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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15조 쓴 일자리 사업, 제자리 못찾고 ‘헛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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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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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일자리 사업이 목표 대상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경제의 신진대사를 지연시키는 등 문제투성이여서 재편이 시급하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평가가 나왔다.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일자리 사업을 펼쳐야 한다는 쓴소리도 내놨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26일 내놓은 ‘일자리 사업 심층 평가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산업구조조정과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경제적 도전이 다가오고 있다”며 “경제 내 신진대사를 촉진하면서 기업이 아닌 개인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일자리 사업을 대폭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부의 일자리 사업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대폭 확대됐다. 직업훈련과 직접 일자리 창출 사업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본격화된 데 이어 최근에는 고용 서비스, 창업 지원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실업급여 등 5조7000억원, 고용장려금 2조8000억원, 직접 일자리 창출에 2조6000억원 등 25개 부처 196개 정부 일자리 사업에 15조8000억원이 투입됐다.

윤 교수는 정부 일자리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수혜 대상이 분명하지 않고 경제의 신진대사를 지연시키는 점을 꼽았다. 고용촉진보조금의 경우 취약계층 취업을 촉진한다는 당초 목적보다 영세사업장 지원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취약계층이 느끼는 체감도는 낮은 반면 경쟁력 없는 기업이 퇴출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본의 생산성 고도화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자본과 노동이 생산성이 높은 부분으로 신속히 이동하고 비생산적인 부분이 지체 없이 퇴출하는 시스템적 탄력성이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부 주도 관행으로 인해 일자리 사업이 경직적으로 운용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정부가 주도·통제하는 직업훈련이 이뤄지는 분야와 취업률이 높은 분야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일선 센터장을 중앙부처 공무원이 독점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목됐다.

부처별로 사업 기획이나 예산 책정, 사업 추진, 전달 체계가 파편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자리 사업의 성과관리를 제대로 못하게 하는 이유로 거론됐다. 보고서는 “일자리 사업과 구직자가 접촉하는 온·오프라인 인터페이스는 부처별로 운영될 뿐만 아니라 서로 분리돼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용하기 어렵다”며 “일원적 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아 성과관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정부가 시장의 신호를 왜곡하지 않고 시장규율 등 환경을 정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일자리 사업은 기업·산업이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고 인력이 이동하는 경제 내 신진대사를 증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결국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보호해야 하며 ‘일정 수준을 무조건 보장’하는 방식보다 ‘새로운 시도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 변화의 흐름을 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일자리 사업에 대한 정부개입 방식을 명문화해 공무원의 과도한 재량을 축소하고, 고용센터장을 민간 공모하는 등 포괄적으로 민간에 위탁해야 한다”며 “직접 일자리 창출 사업의 부처별 난립·확장을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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