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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포퓰리즘에 흔들리는 KBO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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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신문범 엘지 트윈스 사장(왼쪽 두번째부터),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왼쪽)와 김현웅 법무부 장관, 박한우 기아 타이거즈 사장 등이 31일 잠실 구장에서 진행된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 앞서 ‘배려, 법질서 실천운동과 클린 베이스볼 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갖고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잠실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것인가. KBO가 상벌위원회의 칼날을 뚜렷한 원칙이 아닌 여론의 추이를 살핀 뒤 휘둘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상당수 구단 관계자들은 “KBO의 칼날이 어디를 겨눌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몸을 사리고 있는 형국이다. 불필요한 오해로 불이익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KBO는 최근 KIA 임창용(40)에게 3경기 출장정지와 사회봉사활동 120시간 제재를 부과했다. 지난 27일 광주 KIA전에서 2루 주자였던 오재원에게 위협구를 던졌다는 이유였다. 임창용은 견제를 하기 위해 투수판을 밟고 있던 발을 푼 뒤 한 스텝 밟고 주자를 향해 공을 던졌다. 지난 28일 이 장면이 회자됐는데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견제 사인이 맞지 않았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이도 없었고 여러 정황상 그럴 만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는 ‘선수들끼리만 아는’ 얘기들도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당시 현장에 있던 심판위원들이 구두경고한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되는 듯 여겨졌다. 심지어 이날 경기를 앞두고 KIA 이대진 투수코치와 임창용이 두산 더그아웃을 찾아 오재원과 오해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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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양해영 사무총장이 지난 해 경주에서 벌어진 U-12 전국유소년야구대회 개막선언을 하고 있다. 제공 | KBO


종료된 듯 하던 사건은 29일 KBO가 상벌위원회를 개최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상벌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제재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사건발생 5일 이내에 위원회를 소집해 의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나와있다. 사건발생 사흘 만에 상벌위를 개최했으니 절차상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시 경기가 ‘제재사건아 발생했는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당사자들은 없다. KBO측은 KIA 구단에 “상황의 추이를 지켜봐왔다. 과거 민병헌 사건과 같은 사례로 보면 된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뒤가 맞지 않는 옹색한 변명이다.

우선 절차상 문제다. 수도권 구단의 한 관계자는 “경기 당일 심판에게 구두경고를 받고 일단락된 문제가 왜 상벌위원회에 회부될 안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방 구단의 한 관계자 역시 “야구를 좀 아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고 돌아온 베테랑 투수가 고의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시시비비를 가리려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까지 파악하는 게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누가봐도 명백한 임창용의 잘못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퇴장을 명령했어야 한다. 심판이 견제로 인정한 상황인데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위협구’ 혹은 ‘빈볼’로 규정했다. 여론에 등떠밀려 상벌위를 개최한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현장에서는 제재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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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이 2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6-4로 승리한 뒤 마무리로 호투한 임창용과 하이파이브로 자축하고 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징계를 내린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KBO 리그규정의 벌칙내규에는 ‘2. 감독, 코치 또는 선수가 상대편 선수 또는 심판위원을 구타하여 퇴장 당했을 때’와 ‘7. 감독, 코치 또는 선수가 심판판정 불복, 폭행, 폭언, 빈볼, 기타의 언행으로 구장질서를 문란케 하였을 때’ 등의 조항이 있다. 상벌위에서는 벌칙내규 7항을 근거로 임창용에게 제재를 부과했다. 리그규정 24조에는 ‘빈볼, 폭행, 도핑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경우 해당 소속팀에게도 제재금을 부과한다’는 규정도 있지만, KIA는 벌금을 부과받지 않았다. 벌칙내규에는 심판위원에 대한 사항도 있는데 1항에 ‘야구규칙 적용을 잘못하였을 때 경고, 제재금 50만 원 이하’를 부과하도록 명시 돼 있다. 임창용이 벌칙내규에 해당했다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규칙을 적용했어야 한다. 심판위원이 벌칙내규까지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면, 경기운영위원이 이를 알려주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상식이다. 이들에 대한 제재는 없이 비난받는 선수만 징계했다는 것은 KBO가 포퓰리즘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자임하는 꼴이다.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겉모양만 보기 좋은, 중장기적 고려없는 눈 앞의 국면만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책을 내세웠다. 투명하고 공정한, 제 식구 감싸기식 규정적용이 사라져야 KBO의 권위와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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