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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초과수당 안 쳐주는 ‘포괄임금’은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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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밥&법 / 판결 체크]

요양보호사 등에게 포괄임금제는 무효

수당 상관없이 총액 근로계약

고용주 처벌·3년치 소급 지급


‘갑은 을에게 매월 110만원을 지급한다. 급여 총액에는 일체의 법정수당과 상여금 등 제 급여를 포함한다.’

요양보호사 이아무개씨가 2010년 경기도 의정부시 ㅅ노인센터와 맺은 근로계약서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의 구성 항목, 계산 방법 등을 문서로 적어 노동자에게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임금’은 기본적으로는 회사와 일하기로 약속한 시간(소정근로시간) 동안 일했을 때 받는 돈입니다. 만약 이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하거나, 일하지 않기로 한 휴일에 일하거나 하면 회사는 임금을 더 주어야 합니다. 보통 ‘법정수당’으로 불리는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이 바로 이런 추가 임금들이죠.

그런데 이씨처럼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쓰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길게 일하든, 늦게 일하든, 휴일에 일하든 관계없이 이씨는 110만원만 받습니다. 이씨처럼 법정수당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월급에 포함하는 임금 지급 방식을 일반적으로 ‘포괄임금제’라고 부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09년 패널조사 대상 사업장 중 11%가 매일 연장근로 등 초과근로를 하는데, 이들 중 41.4%는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초과근로수당을 따로 지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요양보호사인 이씨는 ‘오전근무(오전 8시30분~오후 6시30분), 오후근무(오후 6시30분~다음날 오전 8시30분), 휴무’로 이어지는 3교대 근무를 했습니다. 오전근무 때는 휴게시간 1시간을 빼고 9시간 일합니다. 근로기준법상 1일 근무시간은 8시간이므로, 1시간 초과해 일했습니다. 오후근무 때는 원래 근로계약서에 따라 4시간을 쉬어야 하지만, 중증 치매환자를 돌보는 업무상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쉬는 1시간을 빼고 13시간을 일했습니다. 역시 8시간을 빼면 5시간의 초과근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밤 10시~오전 6시까지는 연장근로수당과 함께 야간근로수당도 적용받습니다. 결국 매달 51시간의 연장근로와 70시간의 야간근로를 한 셈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계산하면 월 138만여원을 받아야 하지만, 회사는 근로계약서대로 월 110여만원을 줬습니다. ‘노동의 헌법’과 같은 근로기준법을 포괄임금제가 무력화시키는 것이죠. 게다가 이씨는 110만원에서 법대로 줘야 하는 연장·야간근로수당을 빼면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적었습니다.

결국 이씨와 이씨의 동료는 ㅅ노인센터 이아무개 대표를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고, 검사도 같은 혐의로 이 대표를 기소했습니다.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안은진 판사는 “요양보호사의 업무특성상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출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며 포괄임금제를 인정했습니다. 포괄임금제가 정당하기에 이 대표의 근로기준법 등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죠. 하지만 2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이정호)는 “요양보호사들의 업무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포괄임금제를 무효로 판단하고, 이 대표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출퇴근 시간 및 근로 제공 장소가 정해져 있고 △정해진 일과에 따라 상당한 밀도의 업무를 했으며 △야간근로 시간에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상당하다며, 포괄임금제로 받는 월급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는 지난 8일 2심을 확정판결했습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에는 없습니다. 다만 대법원 판례는 경비노동자 같은 감시·단속적 근로처럼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 포괄임금제로 임금을 지급해도 노동자에게 불리하지 않으면 이를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고, 포괄임금제로 받는 월급이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면 포괄임금제는 인정될 수 없습니다. 포괄임금제가 무효가 되면, 3년간 받지 못한 법정수당을 회사에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근로기준법 무력화에 악용되곤 하는 포괄임금제는 법으로 제한돼야 합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13년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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