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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운전자 10명 중 8명이 "운전하며 '내비' 조작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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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폭탄' 되지 맙시다] [6·끝] 알면서도 어기는 안전수칙

목적지 입력하다 앞차와 "쿵" 전문가들 "음주 운전만큼 위험"

운전 중 조작을 차단하는 기능, 전체 내비 중 12%정도에 불과

택시기사들 '운행모드' 선택 않고 콜 확인 위해 수시로 들여다봐

지난 6월 8일 오전 부산의 남항대교(大橋) 위를 달리던 승용차가 좌우로 미끄러지듯 운행하다 길가에 설치된 안전방호벽을 들이받고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김모(30)씨가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보니 도로 위에는 물이나 기름처럼 사고를 유발할 만한 물질은 전혀 없었다. 김씨가 과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내비게이션이었다. 김씨가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빠른 길을 안내해서 운전자를 돕는 장치인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오히려 교통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서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운전자는 최소 1000만명이 넘는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업계 1위인 'T맵'은 월 사용자 수 800만명을 기록했다. 2위인 카카오내비의 월간 이용자 수는 340만명에 달했다. 차량 내장형이나 거치식 내비게이션을 빼고 모바일 내비게이션 이용자만 합쳐도 국내에 등록된 차량(2146만4224대)의 절반을 넘는 것이다.

조선일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인근 도로에서 한 운전자가 목적지를 변경하기 위해 운전 도중 내비게이션 화면을 만지고 있다.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다 적발되면 범칙금 6만~7만원에 벌점 15점이 부과된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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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지난 28~29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운전자 14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7.6%가 운전 중에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조작을 해 본 운전자 가운데 32.5%는 실제 사고를 냈거나 신호 위반을 하는 등 위험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운전 중 내비게이션 조작이 졸음운전이나 음주 운전만큼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설재훈 박사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는 시간이 깜빡 조는 것보다 긴 데다, 제대로 입력하려면 운전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5월 25일 오후 11시쯤 상주청원고속도로 상행선 낙동분기점 1㎞ 지점에서 신모(34)씨가 몰던 11t 트럭이 4중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 트럭에 처음 받힌 승용차의 트렁크가 운전석까지 찌그러질 정도로 큰 사고였다. 이 사고로 중간에 낀 승용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의 아들(당시 4세)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등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 결과, 트럭 운전자 신씨는 내비게이션 조작에 열중하느라 앞서가던 차량을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순간까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위험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2012년 8월부터 출시된 신차(新車)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에 대해 운전 중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거치식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의 경우 대부분 이런 기능이 없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운전 중 조작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는 내비게이션은 전체의 12.5%에 불과했다. 내비게이션 10대 중 9대는 여전히 운전 중에도 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택시 기사 30만명 중 23만여 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택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기사들은 주행 중에는 '운행 중' 모드를 선택해서 손님을 연결해주는 콜(call)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 기사는 손님의 목적지와 가까운 곳의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 운행 중에도 끊임없이 콜을 받는다. 본지가 택시 승객 1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기사가 3~5초에 한 번씩 콜을 확인했다는 응답이 19%였고, 10초에 한 번씩 콜을 확인했다는 응답도 10%였다. 콜서비스의 위험과 관련, 카카오택시 관계자는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사들의 주행 중 휴대전화 조작에 대해 카카오택시가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안전 운행을 당부하는 공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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