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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정치 인사이드] 친박 주류가 이정현의 출구전략 거부한 내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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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국감복귀 제안 직후에 당내선 '靑·친박 핵심과 조율' 관측

사전 논의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朴대통령 정국 장악 뒷받침 위해

친박 주류가 李대표 대오 이탈 막아

당내 일각 "호남 출신 李대표와 TK중심 친박 주류가 분화할 듯"

나흘째 국정감사 보이콧을 이어간 새누리당에선 29일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정현 대표와 하루 동반 단식에 나섰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강경 기류는 친박(親朴)계가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친박계다. 그런데도 전날 의원총회에선 친박계 의원들이 중심이 돼 이 대표의 국감 복귀 제안을 한나절도 안 돼 뒤집었다. 이를 두고 "권력 내부에 무슨 일이 있는 거냐"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호남 출신 이 대표와 대구·경북(TK) 중심의 친박 주류 분화설까지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대표의 전날 국감 복귀 제안이 나온 직후만 해도 당내에선 "당연히 청와대와 친박 핵심부와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한 친박계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조원진 최고위원에게도 발표 30분 전쯤 계획을 알렸을 뿐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했다. 조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고 1위를 한 핵심 인사다. 친박 인사들이 추후에 확인한 결과로도 이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사전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새누리당 정진석(왼쪽) 원내대표가 29일 단식 나흘째를 맞이한 이정현 대표를 찾아가 단식 중단을 요청하고 있다. 정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이날 오후 동조 단식에 나섰다.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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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대표는 국감 복귀 문제를 일부 비박(非朴)계 의원들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나경원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며칠 전 자신은 단식을 계속하고 의원들은 국정감사에 임하는 '투 트랙' 투쟁 방안을 얘기하면서 지지를 요청했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자신은 단식하되 의원들은 국감에 복귀하는 구상을 단식 초기부터 갖고 있었고, 친박 강경파를 설득하기 위해 비박계 의원들의 지원 사격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대표는 왜 '독자 행동'을 했을까. 이는 대야(對野) 투쟁 수위와 방법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나 친박 주류 모두 기본적으로는 야(野) 3당의 해임건의안 처리를 '대통령 흔들기'로 보는 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민생 우선'과 '국회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이 대표로선 집권당이 국정을 내팽개친다는 여론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 대표는 자신의 단식과 국회 파행으로 인해 청와대와 당에 쏠릴 정치적 부담도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 대표는 이런 사정 등을 감안해 자체 판단으로 국감 복귀 카드를 꺼낸 것 같다는 게 당 관계자들 이야기다.

반면 친박 주류 측은 "이 대표의 뜻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국감에 복귀할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특히 친박계는 이번 사태의 전개 양상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촉발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이번 사태에서 얻는 것 하나 없이 물러서면 당이 대통령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커지면서 여권 전체가 분화에 접어들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친박 주류가 이 대표의 '대오 이탈'을 막아섰다는 얘기다.

이 대표와 공동 보조를 맞춰온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감 복귀 문제에선 이 대표와 달리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원내대표는 그동안 주변에 "국회 파행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민도 토로해왔다. 하지만 청와대의 뜻이 '복귀 연기' 쪽에 있고, 당내 의원들 뜻을 존중해야 하는 원내대표 자리의 성격상 이 대표 뜻과 다른 쪽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대표와 그를 당대표로 밀어올린 대구·경북(TK)이 중심이 된 친박 주류가 분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TK 지역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독자적으로 단식을 결행해 국회 정상화의 퇴로를 막았다는 일부 지적에 부담을 느껴 국감 복귀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며 "친박 주류와의 갈등으로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도 자신의 제안 후 여권 주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확인하고는 곧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감 복귀 문제에 대해 청와대는 이날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여권 관계자들은 "야 3당의 공세에 맞서 친박 강경파가 '박 대통령 대(對) 야당'이 아닌 '정 의장 대 새누리당' 대치 구도로 만들려는 측면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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