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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조선 구조조정 1년 허송… ‘제2 한진’ 나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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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잃은 산업 구조조정]<上>막다른 길에 선 조선업

정부 작년 10월 협의체 꾸려놓고 총선때까지 뒷짐, 이후에도 無대책

조선 빅3 수주절벽 몰려 존폐 위기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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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명운을 거머쥔 산업 구조조정이 1년째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정부는 자율적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한발 물러섰고 민간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만 바라보고 있다. 구조조정을 책임지고 밀어붙일 주체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6일 금융 당국 및 재계에 따르면 조선 해운 건설 철강 석유화학 등 이른바 ‘5대 취약업종’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련 부처 차관 등이 참석해 지난해 10월 열린 ‘제1차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다. 이 협의체는 다음 달 2차 회의에서 “업종별로 자율적 구조조정을 돕겠다”는 결론만 내린 뒤 올해 4월 총선까지 거의 반년간 자취를 감췄다. 일부에선 “금융위에만 맡겨둔 채 타 부처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총선의 여운이 지나간 4월 26일 열린 3차 회의에서 임 위원장은 ‘사즉생(死則生)’이란 단어까지 동원하며 정부가 조선·해운 구조조정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협의체는 6월 초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회의’로 격상돼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청와대 ‘서별관 회의’(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를 둘러싼 논란과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 등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 동력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총선으로 반년을 허비한 구조조정이 다시 6개월의 공백기를 맞은 것이다. 그 사이 한진해운은 대책도 없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 한국 경제의 큰 짐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 상황이 급격히 변하는 시점에서 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조선, 철강 등에서 제2, 제3의 한진해운 사태가 속출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조선해양부문),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빅3’는 현재까지 수주 목표량의 18%밖에 채우지 못해 자구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한편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30일 정부의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나온다”고 밝혔다. 지지부진한 산업 구조조정으로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과연 이번에는 진전된 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선박수주 빈손… 자구안 이행 제자리… “내년 오는게 두렵다”


정부는 올해 6월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 계획’을 통해 조선업 구조조정 계획을 공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과는 미미하다. 4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 3’의 수주량은 당시 수주전망(올해 180억 달러)의 18% 수준에 그쳤을 정도다. 자구안 이행도 더디다. 재무구조 개선 계획은 틀어졌고, 내년 시황 전망도 밝지 않다. 기존 자구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우조선, 완전자본잠식에 소난골 리스크

정부는 6월 클라크슨리서치(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분석과 삼정회계법인 실사 결과를 토대로 올해 조선 ‘빅 3’의 수주액을 현대중공업 65억 달러(조선·해양 부문만), 삼성중공업 53억 달러, 대우조선해양 62억 달러로 추정했다. 하지만 26일까지 수주량은 현대중공업 23억 달러, 대우조선 10억 달러에 그쳤다. 삼성중공업은 아예 한 건도 없다.

다음 달 초 클라크슨리서치가 2017, 2018년 수주 전망을 발표하면 후폭풍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보다 악화된 전망이 나오면 정부가 2018년까지의 수주 전망을 바탕으로 만든 구조조정 계획이 완전히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급한 곳은 대우조선이다. 6월 14개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사옥 매각 협상은 당초 코람코자산신탁과 진행해 오다 최근 결렬되면서 캡스톤자산운용으로 바꿨다. 특수선 사업 분할, 서울 강서구 마곡 연구개발(R&D) 용도의 부지 매각 작업도 지연되고 있다.

정성립 사장이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의 드릴십 인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당초 계획했던 이달 내 인도는 불가능해졌다. 내년 94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올 예정인데 소난골의 잔금 1조1000억 원이 들어오지 않으면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대우조선은 이미 상반기(1∼6월)에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상태여서 다음 달 중순부터 최대 1조6000억 원 규모의 자본 확충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연간 실적을 기준으로 완전자본잠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상장 폐지 수순을 밟아야 한다.

○ 현대, 삼성중공업도 미래 불투명

현대중공업은 재무구조 개선안의 핵심인 하이투자증권 매각부터 꼬였다. 현대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을 통해 보유한 하이투자증권 지분 85.3%의 장부상 가격은 8261억 원이지만 인수 경쟁이 식으면서 시장 가치는 6000억 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그간 투자한 금액을 감안하면 5000억 원을 공중에 날려야 할 판이다. 시장 가격 하락으로 현대중공업은 당초 목표로 잡았던 연내 매각 계획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은 일감이 줄어들면서 7월 울산의 10개 독 중 4번 독의 가동을 잠정 중단했다. 여기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27일 5번째 부분파업을 벌일 예정인 것도 부담이다.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이 7월 말 공동 담화문을 통해 “여러분이 선주라면 붉은 띠 두르고 파업하는 회사에 공사를 맡기겠느냐”며 노조를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삼성중공업은 수주가 관건이다. 박대영 사장은 지난달 임시주주총회에서 “발주처와 단독 협상 중이거나 매매의향서(LOI) 체결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 수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ENI의 모잠비크 부유식 액화천연가스생산설비(FLNG), 인도 게일의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등 굵직한 수주 프로젝트들이 발주사 사정으로 계약이 늦춰지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건조를 마친 선박 인도마저 미뤄지는 마당인데 지금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내년 하반기 ‘일감절벽’ 대비해야

더 큰 문제는 산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6월 이후 정부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자구안 이행을 통해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뿐이다. 산업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26일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현재까지 14개 주채권은행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및 기업개선절차(워크아웃)를 진행한 기업 184곳 중 정상적으로 졸업한 기업은 50곳(27%)에 그쳤다. 184곳에 투입된 자금 71조8402억 원 중 회수된 금액은 22%인 15조8043억 원이었다.

조선업계는 내년 하반기(7∼12월) 일감절벽을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내년 하반기부터 상선을 중심으로 발주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 시기 조선 3사의 수주잔량은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해양플랜트 시장은 2020년까지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전문가는 “내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1년간 일감절벽 시기를 대비해 조선산업을 아우르는 계획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자국 내 선박과 군함 발주를 늘려 일감을 제공하고, 업체들은 혹독한 구조조정과 선박 개조사업 등 새로운 먹거리를 통해 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강유현 yhkang@donga.com·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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