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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지자체 혈세낭비> 하루 21만명 예측하더니…부산-김해 경전철 승객 5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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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주도·엉터리 수요예측 정부는 빠지고 지자체만 'MRG 폭탄' 떠안아

부산·김해시 민간사업자에 1조8천억 갚아야…'SCS 방식' 재구조화 추진

연합뉴스

운행 중인 부산-김해경전철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우리나라 첫 경량전철 사업인 부산-김해 경전철이 지난 17일 개통 5주년을 맞았다.

경전철은 지난 5년간 부산 사상역~경남 김해 가야대역 구간 23㎞를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오갔다.

경남 김해시와 부산시가 조촐한 기념식이라도 열 것 같았지만 조용하게 넘어갔다.

시민들은 김해시에 본사를 둔 사업자인 부산-김해경전철㈜이 개통 5주년을 기념해 번개맨 테마 열차를 운행하자 그제야 5주년이 됐음을 알게 됐다.

김해시민 김 모(56) 씨는 "경전철이 매일 시내를 오가지만 엄청난 세금을 먹는 하마여서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부산시와 김해시 양 지자체에 경전철은 여전히 무겁고 힘겨운 짐이다.

◇ 정부 시범사업 첫 추진…민자로 14년 만에 착공

부산-김해경전철은 1992년 8월 국무회의에서 정부 1호 경량전철 시범사업으로 의결됐다.

정부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다가 1995년 3월 당시 재정경제원(경제기획원+재무부)이 민자유치대상사업으로 바꿨다.

이후 2000년 민자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금호산업컨소시엄이 선정됐다가 다시 2002년 현대산업개발컨소시엄으로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3년 1월 ㈜부산-김해경전철을 설립한 후 2006년 2월 착공했다.

정부 시범사업으로 의결한 뒤 민간자본으로 첫 삽을 뜰 때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지역 정치권, 주민 간 '경전철이냐, 지하철이냐'를 놓고 장기간 갈등과 논란을 겪으면서 더 늦어졌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전철은 2011년 8월 30일 마침내 준공 승인을 받고 그해 9월 정식으로 개통했다.

국내 1호 경전철 건설에는 1조3천236억원이 투입됐고 이 가운데 민간자본은 8천320억원이 들어갔다.

◇ 승객 수요예측 크게 빗나가…'MRG 폭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어렵게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은 세금 폭탄으로 날아왔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산하 교통개발연구원이 경전철 개통 전 예측한 하루 평균 예상 승객 수요는 21만1천명이었다.

하지만 개통 첫해 하루 평균 이용객은 3만명에 그쳤다. 예측 수요의 14%에 불과했다.

5년이 지난 현재 하루 평균 승객은 5만명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예측 수요를 크게 밑돌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2002년 12월 13일 당시 건설교통부장관, 부산시장, 김해시장, 부산김해경전철 사장은 '부산~김해 간 경량전철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에 엄청난 족쇄를 채웠다.

협약서 제64조에 명시한 '운임수입보조금'이다.

사업시행자의 실제 운임수입이 예상운임수입(경상가격 기준)의 90%보다 적으면 양 지자체가 분담해 운임수입보조금을 사업자에게 제공하도록 약속했다.

이른바 '최소운영수익보장'(MRG.Minimum Revenue Guarantee) 협약이다.

운임수입 보조금 지급은 운영개시일로부터 무려 20년간이다.

처음 협약한 MRG 90%는 핵폭탄 수준이었다.

양 지자체는 정부와 사업자에게 승객 수요예측이 과다했다고 문제를 제기, 개통 이전인 2005년 MRG 기준을 80%로 변경했다.

또 개통 후 승객수가 턱없이 모자라자 2012년 2차로 평균 74%까지 낮추는 변경실시협약을 했다.

이때 하루 경전철 이용 추정수요도 21만1천명에서 17만6천명으로 조정했다.

