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카페 가듯 야구장 가는 그녀들, 800만 시대 열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첫 800만 관중 돌파… 그뒤엔 여성들의 유행이 된 '야구 직관']

- 야구장은 여자들의 놀이터

두산은 여성 관중이 절반 넘어

"맛난 음식 먹으며 신나게 응원… 그동안 쌓였던 짜증이 다 풀려"

유니폼 등 용품 구입도 적극적, 10구단 체제·신축 구장도 한몫

"우리 거누(박건우의 애칭)! 홈런 날려라!"

29일 오후 프로야구 넥센―두산전이 열린 잠실야구장. 두 팀이 0―0으로 맞서던 3회말 박건우의 좌월 선제 솔로포가 터지자 홈팀 두산 응원석이 들썩했다. 등에 박건우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여성 관중들의 '소프라노' 환호가 그라운드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단상 위 응원단장의 지휘에 맞춰 어깨동무를 하고 소리 높여 홈런 응원가를 불렀다.

한국 프로야구는 이날로 출범 35년 사상 첫 한 시즌 관중 '800만' 시대를 열었다.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0개 구단 체제, 신축 야구장 건립 등의 호재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야구장에 분 '여풍(女風)'이 없었다면 달성이 불가능한 기록이었다. KBO 입장권 판매 대행사인 티켓링크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티켓 구매자의 43%가 여성이었다. 두산 베어스는 올해 홈경기 여성 관중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선일보

야구와 사귀고 싶다 - 29일 오후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은 여성 팬들의 응원가 소리가 높았다. 사진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여성 팬들이 준비한 플래카드를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 /장련성 객원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 팬들이 '남성' 중심의 프로야구에 눈을 돌린 계기는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09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라는 것이 야구계 정설이다. KBO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침체에 빠졌던 한국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국민적 관심이 커졌고, 이는 여성 관중들의 야구장 유입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젠 어느 경기에 가도 응원석에서 여성 팬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11년 경력의 조지훈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은 "단상에서 응원석을 보면 얼핏 봐도 50%가 여성"이라며 "점잔 빼는 남자들과 달리 여성 관중은 응원가도 더 열심히 부르고 동작도 적극적으로 따라 한다"고 했다.

여성들에게 '야구장 방문'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넥센 히어로즈 팬인 최미혜(34)씨는 일주일에 2번은 '직관'을 한다. 처음 친구 손에 끌려 야구장을 찾았던 최씨는 이젠 유니폼과 모자, 각종 액세서리를 장착하는 '골수팬'이 됐다. 최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경기를 보고 신나게 응원까지 하는 야구장이 내겐 놀이터"라며 "이젠 내가 친구들에게 야구장에 가자고 먼저 조른다"고 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장인 김혜민(31)씨는 "야구장에서 몇 시간씩 소리를 지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했다. 야구장을 찾는 것은 '유행에 민감한 여성'으로서 필수라는 인식이 여성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래서 SNS에는 여성들의 '야구장 인증샷'이 대세라는 얘기다. 처음엔 몇몇 선수를 보거나 응원하는 것이 좋아 야구장을 찾았던 여성팬의 일부는 복잡한 야구 규칙을 익히고 경기 분석을 해 블로그에 올릴 정도로 진화했다.

여성 관중은 구매력도 크다. 남성팬과 달리 유니폼을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KIA 타이거즈 팬인 정혜진(25)씨는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예쁜 야구용품이 출시되면 재빨리 구매한다"고 했다.

야구장 내 여성 편의시설도 늘어났다. 이젠 대부분 구장에 수유실과 유아 놀이방이 있고, 문학경기장(SK)의 경우 여성 관중의 몸단장을 위한 '파우더룸'도 갖춰 놨다. 새로 지은 야구장은 공공시설 권장 기준에 맞춰 여자 화장실을 남자 화장실에 비해 1.7배(변기 수 기준) 많이 마련했다.



[이순흥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