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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 내 댓글이 무심히 파묻혔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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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자의 ‘베스트댓글’ 도전기



한겨레

웹툰 작가들도 ‘베댓’(베스트 댓글)을 유심히 본다. 첫 탈북자 출신 작가 최성국씨가 네이버 ‘베스트도전’ 코너에 연재하는 ‘로동심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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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차 기자, 나도 ‘베댓’이 되고 싶었다. 베댓은 ‘베스트 댓글’의 줄임말로, 누리꾼들의 추천 또는 공감을 많이 받고 가장 먼저 노출되는 댓글을 말한다. 이 지면에 실리는 기사량은 원고지 200자 기준 19~20장. 평소 고된 문자 노동에 시달리는 기자라면 베댓쯤은 씹어먹을 줄 알았다. 결과는? 21~22일 이틀 동안 네이버·다음 웹툰을 이리저리 오가며 열심히 두드렸건만 6전5패1승. 눈물 젖은 베댓 하나 건지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베댓 되는 법을.

타이밍, 그것도 능력 누리꾼들이 예부터 말하기를 “베댓은 1%의 드립력과 99%의 타이밍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포털 웹툰 서비스에 웹툰이 올라오는 시간은 보통 밤 11시 전후. “11시16분에 올라온 걸 17분에 댓글 써서 베댓이 됨? 읽긴 함?”(네이버 인기 웹툰 <기기괴괴>(오성대) 138화 ‘미래사령 #1’에 달린 댓글 중에서) 현실에선 찰나에 불과하나 베댓의 세계에선 초 단위로 운명이 갈린다. 21일 밤 <기기괴괴> 138화는 공개 1시간 만에 댓글이 1800개 이상 달렸다. 네이버 금요 웹툰 조회수 1위 <외모지상주의>(박태준)는 회당 댓글이 2만개를 넘는다. 이 중에서 실시간 댓글보다 먼저 노출되는 베댓은 오직 15개다.

21일 밤 12시13분 <기기괴괴> 138화, 12시28분 <가우스전자>(곽백수) 148화 ‘점심시간’편에 각각 댓글을 달았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기기괴괴>에는 다음 화에 대한 추측을, 직장인 애환을 다루는 <가우스 전자>에는 “저녁이 있는 삶→헬조선 패치→저녁 먹어도 일이 있는 삶”이라고 써봤다. 두 댓글은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무심히 댓글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역시 베댓은 타이밍이다. 그리고 개그맨 박명수의 명언대로 “늦었다고 생각할 땐 너무 늦다”.

간신히 건진 ‘베댓’ 하나
이틀간 포털 이리저리 오가며
죽어라 자판 두드렸는데…
인기 웹툰은 공개되자마자
댓글 수천개가 와르르
‘타이밍이 99%’ 새삼 느꼈다

‘베댓뽕’이 뭐기에
설명형에 공감형·칭찬형 댓글까지
치열하다 못해 가히 전쟁이다
마치 마약처럼 중독성 강하다나…
잠깐, 당신은 재치 없어 못한다고?
절망 말라 비법이 이 글에 있으니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다고 했던가. 조회수 높은 웹툰은 그만큼 베댓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21일 밤 12시50분 다음 웹툰 <달콩분식>(수박) 1화를 열었다. 아직 댓글이 100개를 넘지 않았다. 승산이 있다. <달콩분식>은 어렸을 때 엄마를 잃은 아픔을 가진 여대생 박기나가 주인공이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 댓글로 옮겨봤다. “아직도 문패에는 엄마 이름이…매일 그 앞을 지나다녔을 아빠의 마음을 딸은 알까요.” 반응이 온다! 새벽 1시37분 추천 15개를 받고 일단 ‘베스트’ 표시가 달렸다. 23일 오후 2시 기준 추천 58개를 받고 댓글 목록 6번째에 자리잡고 있다. 이틀 동안 건진 유일한 베댓이다. 그냥 “나 씻고 올테니까 베댓 만들어놔” 이렇게 쓸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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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22일 이틀 동안 건진 유일한 ‘베댓’. 다음 웹툰 ‘달콩 분식’ 1화 댓글창. 표시된 베댓이 기자가 단 댓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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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댓뽕’이 뭐기에 치열하다 못해 전쟁에 가까운 ‘베댓 경쟁’에 사람들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는 뭘까. 사이버 공간 속 개인들의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식의 표현 수단이라는 점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최근에는 ‘베댓뽕’이라는 다소 듣기 민망한 신조어까지 생겼다. 베댓에 오른 기쁨이 마치 마약처럼 황홀하고 중독성 있다는 뜻이란다.

김미영(가명·40)씨도 베댓뽕 유경험자이다. 그는 2012년부터 ‘고급 유머’ 앱을 출근 때마다 들여다본다. 그런 그에게 첫 베댓의 기쁨을 준 댓글은 “나 지금 누워 있는데, 누워 있는 사람들 누구?”다.

