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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Why] '부모 동반 관람可' 영화, 부모가 먼저 화들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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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세 관람가 영화, 아이와 함께 봐도 괜찮을까

영화등급제와 엇박자

초등생 자녀와 보다가 폭력적인 장면에 놀라

영국·일본·독일 등은 12세 관람가에만 허용

기준도 모호한 '보호자'

영등위는 법정 대리인, 문체부는 친인척도 가능

보호자인지 확인도 검표 직원 눈대중으로만

일요일인 지난 2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15세 관람가 영화 '밀정'이 끝나자 최모(44)씨 부부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12)과 함께 상영관을 빠져나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가 보기에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아 2시간 넘는 관람 내내 고역이었다고 했다. 최씨는 "항일 투쟁에 대한 역사 교육도 할 겸 아이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사람을 인두로 지져 고문하는 장면이나 총 맞은 발가락을 손으로 뜯어내는 장면에서 아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곡성', '부산행', '밀정' 등 최근 '15세 관람가' 영화 가운데 크게 히트하는 작품들이 여럿 생기면서, 성인 보호자를 동반하면 어린이도 아무런 제한 없이 '15세 관람가' 영화를 볼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중학생은 물론 미취학 아동 역시 15세 관람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화 등급제 취지와 부합하느냐는 지적이다. 아이를 동반한 사람이 실제 보호자인지, 보호자의 자격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

현행법상 영화 관람의 연령 등급은 '전체 관람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으로 나뉜다. 12세·15세는 만 나이이며, 청소년 관람 불가는 만 18세 미만 또는 고교 이하에 재학 중인 학생의 영화 관람을 제한한다. '중학생 관람가' '고등학생 관람가' 등의 구분이었다가 1997년 일본·영국·호주 등 외국의 예를 참고해 현행과 같이 바뀌었다. 이 가운데 12세·15세 관람가 영화는 보호자가 동반할 때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영화관 입장이 가능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오로지 18세 이상 성인만 볼 수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기준에 따르면 15세 관람가 영화의 경우 '흉기나 폭력으로 인한 상해·선혈 등 경미한 신체 손괴'나 '성적 내용과 관련된 신체 노출'이 나오는 것을 허용한다.

대구 율하동에 사는 강희경(44)씨는 지난 8월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함께 '부산행'을 보면서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눈을 줄곧 가려줘야 했다. 강씨는 "같은 반 아이들이 다 봤다며 아이가 조르는 통에 데리고 갔는데, 좀비가 달려와 사람의 목을 물어뜯는 장면에선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범위에 대해선 통일된 해석이 없다. 영등위는 이를 민법상 법정 대리인으로 엄격하게 해석한다. 영등위 관계자는 "부모가 생존해 있고 친권을 상실하지 않는 한, 부모 이외 어떤 사람도 보호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부모뿐만 아니라 친인척 형·누나, 친한 선배 등도 18세 이상이면 '보호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를 동반하는 사람이 실제 보호자인지에 대한 확인 작업도 거의 없다. 대부분 영화관 검표 직원의 눈대중으로만 이뤄지고 있고, 이에 대한 지자체의 감독도 전무한 수준이다. 서울 노원구청 관계자는 "관내에 대형 영화관 4곳이 있는데 영화관 담당자는 주무관 한 명뿐이라 현장 실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일본·독일 등 외국에도 우리와 같이 보호자 동반 시 등급 예외 규정이 있지만, 12세 관람가만 해당되고 15세 관람가는 보호자가 있어도 연령 미달이면 입장할 수 없다. 특히 독일의 경우엔 아이가 6세 미만이면 보호자를 동반해도 12세 관람가 영화마저 볼 수 없다. 영등위 관계자는 "우리도 1997년 연령별 등급제를 도입할 당시엔 12세 관람가에 한해 부모 동반 예외를 인정했다"며 "이후 영화 관람 수요를 키워야 한다는 영화산업계 쪽의 요구로 2002년 관련법을 개정하며 15세 관람가까지 확대됐다"고 말했다.

임정택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소장은 이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심리와 정서에 대한 종합적인 지식이 현행 영화 등급제에 반영돼 있는데, 어둡고 대화도 불가능한 상영관 안에서 단순히 부모 옆에 앉았다는 이유로 등급이 깡그리 무시되는 건 난센스"라며 "부모 동반 예외는 장기적으로 축소하거나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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