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6 (화)

1996년 vs 2016년…위기 전파 `판박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B급국가 바이러스 ⑦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6년 3월 10일. 한보그룹 신임 회장에 정태수 총회장의 삼남인 정보근 부회장이 취임했다. 그는 그해 6월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한보그룹의) 매출 10조원대, 재계 순위 10위권 진입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장담했다. 1970년대 광산업과 건설업에서 출발한 한보그룹은 1990년대 들어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한보그룹 위상은 당시 재계 14위에 달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인 1997년 1월 부도를 맞았다. 2조7000억원으로 잡았던 당진제철 투자소요액이 5조7000억원으로 불었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빚을 졌는데 유동성이 줄면서 상환이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시계를 20년 뒤인 현재로 돌리면 한보 사태는 지금의 해운 조선업 위기와 오버랩된다.

대선을 1년 앞두고 총파업과 정쟁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 과잉 투자→경기 위축→기업 부실 확대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1996년과 오늘날이 유사하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도하고 일본이 엔화 약세 정책을 펴려고 하는 것도 비슷한 패턴이다. 일각에서는 '가계 빚'이 당시와 규모가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1996년보다 더 질이 나쁜 '스칸디나비아형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3개국이 겪었던 이른바 '스칸디나비아형 위기'는 가계가 빚으로 부동산을 매입한 상태에서 글로벌 경기 위축이 나타났고 이에 주요 수출품(원유) 가격 하락, 부실 채권 상승 등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면서 국가가 난국에 봉착한 것을 가리킨다. 한국도 가계 빚이 막대한 상태다. 올 1분기 가계 빚은 1223조7000억원으로 11분기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도 145.6%로 6개월 새 4.9%포인트 올랐다.

위기 타파를 위해선 정공법이 답이다. 시스템을 개혁하고 자본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창의와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제대로 된 법 앞의 평등을 구현하고 △감사원의 정책 감사 기능을 폐지해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하도록 하며 △산업은행 같은 공공기관에 최고 능력자를 선별 배치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하자는 제언 등이다. 변 고문은 "예전에는 시장이 경쟁을 안 해도 정부가 리더십을 갖고 이끌면 어느 정도 경제가 굴러갈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정부 힘만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창양 카이스트 교수는 자본주의 정신의 회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권력이 국회로 넘어가면서 모든 것이 정치화됐고 행정력도 예전보다 기민하지 않게 됐다"면서 "이로 인해 경제 일선에서 뛰는 대기업, 중소기업, 벤처기업, 창업기업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 = 조시영 차장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 서태욱 기자 / 정의현 기자 / 나현준 기자 / 부장원 기자 / 임형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