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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시베리아 '온난화 산불'… 남한 면적 3분의 1 잿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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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고온 피해 겪는 시베리아 - 김효인 특파원 르포]

'유럽 허파'로 불리는 타이가 숲, 바짝 말라 불 한번 나면 오래가

발생件 줄었지만 피해 면적 커져… 지난 여름엔 50여일간 계속 타

기온 오르자 온대기후 해충 확산… 동물 사체서 탄저균 다시 돌기도

조선일보

김효인 특파원


지난 22일 러시아 시베리아 서부 톰스크주(州) 숲 속 마을 '타이가'. 마을 진입로에 까맣게 탄 전나무 수십그루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불길은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나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숲으로 들어가 보니 족히 40m는 되는 거목(巨木)들이 숯으로 나뒹굴었다. 산 전체가 잿더미로 뒤덮여 있어 발길을 옮길 때마다 하얀 재가 피어올라 앞을 가렸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기후생태연구소의 이고르 두카레브 박사는 "올여름 톰스크주에서만 이런 산불이 200건 이상 발생했다"고 했다.

시베리아가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7월 중순부터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고, 일부 산불은 50여일간 계속되기도 했다. 러시아 전체로 보면 1992년 6915㎢였던 산불 피해 면적은 2014년 3만1907㎢로 4배 이상 커졌다. 같은 기간 산불 건수가 2만5800건에서 1만6900건으로 크게 줄었는데도 피해 면적은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두카레브 박사는 "통상 산불의 70%는 담배 꽁초 투기 등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건수가 주는데도 피해 면적이 늘어나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주 요인"이라면서 "냉대 지역인 시베리아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수목이 말라붙어 불길이 빨리 번지고, 쉽게 진화하기 어려운 큰 산불이 된다"고 했다. 러시아의 연평균 기온은 1991년 섭씨 0.76도에서 2015년 1.50도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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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겨울철 기온이 영하 40~50도에 달하는 지역의 기온이 최고 35도까지 치솟는 등 기록적인 폭염이 덮쳐 산불을 키웠다. 사하공화국 주도 야쿠츠크는 지난 7월 최고 기온이 32.3도로 평년보다 6도 이상 높았다.

톰스크주 주도 톰스크시는 여름내 산불 연기로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웠다. 불은 톰스크시에서 200㎞ 떨어진 숲속에서 발생했지만 규모가 워낙 커 연기가 인근 수백㎞를 뒤덮었다. 시민 아사티아니(45)씨는 "도심이 산불 연기로 가득 차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다"며 "해마다 산불 규모가 커지고 더 오래 타고 있다"고 했다.

전나무·소나무 등이 빽빽한 러시아의 타이가는 전 세계 숲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단일 숲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시베리아 지역 침엽수림은 탄소를 연간 5억t(화력발전소 534개가 1년간 배출하는 탄소량) 흡수해 '유럽의 허파'로 불린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지난 7월 시베리아를 촬영한 미국항공우주국(나사·NASA) 위성사진을 근거로 타이가의 3만5000㎢가 산불에 훼손된 상태라고 밝혔다. 남한의 3분의 1에 달하는 면적이다. 그린피스 측은 "시베리아 상공이 산불 연기로 뒤덮인 모습이 대기권 밖에서 보일 정도"라고 했다.

기온 상승으로 새로운 해충도 등장하고 있다. 시베리아 숲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파된 해충 '애전나무좀'의 공격을 받고 있다. 톰스크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숲에 도착하자 나무껍질이 모두 벗겨져 하얀 속살이 드러난 전나무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잎 없이 앙상해진 나무들은 살짝만 건드려도 껍질이 바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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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서시베리아 톰스크주(州)의 한 숲에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기후생태연구소의 이고르 두카레브 박사가 산불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전 세계 숲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시베리아 침엽수림에서 최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산불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김효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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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엘비나 비시로바 박사는 "기온이 올라가면서 온대기후에서 서식하던 해충이 이 지역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며 "전체 나무의 20%가 피해를 입었고 이 중 1.6%는 고사(枯死)했다"고 말했다.

시베리아 중북부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에서는 최근 75년 만에 탄저병이 발병했다. 지난 8월 탄저병으로 12세 유목민 소년 한 명이 사망하고, 순록 2000여마리가 폐사됐다. 모스크바 대기물리학연구소의 블라디미르 세메노브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이상 고온이 계속되면서 영구 동토(凍土)층에 묻혀 있던 각종 동물 사체(死體)가 해동돼 그 안에 있던 탄저균이 외부로 나온 것"이라며 "땅속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병균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타이가

시베리아에 발달한 침염수림을 가리키는 러시아어로, 대개 북반구 냉대 지역에 분포하는 침엽수림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곧게 뻗은 전나무·소나무 등 상록침엽수가 자란다.

[김효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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