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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막 내린 죽음의 게임‥사우디는 왜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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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죽는 치킨게임..유가 반토막에 사우디도 '출혈'

'눈엣가시' 이란의 생산량 정체..이란도 유가상승 관심

악마는 디테일에..국가별 할당량 두고 진통 예상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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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치킨게임’은 서로 마주보고 차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시합이다. 겁먹고 핸들을 먼저 돌리면 쪽이 진다.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누가 더 오래 끝까지 버티는지 겨루는 경기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치킨게임을 벌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가 떨어질수록 생산량을 더 늘리는 극단적인 전략을 취했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미국 셰일업체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사우디는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미국 셰일오일은 사우디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다. 땅속의 딱딱한 암석에 갇혀 있는 셰일오일을 뽑아내려면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섞은 혼합물을 높은 압력으로 땅속에 밀어 넣어야 한다. 파이프를 꽂아서 원유를 바로 뽑아 올리는 중동 업체들의 생산단가가 훨씬 낮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 유가가 지난 2014년 이후 반토막이 났다. 올해들어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사우디는 치킨게임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지난 2월 사우디의 알리 알나이미 전 석유장관이 미국 셰일오일의 심장과 같은 휴스턴의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감산은 없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도록 시장에 맡겨두겠다”고 선언했다. 끝까지 가보자는 선전포고였다.

◇ 사우디 역시 출혈..생산량 정체된 이란 변화도 배경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감산에 합의했다는 건 사우디의 전략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시에테제너럴의 수석 애널리트인 마이크 위트너는 “사우디가 달라졌다는 건 중요한 변화”라며 “앞으로 국제 유가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미국의 셰일업체가 유가 하락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사우디의 출혈이 없었던 게 아니다. 유가가 급락하면 사우디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2년간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20% 넘게 떨어졌다. 지난 26일엔 장관 임금을 20% 삭감하고 공무원 임금도 동결했다.

어게인캐피탈의 존 킬도프 파트너는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스스로 궁지에 내몰았다”면서 “그들의 계획 전체가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도 배경이다. 사우디가 미국만큼 신경을 썼던 존재가 이란이다.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은 지난 1월부터 급격하게 생산량을 늘려왔다. 사우디는 이란의 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종파 갈등을 겪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 보면 이란은 이단 국가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지만 아랍족이 아닌 페르시아 민족이다. 이란어는 독일어나 영어와 비슷한 구조가 많다.

이란은 아랍족에게 침략당해 900년간 나라를 뺏겼다.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중동 국가와 백년 가까운 종교전쟁을 벌었다. 사우디와 이란은 한국과 일본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

한때 사우디와 근접한 수준의 원유 생산량을 자랑하던 이란은 서방의 경제재제 이후 사우디에 주도권을 완전히 뺏겼다. 이란은 경제제재 이전 수준으로 산유량을 회복할 때까지 생산량을 줄일 수 없다며 원유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사우디는 이란이 참여하지 않는 생산량 조절은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최근 이란의 원유 생산량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부터 하루 380만배럴 수준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란의 원유 생산이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이란도 생산량 증가보다 유가 상승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국가별 감축 협상 두고 진통 예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극적으로 공감대를 이뤘지만 11월 OPEC 회의까지 남아 있는 숙제도 있다. OPEC은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 국가별 생산 할당량을 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OPEC 회원국 간 생산량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두고 상당한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사우디는 지난 4월에도 원유 생산량 동결에 합의했다가 이란의 불참을 핑계로 갑자기 파기한 전력이 있다. 사우디의 감산폭이 크고 이란의 감산 규모가 미미할 경우 사우디가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OPEC 비회원국을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사다. OPEC의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은 40% 수준이다. 러시아 등 OPEC 비회원국의 참여가 없으면 반쪽 감산이다. 감산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OPEC 소식통을 인용해 OPEC 회원국간의 생산량 목표에 먼저 합의한 이후 러시아 등 OPEC 회원국이 아닌 산유국으로 감산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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