급적 경찰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야권에서 살수차 운영을 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개선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향후 대책만을 간단히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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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2016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출석한 경찰들이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간사가 공개한 故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질 당시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2016.9.2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故 백씨에 발부된 부검영장

경찰의 사과와 진상규명이 미뤄지는 사이 백씨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다. 지난 24일 대책위는 "백남기 농민이 위독하다"고 발표하면서 백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이 파악됐다.

백씨의 상태를 알린지 하루가 지난 25일 백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후 약 317일만이다. 대책위 측은 "오늘 백남기 농민이 선종했다. 서울대병원으로 모여달라"며 집결을 호소했다. 경찰 역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수백명의 병력을 현장에 배치했다.

경찰과 대책위, 유족은 백씨의 부검을 둘러싸고 심한 갈등을 빚었다.

백남기 대책위는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하는 부검을 운운하는 것은 사인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 없는 가운데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검·경은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다"며 25일 부검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기각됐다.

이후 검·경이 부검영장 발부를 위해 보인 행보는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는 게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경찰은 지난 26일 오전 서울대병원을 압수수색해 진료기록을 확보하고 같은날 밤 부검영장을 재신청했다. 28일에는 검찰이 부검 이유에 대한 추가 소명자료까지 법원에 보냈다. 검·경의 끈질긴 도전으로 법원은 결국 28일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이처럼 검·경이 부검영장 청구와 기각, 재청구와 법원의 소명 요청 등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밟으면서 국가권력기관에 의해 희생된 백씨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는 한편, 관련 사건수사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경찰(경정)은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사과와 조문은 커녕 유족 등 누구도 원치 않는 부검을 하겠다는 수뇌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 수뇌부가 지나치게 정부 눈치를 보면서 일선 경찰,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백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중태에 빠져 입원했을 당시와 사망할 때 주치의가 기록한 사인 내용이 다르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철성 청장은 지난 26일 "애초에 그분이 병원에 들어갔을 때는 지주막하출혈 즉, 두피 밑으로 출혈이 있었다고 병원에 기록되어 있는데 주치의의 기록 사인(死因)은 병사(病死), 심부전에 의한 심정지사"라며 병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백씨의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장발부 후 백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사람들의 손을 다시 받게 하고 싶지 않다"며 "절대 부검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1일 정권을 규탄하는 범국민대회를 열고 11월12일로 예정된 민중 총궐기를 열 예정이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거리에서 시민과 직접 만나 백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리고 정권에 맞서 싸우자고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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