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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노동계 연쇄파업 부른 '성과연봉제'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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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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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지난 22일부터 연쇄 파업에 돌입한 노동계는 정부가 주도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고용 안정을 해치고 임직원 사이의 과당경쟁을 유발하는 심각한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성과연봉제는 개인과 팀이 달성한 실적과 연계해 급여, 승진과 같은 보상을 제공하는 인사 체계다. 일한 기간, 직급과 학력 등이 주된 보상 기준인 연공서열제와는 달리 개인의 업무 기여도와 역량이 평가의 주된 척도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연봉제는 보상이 주어지면 개인이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전제로 기능하는 체계이기도 하다. 성과 수준에 따라 금전 등 보상을 차등 지급하면 직원들이 이를 의식해 자발적으로 경쟁하면서 성과 향상에 나선다는 취지다.

예컨대 관리자를 제외한 직원이 8명인 인사관리 부서에서 성과연봉제를 적용해 직원 순위를 매겨 A~D의 등급으로 업무 평가를 한다. 각 등급은 정원이 있어서 2명 정도는 A등급을 받아 이듬해 임금을 높여 받을 수 있다. 다른 2명은 B등급을 받아 임금을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인상받고 또 다른 2명은 C등급으로 동결, 나머지 2명은 D등급을 받아 오히려 급여가 삭감된다.

이 경우 평가에서 A나 B를 받은 직원들은 이듬해에도 임금을 높여 받기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고 C 또는 D를 받은 이들은 자극을 받아 업무 성과를 향상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거나 제 발로 조직을 떠난다는 논리다.

◇일한 만큼 벌어간다는 성과연봉제…주관성 배제 어려워

성과연봉제는 일한 만큼 벌어갈 수 있고 업무 성과가 떨어지는 사람은 적은 임금을 받아간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체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직원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관리자나 회사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평가 기준 자체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업무 상 실패가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해 직원들이 일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책임을 다른 부서 또는 직원에게 떠넘기는 일이 늘어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기업 어도비의 경우 상대평가, 연례평가 등이 특징인 성과관리 제도를 적용한 뒤 부작용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평가로 인해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을 꺼리고 내부에서 공정성에 관한 불만이 심화하면서 직원 이탈이 급증했다. 실질적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임직원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부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어도비는 또 성과주의에 따른 평가 절차를 만들고 이를 위한 별도의 업무를 하게 되면서 조직 효율성이 오히려 낮아진다고 판단해 과거의 성과주의 기반 인사체계를 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기업을 넘어 공적 성격이 있는 조직에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면 그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최근 기금 고갈 우려가 제기되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성과연봉제 강화로 운용 손실이 인사 평가에 반영될 것을 두려워해 직원들이 소극적으로 투자하는 등의 행태가 발생하면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쓰일 자금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과 경쟁이 지속되면서 평가 기준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치로 산출해내기 어려운 업무 성과를 계량화 하게 되면서 점차 업무 수행과 관련 없는 평가 지표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과연봉제를 시행 중인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는 간호사의 목표관리제(MBO) 지표 가운데 하나로 '토익 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토익 900점 이상일 경우 가중치를 30%, 한 달에 저널을 4개 읽거나 요약문을 4개 작성하면 가중치를 각각 20%를 부여한다. '선배와의 관계 유지'도 평가 지표로 활용, "관리자의 관리스타일과 일하는 방법을 파악해 팀원으로써 일의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항상 밝게 인사한다", "휴식시간·점심시간·친목모임에서 만난다" 등을 구체적인 업무 추진 과제로 두고 있기도 하다.

◇성과연봉제 효과는 '효율성'…무임승차자 방지·유연고용 필요

정부와 기업에서는 성과주의가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일하지 않고 보수만 챙기는 이른바 무임승차자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도 고용이 안정적인 조직의 인사적체, 일하지 않는 책임자급 직원 등이 조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1110곳을 대상으로 성과주의로 대표되는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70%에 해당하는 777곳이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설문에 참여한 기업 44.9%가 합당한 사유라도 해고가 어렵다는 점에서 성과주의 도입을 찬성했다. 또 능력 중심으로 경영할 수 있어 찬성한다는 답변이 36.4%, 정규직이 과보호 되고 있는 것 같다는 기업도 18.7%로 나타났다.

정부와 기업들은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 청년 실업률 증가 등을 이유로 상대적으로 유연한 고용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처음에는 각각 직무주의와 연공주의 인사체계로 시작했으나 결국 성과주의로 수렴했다는 해외 사례 또한 정부와 기업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부와 기업은 이같은 맥락에서 노동계 파업을 '밥그릇 챙기기'라며 극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또 파업 과정에서 국민이나 고객이 많은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경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실정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조선업에 이어 해운업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고 특히 청년과 중장년층의 고용사정이 어느 때보다 어렵다"며 "공공·금융부문의 정규직 노조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은 90%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 특히 일자리가 절실한 청년들에게 실망과 좌절만 안겨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총파업을 벌일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법적 의무를 이행해 나가야 한다"며 "(파업 과정의) 불법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s.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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