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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용역 동원한 강제철거 지휘하는 ‘민간인 집행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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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폭력적 강제집행’ 제도개선 목소리

개인 사업자가 법원사무 위임받아

강제집행 되풀이 용산참사 등 불러

채권자가 동원한 용역들 활용도

더민주·민변 등 ‘집행관법’ 개정 추진

“폭력 발생땐 책임 묻도록 해야”

29일 박원순 시장 ‘예방대책’ 발표


한겨레

지난4월26일서울노원구인덕마을강제집행에저항하는주민과용역업체 직원들이 물리적충돌을빚어 30여명이부상했다.주민과용역 직원들이 건물옥상에서소화기를분사하며충돌하고있다. 인덕마을이주대책위원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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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온통 새까맸어요. 용역들이 입은 까만 옷 때문에.”

인덕마을 주민 박정순(56)씨가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지난 4월26일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인덕마을 재건축 지역에 있는 4층 건물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2009년 인덕마을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 해당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박씨의 남편 김승섭씨 등 마을 주민 28명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간 끝에 승소했기 때문이다. 인덕마을에서는 2006년 월계2주택재건축 사업 기본계획이 수립된 뒤 조합과 마을 주민들이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강제집행은 당일 오전 6시30분부터 3시간가량 진행됐다. 경호요원과 강제집행을 보조할 노무자, 이른바 ‘용역’ 200여명(주민 추산 300여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유리문을 깨고 소화기를 뿌리며 주민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한 주민이 갈비뼈와 치아 3개가 부러져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는 등 주민 20여명이 다쳤다. 박씨는 “건물 3층에 있는 남편을 용역들이 빠루(쇠파이프)로 때리고 소화기통으로 때리더라고요. 남편이 온몸에 멍이 들어서 한동안 한의원에 다니면서 죽은 피를 빼고 다녔어요”라고 말했다. 조합 쪽도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용역 1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과 용역의 충돌이 격렬했지만, 이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할 집행관은 집행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2009년 ‘용산참사’ 이후에도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되풀이되면서, 이런 현상의 근본적 이유인 집행관제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집행관은 재판부의 명령에 따라 서류와 물품을 전달하거나, 벌금·과태료·추징금 등을 걷는 일을 처리하고 그 대가로 수수료 등을 받는 사람이다. 공무원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법원의 사무를 대리하는 개인사업자로서 민간인이다.

민간인인 집행관이 공무를 맡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이 부동산은 내 것이니, 저자를 내보내 달라’는 명도소송에서 이긴 자가 법원에 집행을 청구한다. 법원은 해당사건에 대한 강제집행 권한을 집행관에게 위임한다. 집행관은 현행법에 따라 잠긴 문을 열쇠로 따거나 짐을 옮기는 일을 하는 기술자와 노무자(집행보조자)를 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집행관이 직접 집행보조자를 고용하게 되면 해당 비용을 집행원인을 제공한 채무자에게 받아야 하는데, 집행관 입장에서는 이 징수 과정이 추가 업무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채권자가 사적으로 고용한 경비업체 사람들, 이른바 ‘용역’을 집행보조자로 간주해 활용하곤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무에 용역이 동원되는 장면’이 합법적으로 연출된다. 집행관은 집행위임인(채권자)이 납부하는 수수료로 수익을 올린다. 집행이 이루어져야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고서라도 집행을 완료시킬 이유가 생긴다.

이런 원리는 인덕마을에서도 그대로 작동됐다. 당시 강제집행을 담당한 집행관 ㅇ씨는 조합 쪽이 부른 용역을 사실상 조력자로 활용했다. 집행관 ㅇ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채무자 저항이 예상돼 집행불능 판정을 내렸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며 “당일 건물 내부에서 몸싸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못 봤다. 물리적 충돌이 예상돼 경찰에 원조를 요청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인덕마을 주민들은 경찰이 폭력사태를 눈앞에 두고도 뒷짐만 졌다고 주장한다.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약간의 몸싸움 정도가 있었지, 당사자들끼리 폭행해 피 흘리는 정도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당사자들끼리 맞고소해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강제집행 자체를 ‘건물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자’를 끌어내는 공무수행으로 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의 폭력에 예민하지 않은 편이다.

이를 위해 최근 국회와 지자체에서 제도 개선 논의와 대책 마련이 가시화되고 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울지방변호사회, 서울시가 지난 20일 국회에서 개최한 ‘폭력적 강제철거 예방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강훈 변호사는 “이른바 ‘용역’이 폭력을 행사해도 집행관이 책임지도록 징계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집행에서 물리력을 아예 배제할 순 없기 때문에 사람의 신체에 어떤 식으로 물리력을 행사할지 명확히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하는 방식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태섭 의원은 “강제집행 과정에서 집행관과 민간 용역과의 관계, 집행관 역할 범위에 관한 내용을 분명히 하고 집행관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 집행관을 법원 공무원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민주에서는 제윤경 의원을 중심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집행관법 개정안이 마련 중이다.

서울시는 오는 29일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 대책은 행정지침에 그치는 사전협의체를 법제화해 강제집행 과정에서 예상되는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봉 2억, 집행관은 누구?>

집행관들은 얼마나 벌까.

27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지방 국세청별 집행관 신고소득, 연간수입 현황'을 보면, 2014년 한 해 동안 집행관 1명이 벌어들인 수입은 평균 1억9200만원에 달했다. 2014년 부동산 인도 집행 건수가 2만2300여건에 달해 독점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매년 집행관 1명당 연평균 수입이 2억원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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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은 대부분 고위 법원 공무원 출신들이었다. 금태섭 더민주 의원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현재 재직 중인 집행관 432명 중 법원 공무원 출신은 319명(73.8%)이었다. 그중 225명(70.5%)이 과장급 이상으로 법원 공무원직을 마쳤다. 검찰 등 법무부 소속 공무원 출신은 112명(25.9%)이었다. 집행관법 제3조는 ‘집행관은 10년 이상 법원, 검찰청,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한 경력자 가운데 지방법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고위 법원공무원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집행관 제도가 ‘법원이 법원 출신 공무원들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자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 의원은 “현행 집행관 제도는 법원 공무원들의 노후대책으로 전락했다. 공정한 법 집행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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