10년차 수요는 28만5천명에서 27만2천명, 20년차는 33만5천명에서 32만2천명으로 낮췄다.

양 시 MRG 분담 비율은 현재 김해시가 64%, 부산시가 36% 수준이다.

개통 이전 지자체 간 승객 수요를 예측했는데 김해가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승객 수가 현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두 지자체가 20년간 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할 MRG 부담은 무려 2조원이다.

개통 첫해부터 올해까지 김해시는 모두 1천186억원, 부산시는 700억원 가량을 MRG에 쏟고 붓고 있다.

앞으로 남은 15년 간 양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MRG는 1조8천억원이다.

부산시보다 가용예산이 크게 부족한 김해시로선 엄청난 재정 부담이다.

경전철을 개통해 MRG 폭탄을 맞은 김맹곤 전 김해시장 때는 신규 투자 사업을 아예 하지 않을 정도였다.

김 전 시장은 경전철 이용객 수를 늘리려고 임기 내내 경전철을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3일 김해시장 재선거에 당선된 현 허성곤 시장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경전철을 이용하고 있다.

김해시 한해 필수 살림비를 제외한 가용예산이 1천억원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MRG 600여억원은 심각한 재정 압박 요인이다.

김해시와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경전철이 막대한 적자가 나고 이를 지방자치단체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것은 잘못된 수요예측 때문이라며 국가와 한국교통연구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불법행위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해 모두 기각했다.

정부가 사업을 주도하고 산하기관이 수요예측을 엉터리로 해 민간사업자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예산으로 물어주게 됐는데 정작 정부와 수요예측기관은 쏙 빠지고 지자체만 뒷설거지를 하며 예산난에 허덕이게 된 것이다.

◇ MRG→SCS 방식 사업 재구조화로 '쥐어짜기'…5년 무사고·승객 증가 '희망'

김해시는 MRG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해법 찾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지난 4월 실시한 총선과 시장 재선거 때 각 후보에게 던진 1순위 질문도, 후보들의 대표 공약도 바로 경전철 MRG 해법 찾기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재선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국회의원(김해갑)은 19대 국회 때 도시철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정부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건설한 도시철도로 인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 부담을 경감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확대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실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민 의원은 이후 국토부에 따로 경전철 건설보조금을 증액 신청했지만, 아직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부산~김해경전철이 광역교통망인데도 경남도 역시 개통 이후 지금까지 MRG 분담금은 한 푼도 보조해주지 않고 있다.

김해시는 마지막 경전철 적자 줄이기 카드로 현재 MRG 방식을 비용보전(SCS) 방식으로 바꾸는 사업 재구조화에 매달리고 있다.

시 관계자는 "현재 민간사업 틀은 유지하면서 사업자가 운영 수익으로 비용을 채우고 모자라는 비용을 시가 보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투자자가 재구조화한 사업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고 참여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또 건설출자자, 재무출자자 등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아 조정이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양 지자체와 사업자는 연말까지 사업 재구조화에 따른 조건 등을 맞춘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타당성 조사 용역을 의뢰할 계획이다.

경전철 협약 당사자인 국토부도 인천공항철도를 MRG 방식에서 SCS 방식으로 전환한 경험을 살려 이번 사업 재구조화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부산-김해경전철 남훈 사장은 "MRG는 이미 2차례나 인하해 7천억원에 이르는 시 재정부담금을 줄였다"며 "이제 SCS방식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금리 인하, 운영비 절감 등 3가지 과제를 남겨 놓고 있다"고 말했다.

남 시장은 "무인시스템으로 운행하는 경전철이 5년간 한 건의 인명사고 없이 안정화됐고 승객 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 큰 희망"이라며 "경전철을 대중교통으로 많이 이용하는 것이 적자를 줄이는 최고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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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기지에 대기한 경전철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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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김해경전철 시민소송인단 손배청구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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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맨 테마열차 운행합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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