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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토요 FOCUS] `소도둑` 놓치고 `바늘도둑`만 잡는 신고포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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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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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파파라치를 전문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300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파파라치 학원계에서는 주말 등을 이용해 '투잡'을 뛰는 사람이나 일회성 신고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족히 수만 명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파파라치가 직업으로까지 자리 잡게 된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익 증진'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늘려온 각종 신고포상금제도 영향이 크다.

현재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별로 신고포상금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신고포상금제도는 9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정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신고포상금제도는 적은 비용으로 세수 증진 효과를 높이고 정부가 단속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커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행정 전문가들은 현행 신고포상금제도가 정부의 의도대로 공익을 증진하는 효과보다는 돈을 목적으로 한 파파라치를 양산시켜 사생활 침해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상당수 파파라치들이 '함정'을 파놓고 대상을 유인한 뒤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한 대상자를 협박하는 불법행위를 일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행정연구소 등에 따르면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특히 신고포상금 종류가 많은 편에 속한다. 미국 등 주변 국가들에서도 신고포상금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탈세신고 위주다. 또 공익신고에 대한 보상도 훈장이나 명예시민 위촉 등으로 한다. 금전적 보상은 잘 하지 않는 추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각종 법률과 규제를 만들 때마다 신고포상금을 걸고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지난 9월 28일 '김영란법' 시행으로 등장한 란파라치들이 김영란법상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법 위반 행위를 발견해 서면·실명으로 요건을 갖춰 신고했을 때 받을 수 있는 포상·보상금액은 꽤 큰 편이다. 실제 란파라치들이 법 위반 사례를 신고해 재판이 이뤄지거나 공공에 이익을 증진시킨 경우 2억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고, 신고로 인해 대규모 국고 환수가 이뤄진 경우 권익위의 판단에 따라 최대 30억원의 보상금까지 손에 쥘 수 있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도 "김영란법 포상·보상금액이 30억원 이상에 달한다"고 밝혔다.

공익을 위한 제보가 늘어나 사회가 청렴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문제는 돈만을 노린 변종 파파라치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면 사생활 침해로 인한 시민들의 고통은 더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김영란법의 경우 법 적용 대상자가 400만명에 달해 란파라치로 인해 많은 국민이 사생활 침해와 함정·협박에 노출될 위험도 커졌다. 전문가들은 돈을 걸고 불법 행위 신고를 유도하는 것이 공익 증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돈을 걸고 불법 행위를 신고하게 하는 것은 공익 증진 효과는 미미하면서 사생활 침해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며 "포상금이 없으면 누가 신고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공익 실현은 건전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참여할 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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