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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커버스토리] 음료수서 명품까지…자꾸 왜 팝업스토어에 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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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뜨는 ‘트렌드 상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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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판교점 ‘전구소다’ 팝업스토어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백열전구 모양의 컵에 음료를 담아주는 독특한 컨셉트 덕분에 SNS에 올라온 관련 게시물만 2만여 건이 넘는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처럼 바이럴을 시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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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스토어. 우리는 왜 그 앞에서 줄을 서는가. 내 의지로, 내 발로 찾는다고만 생각했던 팝업스토어. 하지만 알고보면 나도 모르는새 나를 끌어들이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소다수에서 럭셔리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1년 365일 내내 열리는 팝업스토어의 비밀을 파헤쳤다.

| SNS 날개 단 팝업스토어

톡톡 튀어야 산다 ‘팝업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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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퍼진 팝업스토어는 하루 수 천 만원대 매출을 가볍게 올린다. 유명 백화점 바이어들이 이른바 ‘돈 되는 팝업’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는 이유다. 하루에 수 천 만원의 매출을 기록한 히트 팝업스토어가 쏟아지는 데는 이런 노력이 포함돼 있다. 히트 품목인 몽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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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스토어는 한동안 짧은 시간에 매출을 극대화하거나 상품의 시장가치를 테스트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로 쓰였다. 그런데 요즘 팝업스토어는 뭔가 이상하다. 때론 돈 벌 생각은 아예 없이 돈 쓸 생각만으로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처럼 보인다. 때론 시장의 뉴페이스의 상품가치를 확인해볼 요량은커녕 오히려 상품성이 확인돼야만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젠 너무나 흔해졌지만 그만큼 더 속사정을 알기 어려운 팝업스토어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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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 같은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려면 많게는 하루 임대료 수 천 만원, 인테리어비용까지 포함하면 수 억원이 들어가기도 한다. 매출만 생각하면 큰 손해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고 잠재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올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열린 루이비통 팝업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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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일부터 7월 한 달 동안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2층에는 루이비통의 남성복 팝업스토어가 생겼다. ‘모노그램 이클립스’라인이 7월 15일 전세계 동시 출시일보다 2주 앞서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팝업스토어였기에 가능한 융통성이었다. 루이비통 입장에선 9월 정식 오픈하는 남성매장을 이런 방식으로 트렌디하게 미리 홍보하는 효과에다, 또 평소 거리감을 느끼던 사람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까지 얻었다. 비록 여성 매장이기는 하지만 이미 루이비통 매장이 있는 백화점 안에서 굳이 팝업스토어를 따로 연 이유다. 실제로 SNS에는 “유리벽이 없는 팝업스토어라 부담없이 쓱 들어가 제품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 여럿 나왔다.

#지난 20일 오후 3시 국내 최대 식품매장이라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지하 1층엔 큼지막한 전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눈에 많이 띄었다. 알고보니 지난 5월부터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전구소다’라는 음료 팝업매장의 음료였다. 메뉴에 있는 음료는 모두 네 가지로, 뭘 시키든 백열 전구 모양의 유리컵 안에 소다를 담고 그 위에 작은 LED를 켜서 준다. 맛보다도 보기에 신기하고 예뻐서 주말이면 늘 긴 줄을 서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전구소다 해시태그(#전구소다)를 달고 올라와 있는 사진이 2만여 건이 넘을 정도로 바이럴이 많이 된 덕분에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도 지난 28일까지 팝업스토어를 열 수 있었다.

‘타깃 보트’가 팝업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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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올라온 문샷의 지디(GD) 향수 팝업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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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을 벗어나면 팝업스토어는 훨씬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자주 열린다. 10월까지 성수동의 S팩토리 갤러리에서 열리는 문샷(연예기획사 YG의 화장품회사)의 지디(GD) 향수 팝업스토어, 이달 말까지 한남동 카페 퍼스에서 열리는 탐스슈즈 팝업스토어, 그리고 9월 초 서울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릴 유니클로 팝업스토어 등 그야말로 365일 내내 어디에선가는 팝업이 열리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다.

