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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TONG] [두근두근 인터뷰] 20만 명 찾는 세계적 축제 만든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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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인터뷰

2004년 9월 11일, 가평 자라섬에 폭우가 쏟아졌다. 기획부터 무모한 축제였다. 인구 6만명에 불과한 경기도 시골, 비가 오면 잠기는 섬에 팝도 록도 아닌 재즈 페스티벌을 꾸리겠다는 건 작정하고 망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설상가상, 축제 둘째 날 쏟아진 폭우로 공연은 중단됐다.

그로부터 13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Jarasum International Jazz Festival, 이하 JIJF)을 대한민국 대표축제이자 최우수 지역축제로 선정했다. JIJF의 첫 기획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축제를 이끌어 온 인재진 총감독은 2015 MAMA(Mnet Asia Music Award)에서 베스트 공연상을 수상했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여겼던 축제는 이제 매회 20만 명이 넘게 찾아오는 가평의 자랑이자 세계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 JIJF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25개국 정상급 뮤지션 48개 팀이 공연할 예정이다. 리우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한 브라질 음악의 살아 있는 전설 ‘카에타누 벨로주’의 첫 내한 무대도 만나 볼 수 있다. 열세 번째 JIJF 개최를 5일 앞두고 무대가 한창 올라가던 날, 인재진 총감독을 자라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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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13회째네요.

“2004년 처음 시작했을 때 목표는 단 하나였어요. 돈 버는 거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지속 가능한’ 축제를 만들고 싶었죠. 한국의 경우 한 번 하고 없어지는 축제가 너무 많아요. 대부분의 축제가 ‘내년에 또 열 수 있을까?’ 그런 걱정과 부담 속에서 일을 하죠. 저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그런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서 13년이나 되었고, 이제는 자력갱생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리 잡았죠. 지금의 페스티벌이 있기까지 주변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우선 굉장히 감사합니다.”

- 성공적인 축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기획자로서 제 자신이 뛰어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고 트렌드를 일찍 알 수 있었던 운이 컸죠. 사실 규모와 프로그램 내용을 고려하면 티켓 값은 지금의 두 배가 되어야 하는 게 맞아요. 근데 출발점부터 공공예산이 지원되다 보니 상업성이 상당히 배제됐죠. 보통 페스티벌은 규모가 커지면 대중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서 팝이나 록 같은 다른 장르를 수용해요. 하지만 JIJF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재즈라는 장르, 재즈만의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프로그램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축제에 참가하는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저희 페스티벌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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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에서 진행한 1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사진=JIJF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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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렸던 축제의 청사진과 비교해 보면.

“거의 가깝게 이루어졌어요. 첫 해에 시작했을 당시 한국에서 공연 예술 축제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될 것이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파급력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왜냐면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막연하게 해외 사례들을 많이 보고 짐작만 했을 뿐이에요. 한국은 더구나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가평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지역에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어요.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굉장히 글로벌한 콘텐트가 잘 한국화, 토착화 되었죠. 소위 말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이루어진 거예요.

제일 바랐던 건 축제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거였어요. ‘내가 재즈는 모르지만, 우리 동네에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라는 어마어마한 행사가 열린다’라고 가평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인정하게 된 거죠.”

-그렇다면 축제의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인지.

“제가 자다가도 들으면 잠이 확 깨는 소리가 있는데요. 축제의 지상 최대 과제가 ‘첫째 지역경제 활성화, 둘째 주민 참여, 그리고 세 번째로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이에요. 대한민국은 이 세 가지만 있으면 그 어떤 논리도 다 이겨버리는 거 같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지역 주민에게 축제가 생업은 아니잖아요. 관객이 페스티벌에 왔다가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고 간다거나 냉장고를 사서 돌아가지는 않죠. 즉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말이에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라는 전 국민이 알 수 있는 브랜드를 갖게 되었고, 그 브랜드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당연히 좋아요. 하지만 그 전에 주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고, 관객으로 직접 축제에 참여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축제는 문화로서 지니고 있는 계량화 할 수 없는 가치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준다거나 휴식의 순간을 제공하는 매개인 거죠. 사람들이 페스티벌을 문화 자체로 향유하면서 가평이라는 지역의 이미지가 문화 중심적으로 달라졌어요.

