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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내 흑역사 지워주오… 붐비는 '디지털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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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디지털 평판 시대 생존법

무한복제와 유통 거듭… '삭제' 버튼이 삭제된 인터넷 세상

"꼭 필요한 SNS만 쓰고, 글·사진 올릴 땐 정보 공개 신중을"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삭제(Delete) 버튼이 삭제된 시대다'고 구글 에릭 슈밋 회장이 말했다. 한번 올린 사진, 동영상, 댓글 같은 기록을 삭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완전한 착각이란 얘기다. 그는 왜 이런 충고를 했을까. 디지털 특성상 모든 정보는 기록되고 공유되며 검색된다. 구글링 한 번으로 원하는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역설적으로 원하지 않거나 잊고 있었던 정보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중엔 내가 올린 댓글과 사진, 동영상 심지어 삭제 글과 캡처된 기록도 포함된다. '삭제' 버튼이 삭제된 시대에 이러한 검색 결과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며 평판의 근거가 된다. 디지털 평판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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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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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주홍글씨'를 아십니까?

지금 당장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이나 자주 쓰는 아이디, 이메일 주소를 넣어 검색해보라. 인터넷에 떠다니는 자신의 기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추억거리를 마주한다면 다행이지만 감추고 싶은 기록을 발견하면 숨이 멎을 듯 당혹스럽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성인 남녀 8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57%가 웹 서핑 중 개인 정보나 그간 잊고 있었던 자신의 게시물을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5%는 '개인 신상 정보'를 가장 지우고 싶다고 밝혔다. 대학생 김유진(22)씨는 여고 시절 좋아했던 아이돌과 관련된 글을 블로그에 자주 올렸는데 공교롭게도 한 멤버가 구설에 오르면서 자신의 글이 검색 사이트에 노출된 것을 발견했다. "그때는 팬심으로 썼던 글이지만 지금 보니 민망하다"며 "누군가 글을 보고 나인 줄 알까 봐 부끄러워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준용(21)씨는 중학생 때 쓴 한 커뮤니티 게시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한 내 글에 '이불킥(자다가도 이불을 찬다는 뜻)' 여러 번 했다"며 "함부로 글을 쓸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한진영(34)씨는 검색 중 중고 거래 카페에 올렸던 과거 게시글을 발견했다. "거래를 위해 기입했던 휴대폰 번호가 그대로 남아 있어" 깜짝 놀랐다. "누군가 이를 발견하고 악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어요."

인터넷과 SNS의 특성상 한번 노출된 게시물과 개인 정보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유효 기간이 없어 삭제는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사람의 기억과 달리 디지털 기록은 영원히 남아 '디지털 주홍글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 저자 송명빈씨는 "SNS는 사진 한 장을 전 세계에 실어나르는 데 1초면 충분하고 내 PC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으리라 믿었던 비밀들은 이미 해커들에 의해 훤히 공개되고 있다"며 "복제와 유통이 자유로운 인터넷은 어떤 개인에겐 항변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의 바다'가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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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관리, 투명하게 해야

디지털 평판은 입학, 취업뿐 아니라 이직,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가 가기 전 솔로 탈출을 위해 직장인 한동훈(37)씨는 SNS 관리에 열심이다. "요즘은 대부분 이성을 소개받기 전에 상대의 SNS나 프로필을 먼저 보기 때문에 페북에 올리는 글이나 카톡 프로필 사진과 문구 등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미혼 남녀 7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개팅 전 SNS 등을 통해 상대의 정보를 확인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설문에 68.8%가 '있다'고 답했다. 'SNS 등을 검색해 얻는 상대방의 정보'는 외모(33.6%), 평소 생각과 사고(26.9%), 과거 연인 관계(9.7%) 순이었다. 직장인 김수정(34)씨는 "소개팅이나 맞선 상대의 정보를 검색해봤다"며 "상대를 판단하는 데 그런 정보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듀오 이명길 연애코치는 "최근에는 연애에서도 효율성을 따지기 때문에 이성도 천천히 맞춰가기보다는 처음부터 자신과 잘 맞는 상대를 찾으려 한다"며 "SNS를 통해서 외모, 성격, 인간 관계까지 확인하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인 만큼 '디지털 외모'도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이직할 때도 마찬가지.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인사 담당자 41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51.4%가 '경력 직원 채용 시 평판 조회를 한다'고 답했다. 평판 조회 결과로 탈락한 지원자가 있다는 응답이 무려 71.6%였다. 평판 조회는 이전 직장의 직속 상사와 전화 통화(45.4%), 이전 직장 인사 담당자와 전화 통화(43.3%)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지원자 개인의 SNS를 확인한다'는 응답도 20.1%나 됐다. 헤드헌팅 전문기업 커리어케어 정민호 부장은 "경력직 채용에서 SNS를 통한 디지털 평판 조회는 지원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기호, 인성을 파악하는 데 참고 자료로 사용된다"고 했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박흥식 교수는 "디지털 시대는 개인의 모든 성공과 실패, 미래의 운명이 평판으로 결정된다"며 "더욱 투명하게 자기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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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전 SNS 등을 통해 상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화 되면서 디지털 평판이 이성과의 만남, 결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gettyimages 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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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사, 세탁소 성업

SNS로 이미지를 관리하는 사람도 늘었다. 취업 포털 사람인이 회원 46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SNS도 이미지 관리가 필요한가'란 질문에 84.2%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인 56.7%가 현재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선 '구어, 은어 등 표현에 신중'(45.8%)에 가장 중점을 두었고, '화나도 감정 표현 자제'(32.8%), '실명 노출 자제'(24.4%), '주변에 SNS 활동 여부 숨김'(13.4%), '주기적으로 기록 삭제'(12.6%)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디지털 평판을 관리해주는 업체와 직업도 등장했다. 디지털 기록들을 깨끗이 처리해준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세탁소' 또는 '디지털 장의사'라고도 불리는 온라인 평판 관리 전문업체는 고객 의뢰를 받고 인터넷이나 SNS에 올라 있는 글과 사진, 동영상 등 각종 게시물을 지워주는 서비스를 대행한다. 국내 20여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2008년 국내 최초의 '디지털 세탁소'로 문을 연 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 대표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뿐 아니라 최근에는 취업과 결혼을 앞둔 성인, 10대 청소년 등 무심코 남겼던 과거 글이나 댓글, 사진·동영상 등을 삭제하려는 고객들 상담과 의뢰가 많다"며 "비방이나 허위 사실을 삭제, 관리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미지와 평판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 업무"라고 말했다. 주요 의뢰 삭제물의 경우 부정 게시글, 사진·동영상 유출, 개인 신상 정보, 탈퇴한 계정 등의 순으로 비용은 데이터양에 따라 3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다양하다. "한 고객은 옛 연인과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결혼 후까지 심적 고통을 겪었지요. 인터넷과 SNS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PC, 디지털로 저장돼 한번 남겨진 기록은 자의든 타의든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고 언제 수면으로 떠오를지 모릅니다." 특히 10대 자녀 교육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디지털 기계에 익숙한 10대 청소년들이 무심코 남긴 기록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올바른 인터넷 사용 윤리와 SNS 사용법을 교육하라는 얘기다.

구글 회장 에릭 슈밋은 "미래에 가장 유망한 비즈니스는 건강·의료 분야와 온라인 평판 관리 사업"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올해 3월 한국고용정보원은 '5년 내 부상할 신 직업'에 '디지털 장의사'를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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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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