요즘 팝업스토어는 길면 수 개월까지 이어지지만 원래 팝업스토어(Pop-up Store)란 특별한 목적을 갖고 1~2주 정도만 반짝 열었다 닫는 매장을 뜻했다. 이향은 성신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팝업의 시초는 2003년 대형 할인점 타깃(Target)이 첼시 항구에 연 ‘타깃 보트’라는 매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맨해튼에 내려던 매장에 문제가 생겨 할 수 없이 첼시에 임시매장을 냈는데 이게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며 “다른 기업들이 이를 벤치마킹하며 팝업이라는 개념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엔 언제 상륙했을까. 업계에선 2009년 홍대앞에서 열린 패션 브랜드 구호와 나이키의 팝업 매장 등을 1세대로 꼽는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1990년대 후반에도 베타상품(일종의 시제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안테나샵이나 파일럿샵이 존재했지만 엄밀히 말해 팝업스토어와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팝업스토어가 생기기 전엔 고객이 기존 매장을 찾아가야만 했다”며 “소비자가 주도권을 쥐면서 팔려는 사람이 고객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구도로 바뀐 게 팝업스토어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계기”라고 했다.

“비용만 생각하면 미친 짓”

팝업스토어 초기 시절엔 기업들이 짧게 제한된 인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한부 마케팅’의 일환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희소성을 무기로 단기간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팝업스토어를 활용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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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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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실제 매출과는 무관하게 짧은 시간 동안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걸 목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21일 가로수길에 팝업스토어를 냈던 디올이 대표적이다.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단 이틀만 공개되는 행사를 위해 임대료를 포함해 억대의 인테리어 비용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올 측은 “비용 대비 매출만 생각하면 팝업스토어는 미친 짓”이라며 “하지만 그 자리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게 아니라 기존 백화점 매장과는 다른 잠재 고객을 매장으로 불러 들이는 이른바 ‘콜 투 액션(Call to action)’효과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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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가로수길에서 열리는 기린맥주 팝업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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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업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지난 3월 가로수길에 팝업 매장을 연 발렉스트라, 5월 강남역에서 했던 샤넬 등이 모두 이런 효과를 노리고 문턱을 낮춰 거리로 나섰다.

팝업스토어 전문 대관업체인 가로수길의 최정민 코노이 스페이스 대표는 “일주일에 3000만원 가까이 내야 팝업스토어 매장을 빌릴 수 있지만 하고 싶다고 문의를 해오는 업체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에만 이런 팝업스토어 전문 대관업체가 5개가 있다.

바이럴에 목숨 걸다

국내에서 아이폰이 출시되고 트위터·페이스북 등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팝업스토어 문화를 불붙인 요인이다. 바이럴 때문이다. 팝업스토어에 뭔가 새롭고 트렌디한 게 있기만 하다면 가장 먼저 달려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진을 찍어 너나없이 SNS로 퍼나르니 업체 입장에선 당장 돈이 들더라도 놓치기 어려운 강력한 홍보 수단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트를 찾아 나서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팝업스토어는 매력적인 놀이터다. 인스타그램에 ‘#팝업스토어’를 입력하면 4만 5000여장의 사진이 검색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사진을 접한 팔로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며 팝업 정보를 다시 유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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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스토어 형식으로 꾸며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5층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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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업체들은 보다 많이 바이럴을 시킬 수 있는 팝업스토어 꾸미기에 골몰한다. 하루 이틀짜리 팝업스토에도 브랜드의 철학과 컨셉에 맞는 음악·꽃·음식을 준비하고, 때론 각종 체험형 이벤트까지 더해 오감을 만족시키는 ‘복합 문화공간’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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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서 열린 라네즈X럭키슈에뜨 콜라보레이션 팝업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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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김혜연 과장은 “팝업스토어를 꾸밀 땐 SNS 상에서 쉽게 퍼날라질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젊은층 기호에 맞게 꾸민다”고 했다. 지난 달 강남역에 라네즈X럭키슈에뜨 콜라보레이션 팝업스토어를 낸 라네즈 김해수 홍보담당도 “신제품이 나와도 소비자가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팝업스토어를 열면 바이럴을 통해 소비자에게 신제품 정보를 각인시킬 수 있다”며 “숫자로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일반인뿐만 아니라 행사장을 방문한 연예인도 SNS를 많이 하기 때문에 바이럴을 통한 홍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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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팝업스토어는 컨테이너·트럭 등 독특한공간 연출로 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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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팝업