충실한 독자가 많은 이 앱에는 김씨 외에도 베댓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비법으로 통하는 것은 “싸면서 댓글 달면 베댓 간다”이다. 이 앱은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하루 두 번 업데이트가 이뤄지는데, 아침에 화장실 가는 시간이 보통 업데이트 직후. 새로 올라온 글을 보자마자 댓글을 달면 베댓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고급 유머’ 앱은 ‘베댓’이 되면 알람을 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베댓 열망’에 부응하고 있다. 김씨는 “베댓은 한번은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베댓 알람을 받고 정말 신기하고 기뻤다. 알람을 받고 자신의 좋아요를 누른 사람 십수명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베댓뽕’에 취한 김씨는 자신의 사연을 팔기도 했다. 올해 초 결혼식을 올리고 ‘나이 마흔에 시집가요’라고 썼더니 베댓이 됐단다. 그는 “베댓이 돼 기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축하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좋아요’ 개수로 자신의 댓글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수치화된 서열로 즉각 확인할 수 있다는 디지털적 특성도 베댓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베댓뽕’은 본문보다 댓글을 먼저 보고 댓글 중에서도 베댓부터 챙겨 읽는 요즘 댓글 소비 성향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원래 악플이나 광고성 댓글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베댓은 그 의미가 확장돼 이젠 그 자체가 콘텐츠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이러한 현상을 포착해 ‘올 상반기 20대 트렌드 키워드’로 댓글과 커뮤니케이션을 합쳐 ‘댓글리케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천기누설 ‘베댓 되는 법’ 언제까지 타이밍 탓만 할 수는 없다. 재치가 없다고 절망하기에도 이르다. 베댓도 아는 것이 힘이다. 네이버와 다음 웹툰·뉴스 담당자들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효과 있는 유형별 베댓을 정리해봤다. 먼저 눈여겨볼 유형은 설명형·전문가형이다. 다음 웹툰 관계자는 “댓글은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며 또다른 재미를 느끼는 창구”라고 말한다. 바둑에서 착안한 <미생>(윤태호)이 대표적이다. 첫 시즌 연재 당시 작성자명 ‘허허허’는 매회 소개되는 기보를 해설해주는 댓글을 달았는데 대댓글(댓글에 달리는 댓글)이 수백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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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작가의 웹툰 ‘마음의 소리’ 1054화 ‘10년’에 달린 ‘베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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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기념형 또는 축하형. 최근 10주년을 맞은 네이버 대표 웹툰 <마음의 소리> 1054화 베댓은 “10주년 축하드립니다”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예 문장이 아니어도 된다. <목욕의 신> 하일권 작가는 2013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베댓을 보며 독자 반응을 살피는데 가장 좋아하는 댓글은 ‘ㅋㅋㅋㅋㅋㅋ’다”라고 했다.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이야말로 만화가에겐 최고의 칭찬이라나.

뉴스 댓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네이버는 하루 3만개씩 송고되는 기사들 중에서 선행·미담 기사 등을 모아 <오아시스 뉴스> 코너를 운영한다. 코너 속 코너인 ‘이주의 댓글’도 있는데 “노쇼하는 사람 정말 노브레인” “운동을 하면 병이 하나 더 생긴다, 장비병” 같은 베댓이 볼만하다. 네이버 관계자가 밝힌 ‘이주의 댓글’ 선정 기준은 ‘대댓글이 많은 댓글’, ‘패러디·아재개그 등 웃긴 댓글’, ‘공감요소가 있는 댓글’, ‘풍자 댓글’,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댓글’ 등이다. 지난 8월 소개된 “답답하고 속상하다. 내가 나인 게”라는 베댓에는 68개의 대댓글이 달렸다. 무슨 사연인가 봤더니 뉴스 제목이 ‘졸업과 동시에 ‘백수’ 한숨 커진 대학교 졸업식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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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에서 ‘이주의 댓글’로 선정한 ‘베댓’. 대댓글도 베댓 못지 않게 ‘드립력’이 출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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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에서 ‘이주의 댓글’로 소개된 ‘베댓’과 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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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댓 되는 법’을 실은 책도 나왔다. 쉽고 재밌는 글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펴낸 <서민적 글쓰기>(생각정원 펴냄)에서 “할 일 없는 사람만 댓글을 다는 건 아니다. 오류를 지적하거나 기사에 없는 정보를 알려주는 목적으로 댓글을 다는 분들도 있다. 댓글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깨닫기도 한다”며 댓글시대가 열렸다고 썼다. 기생충학과 교수인 그는 기생충 관련 기사 베댓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베댓 되는 법’ 첫째는 ‘1초 후에 이해되는 댓글을 쓰자’이다. “에라이 나쁜 놈” 같은 원초적이고 읽자마자 바로 이해되는 댓글 말고 “아, 그렇구나” 싶은 댓글을 쓰라는 게 그의 충고다. 둘째 ‘촌철살인’ 단어를 쓰자’, 셋째는 ‘웃기면 공감한다’이다. 그는 리디아 고가 고려대에 진학했다는 뉴스에 달린 “리디아 서였으면 서울대로 갈 수 있었는데 아깝다”는 베댓을 예시로 들었다.

서민 교수의 마지막 충고는 바로 이것. 스마트폰만 하지 말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자. 그래야 댓글도 잘 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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