서양의 유명한 축제들이 처음부터 산업적인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대부분 작게 시작해서 점점 하다 보니까 커진 거죠. 한국은 축제를 만들 때 공공 예산이 쓰이다 보니 의례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저는 축제가 돈을 벌어야 한다기보다 지역에서 사랑을 받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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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IJF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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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축제가 될 수 있을까요.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면 되겠죠. 축제의 프로그램과 음악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같이 온 연인과 보낸 시간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 매개가 되는 게 페스티벌이라는 거예요. 처음에 수익 대신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건 JIJF가 3년 이상만 지속되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거였죠.

잔디밭에 연인이 누워있고, 옆에는 피크닉 가방이 놓여있고, 저 멀리서 아이가 뛰어오는데 그 앞에 공연장이 있는 그런 그림 있잖아요. 누구나 그런 순간을 동경하고, 원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사람들의 놀이문화나 여가를 보내는 방식이 변하고 있었던 거죠. 삶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었고, 거창하게 말하면 축제는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거예요.

그런 이미지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초의 공간이 저는 자라섬이라고 생각했고요. 지금 JIJF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모두 재즈를 너무 사랑해서 오는 건 아니에요. 축제를 즐기고 동경하는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멋지게 보내기 위해서 오는 거죠."

-재즈는 대중적인 장르도 아니었고, 이전에는 희귀 음반만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등 대체로 실패할 확률이 큰일에 도전해 왔는데.

“돌이켜 보면 굉장히 모범적인 고등학생이었어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뭐든 열심히 했죠. 근데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되지 못한’ 생각 중에 하나가 ‘나는 다른 사람이 많이 하는 건 하지 말아야지’였어요. 또 하나는 ‘특별하게 살 거야!’라는 생각이었고요.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재즈를 택한 것도 다른 사람이 안 하니까 한 거예요. 근데 하자말자 알게 됐죠. 왜 사람들이 안 하는지요. 돈이 안 되니까 안 한 거예요.(웃음)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가고 싶고,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해요.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게 무척 바보 같은 일일 수 있겠지만 글쎄요. 제가 보기에 세상은 항상 변하고, 멋진 일은 다가온다는 거죠. 다만, 내가 그 멋진 일의 주인공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인데 다른 사람과 똑같다면 내가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낮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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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나 문화 산업의 현실에 좌절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런 어려움은 너무 많았죠. 7년 동안 신용불량자이기도 했고, 두 달 동안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 살 정도로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불리기도 했는걸요. 이전에 전전한 직업도 많았고요. 그렇게 살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제 스스로 이 일을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도 정말 한 적이 없고요.

그런 저를 보며 어머니가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너 때문에 집안의 웬수가 돼서 못 살겠다. 장가도 안 가고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그 때 제가 그랬죠. ‘엄마, 대한민국에 판사·검사·변호사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렇지만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 밖에 없어.’ 조금만 기다리시면 내가 엄마 아들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운 때가 올 거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랬어요.

멋진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운 순간들이 저에게는 트레이닝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행사부터 시작해서 공연·음반을 포함해 많은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분야에 접점을 갖게 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동력이 된 거죠.”

-JIJF의 자원활동가인 ‘자라지기’나 ‘퓨처 트리오’라고 하는 인턴제도 등 젊은 세대가 페스티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인상적인데요.

“공연이나 축제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관심이 있다면 부딪쳐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이 분야가 내 길이 아니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어요. 그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예요. 왜냐면 세상에는 흥미진진한 일이 너무 많거든요. 다만, 내가 그걸 모를 뿐이죠.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 보여요. 그리고 그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을 갖고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하죠.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의 가능성을 한계 짓기도 하고요.