거리로 나간 팝업스토어가 돈보다 바이럴을 중시한다면 백화점 팝업스토어는 좀더 매출에 초점을 둔다. 다만 초창기엔 입점 업체를 결정하기 전에 미리 입점브랜드의 인지도와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는 용도로 팝업스토어를 활용했지만 최근엔 좀더 섬세한 전략을 구사한다. 워낙 백화점을 찾는 고객 수가 정체를 보이다보니 새 고객의 확보보다 기존 고객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팝업스토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식품매장은 물론 의류매장의 팝업스토어 역시 기존 고객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체험을 제공해 백화점 안에 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신세계백화점은 팝업스토어에 집중하기 위해 최근 본점 5층 메인 부분을 팝업스토어 컨셉트에 맞게 리뉴얼 했다.

전두영 현대백화점 패션팀 바이어는 “매출만 생각하면 솔직히 행사매장에서 행사를 하는 게 훨씬 낫다”면서 “늘 오는 고객 입장에선 어찌보면 지루하고 식상할 수 있는 백화점 상품군을 탈피해 신선한 체험을 제공한다는 목적이 더 크다”고 했다. 예컨대 제도권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팝업스토어를 열어 백화점이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공간이라는 걸 고객에게 어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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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서 열린 샤넬 팝업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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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세계백화점 바이어는 “루이비통이나 구찌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건 우리 백화점이 경쟁 백화점보다 더 하이엔드를 지향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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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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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매출이 따라오기도 한다. 롯데백화점은 4년 전 여성복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초강수를 뒀다. 스타일난다, 난닝구, 나인 같은 인터넷쇼핑몰 브랜드를 비록 팝업 매장이긴 하지만 백화점에 입점시킨 것이다. 난닝구는 2012년 9월 1주일 동안 물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듬해 3월 나인 팝업스토어 역시 1주일간 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지난해 3월 본점에서 월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양금지 롯데백화점 패션 바이어는 “엄숙한 줄만 알았던 백화점에서 인터넷쇼핑몰이나 로드샵 트렌드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져 고객들이 지갑을 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은 식음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봉균 신세계백화점 디저트 바이어는 “아직 국내에선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품목이라도 식품 트렌드를 리드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팝업으로 화제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은 이런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잠깐 열렸다 닫히는 가게’라는 이미지보다 ‘지금 당장 시도해야 할 트렌드’라는 이미지를 준다. 고객이 트렌디한 맛집을 찾으러 서울 곳곳, 혹은 해외에 나갈 필요없이 백화점 한 곳만 찾으면 이런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기획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기대 이상의 매출로까지 이어진 브랜드가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르타오 치즈케이크가 하루 1000만원, 2014년 몽슈슈와 로이즈가 각각 1800만원, 1200만원 매출을 올렸다.

2주 위해 3년 준비하기도

팝업스토어는 유동인구가 많고 특정 연령대가 주로 모이는 곳에서 열린다. 예컨대 가로수길은 젊고 트렌디한 20~40대 여성이 많이 찾기에 팝업스토어의 메카가 될 수 있었다. 명동은 아무래도 중국 관광객이 다수이다보니 이를 겨냥한 아이오페 등 K-뷰티 마케팅이 자주 열린다. 강남역은 유동인구에 비해 연령층은 마구 뒤섞여 있어 사실 타겟팅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그럼에도 강남역이란 이름이 주는 상징성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강남역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던 샤넬 김현경 차장은 “여러 장소를 찾다가 강남역이 K-문화, K-팝, K-트렌드를 상징하는 지역이라 팝업을 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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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 팝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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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스토어가 열리는 기간은 대개 1~2주로 짧다. 윤이나 롯데백화점 바이어는 “팝업이란 이름을 달고 너무 오래 열면 빨리 가봐야겠다는 조급한 심리가 사라지기 때문에 고객 반응이나 매출 모든 면에서 별로 득이 될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백화점마다 조금씩 다르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매출에 따라 시기를 연장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팝업스토어의 운영 기간이 길든 짧든 이를 위해 준비하는 기간은 예상외로 길다. 김준영 현대백화점 디저트 바이어는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어봐야 3개월까지 운영하는 팝업스토어를 위해 준비는 2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며 “브랜드를 선정하고 컨셉에 맞춰 인테리어를 제대로 하려면 품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를 사로잡은 팝업스토어, 이렇게다 이유가 있었다.

글=이영지·김민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 각 업체

이영지.김민관.김경록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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