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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펠르랭 前 프랑스 문화부 장관 "자수 작품 보면 숲속 산책처럼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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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플뢰르 펠르렝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한주형기자>


요즘 플뢰르 펠르랭(43) 전 프랑스 문화장관에게 13시간 걸리는 서울행 비행은 일상이다. 지난 여름부터 한 달에 한 번 꼴로 내한한 그는 앞으로도 당장 보름 뒤, 또 한 달 뒤 잡힌 빽빽한 한국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분주히 파리와 서울을 오갈 예정이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프랑스 가족에게 입양돼 오롯이 프랑스인으로 자라난 펠르랭에게 그저 생물학적 핏줄이 인연의 전부였던 한국은 어느새 새로운 기회의 땅이자 제2의 고향이 됐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개포동에 위치한 실그림문화재단 전시장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펠르랭은 “한불 수교 130년을 기념하는 해였던 올해 프랑스 내에서는 음식, 음악, 드라마부터 전통예술까지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에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렸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날도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몇년 째 친분을 쌓아온 손인숙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모든 일정에 앞서 전시장을 찾았을 만큼 그는 열정적인 한국 문화 애호가다. 오직 자수(刺繡)로 극히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과 병풍, 장식장 등을 창작하며 ‘실그림’이란 장르를 개척한 손 작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프랑스 파리와 니스의 주요 박물관에서 이례적 규모의 단독 전시를 열며 프랑스 현지 평단과 유력지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인물이다.

이날 손 작가가 그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고운 빛 한복을 입곤 함박웃음을 지어보인 그는 작품들을 보며 계속해서 “놀랍다(amazing)”는 찬사를 던졌다. “한국의 전통과 창의성이 완벽히 맞아 떨어진 모습입니다. 너무나 모던하기도 하죠. 이 작품들을 볼 때면 신선한 숲속을 걸어갈 때 받곤 하는 자연의 향취가 느껴지는 듯 해요.”

1973년 ‘김종숙’이란 이름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6개월 만에 프랑스에 입양된 펠르랭은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섹(ESSEC),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국립행정학교(ENA) 등 프랑스 최고 엘리트 코스를 거친 관료 출신으로, 지난 2012년 올랑드 정부가 들어서며 중소기업·디지털 경제장관과 통상국무장관, 문화장관을 역임했다. 지난 2월 개각에서 대통령 보좌관인 오드레 아줄레에 밀려 경질된 이래 수많은 대기업들의 재취업 제안을 물리치고 ‘코렐리아(Korelya)’라는 스타트업의 CEO로 최근 인생 2막을 시작했다.

“한국 및 아시아 국가들과 프랑스 간 투자와 사업 교류를 연계하고 돕는 컨설팅 역할을 맡는 회사입니다. 예컨대 어떤 한국 전기 회사가 프랑스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면 우리는 현지 회사와의 파트너십, 조인트벤처 혹은 기타 마케팅 전략 등을 제공하는 거죠.” 그는 한국 입양아 출신으로 장관직에 오른 자신을 향한 한국인들의 큰 관심에 대해 “아주 감동적이고, 동시에 내게 큰 기회가 됐다”며 “이후 한국에서 만난 동료들과 쌓은 네트워크 덕에 내가 정부에 더이상 정부에 있지 않더라도 양국 간 경제적·문화적·정치적 교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여느 인사들처럼 번듯한 대기업의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받을 생각은 없었을까. “정부 출신 인사들은 포춘500(세계 상위 500개 기업) 같은 곳에서 편안한 새 출발을 하는 게 전통과도 같죠. 저 역시 러브콜을 여럿 받았어요. 하지만 전 제 회사를 꾸려 저만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회사 설립을 위해 장관 퇴임 후 복귀한 회계감사원 검사관직도 포기한 그는 지난달부터 서울 사무실에 상주하는 파트너를 두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한·불수교 130년을 맞아 양국에서 무용, 음악, 전시,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느 때보다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던 올해였지만 그는 여전히 개척해야 할 교류분야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게임은 어때요? 한국의 최첨단 게임 테크놀로지와 프랑스의 좋은 디자인학교들이 힘을 합치면 아주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게임이 나오지 않을까요? 패션도 마찬가지. 옷을 향한 한국인들의 대단한 관심이 프랑스의 패션전통과 만나면 시너지를 내겠죠. 앞으로도 할 일은 무궁무진한 것 같네요.”

[오신혜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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