자원활동가나 청년인턴 같은 경험이 스펙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떠나서 그냥 페스티벌의 주체로서 가벼운 마음으로 즐겼으면 좋겠어요. 12년째 자라지기를 하는 친구가 있어요. JIJF에 무엇인가 매력이 있다는 거죠. 그게 뭔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저도 여전히 찾고 있고요.

자라지기로 만나서 결혼을 한 친구들 주례도 제가 많이 섰거든요.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있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자라지기를 하고 스텝이 되고, 이 페스티벌의 예술 감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축제의 가장 본질은 ‘사람’인 거죠.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JIJF가 음악 프로그램도 좋지만 사람을 정말 최우선으로 하는 축제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관객·뮤지션·스텝 등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니 축제현장에서 일하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적이겠네요.

“그렇죠. 근데 저도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어려워요. 제 아내(재즈 뮤지션 나윤선씨)가 저 때문에 얼마나 속 터져 하는데요. 중요한 점은 제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는 거죠.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소통 부재로 생겨요. 행사가 작으면 그런 문제를 ‘개인기’로 해결 할 수 있죠. 인맥과 네트워킹을 활용해서 메우는 거예요. 근데 행사가 대규모로 커지면 그날 발생한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잘 정비된(well-organized) 시스템과 경험이 많은 스태프가 중요한 거죠.

불과 5, 6년 전만 해도 ‘나는 정말 기획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깨달았죠.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혼자 있으면 거의 바보 같아요. 기획자란, 사회 보편적 가치에 반하지 않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에요. 간단히 말하면 좋은 리더고요. 그래서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페스티벌 마지막 날 자라지기와 하드웨어 스태프까지 포함한 모든 이들을 무대에 모아서 제가 90도로 인사드려요. 정말 고맙잖아요. 물론 그들이 공짜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일은 안 하더라도 자라섬에 와서는 일하겠다는 애정으로 모인 거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일을 하면서 노하우가 쌓이고 서로 친밀해지고 결국은 성공적인 축제로 이어지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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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및 축제 기획자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즉 안목이라고 생각해요. 안목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예술에 대한 안목이에요. 공연 기획자가 되고 싶다면 공연을 많이 보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공연만 봐서는 안 돼요. 전시도 보고 다양한 문화적인 활동을 늘 해야 하고 그것들을 자기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또 다른 안목은 시장에 대한 안목인데요. 그건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평소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하고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에요.

앞서 말한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일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워드나 엑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실무적인 능력도 굉장히 중요해요. 무엇보다 저는 청소년 친구들이 대한민국 안에서 꼭 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정말 ‘월드 와이드(world wide)'하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일하는데 가장 기초가 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좋겠죠.

행복하지 않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는 게 참 아이러니 한데요. 제발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만난 친구들 중에 종종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아이들을 봐요. 그러면 불행할 수밖에 없잖아요. 앞으로는 돈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부자인 거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바라는 JIJF의 모습이 있다면.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재즈페스티벌은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인데요. ‘몬트리올처럼 만들 거야!’라는 생각은 절대 안 해요. 그러면 자라섬은 가라앉아요.(웃음) 다만 축제는 유기체 같아서 생로병사가 있을 수 있거든요. 20회까지는 건강한 청년 같은 축제였으면 해요.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또 올 수 있는 축제 말이죠. 20회까지 하면 저는 60이 돼요. 한국에서 큰 축제의 감독은 기술이나 인맥 등을 고려했을 때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가 가장 알맞은 나이 같아요.

사실 저는 지금 당장 이것보다 더 재밌는 일이 있으면 그걸 했을 거예요. 근데 아직은 JIJF보다 더 재밌는 일이 없네요. 원래는 70때까지 하려고 했는데 그건 또 기득권의 욕심이잖아요. 능력 있고 똑똑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빨리 빨리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도 중요하죠. 자라섬은 제가 시작했으니까 지금까지는 뿌리를 내리는 시기였다고 생각하고요. 이 다음 10년은 다른 누군가가 저 보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 저는 더 재밌는 일을 하면 되는 거고요.(웃음)”

제13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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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IJF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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