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靑 익명 인사 입 빌어 조선일보 도덕성 파상 공세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한국일보


조선일보 송희영(62) 전 주필이 지난해 청와대에 대우조선해양 인사청탁 로비를 시도했다는 ‘폭로’가 30일 청와대에서 나왔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한 연합뉴스의 보도를 통해서다.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는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송 전 주필을 겨냥한 발언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것만으로, 조선일보에 대한 청와대의 분노와 전의(戰意)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한 조선일보를 청와대는 ‘정권을 흔드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이미 규정한 터다.

송 전 주필이 지난해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고재호(61ㆍ구속)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을 청탁했다 관철되지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가 제기한 의혹의 골자다. 송 전 주필의 초호화 외유 의혹 제기에 이은 도덕성 공격 2탄 격이다. 이 관계자는 송 전 주필이 청탁한 대상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당시 경제수석이던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등이 거론된다.

고 전 사장은 송 전 주필과 남상태(66ㆍ구속)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수환(58ㆍ여ㆍ구속)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가 다녀온 문제의 2011년 유럽 외유에 동행한 인사다. 연임에 실패한 고 전 사장은 사기ㆍ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있다. 송 전 주필의 인사 청탁 시도가 사실이라면, 대가를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송 전 주필과 조선일보의 도덕성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주장한 대로 ‘부패 기득권 세력’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26일과 29일 송 전 주필의 호화 외유 논란을 연달아 폭로하는 동안,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었다. 청와대가 김 의원의 배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선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런 청와대가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조선일보에 끝내 포문을 연 것은 ‘끝까지 몰아 붙이겠다’는 강한 뜻으로 해석됐다. 조선일보가 막강한 언론 권력을 이용해 정권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우 수석 흔들기는 그런 사례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청와대의 인식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송 전 주필의 의혹을 직접 제기해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면서 ‘청와대의 조선일보 손 보기’, ‘우병우 수석 사퇴 물 타기’ 등의 의혹들을 상당 부분 시인한 셈이 된 점이다. 친박계 김진태 의원에게 조선일보 공격 자료를 준 것도 결국 청와대 아니냐는 의심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특정 언론을 대놓고 공격하고 폭로 정치에 가담하는 것 자체가 언론 억누르기 논란을 부르고, 정권 체면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이에 청와대 인사들은 연합뉴스 보도가 나간 뒤로는 송 전 주필의 의혹과 관련해 말을 아끼며 수습에 나섰다. 한 관계자는 “송 전 주필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떠도는 것을 알고 있다”며 “보도된 것은 한 관계자의 발언일 뿐, 청와대가 정식으로 의혹을 제기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전략적 치고 빠지기’라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 주변에선 ‘소문’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송 전 주필을 비롯한 조선일보와 관련된 다양한 의혹들이 오르내린 게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인사 청탁 의혹이 제기된 이후 약 4시간 만에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일보사는 30일 송희영 전 주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앞서 송 전 주필은 대우조선해양의 초호화 외유를 다녀왔다는 의혹이 폭로된 29일 주필 겸 편집인 보직에서 해임됐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한국일보

청와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