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절에 안가고, 문화재 안봤는데…문화재관람료 내야 하는 이유는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찰 안 가는데 받는 건 횡포" vs "문화재 유지 관리 위해 불가피"

해답 없이 9년째 해묵은 논쟁…효과적 문화재 관리 위한 사회적 합의 필요

연합뉴스

문화재 관람료 폐지 요구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주=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국립공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충북도가 속리산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법주사 측 손실금을 보전해 주는 조건으로 문화재 관람료 폐지를 추진하는 게 계기가 됐다.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논쟁은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때부터 9년째 이어지는 케케묵은 과제다. 국민들은 '국립공원의 주인은 바로 우리'라며 폐지를 요구하는 반면, 사찰 측은 문화재 유지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재원이라고 맞서고 있다.

◇ 소유주 자율에 맡긴 관람료…징수 장소·요금 책정 규제 안 받아

현행 문화재보호법 49조는 국가지정문화재를 공개할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토대로 사찰 측은 국보·보물·중요민속자료·사적·명승·천연기념물에 대해 관람료를 받는다.

그러나 법에는 원칙만 정해졌을 뿐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관람료를 받고, 거둔 돈을 어떻게 집행할지에 대한 부분은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관람료 징수 액수나 집행 관련 사항을 전적으로 소유자 '자율'에 맡긴 셈이다.

이 때문에 한해 얼마나 되는 문화재 관람료가 징수돼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문화재 관람료 폐지를 전제로 충북도가 법주사의 손실금 보전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얘기로는 이 사찰의 한해 관람료 수입이 1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국 사찰 64곳에서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체 수입액은 수 백 억원에 이른다는 추산이 가능한 대목이다.

전국 16개 국립공원에 위치한 27곳의 사찰 가운데 25곳서 1천∼5천원의 관람료를 받는다.

설악산 백담사와 덕유산 백련사만 관람료 수입이 많지 않거나 매표소 이전 갈등 등으로 관람료 징수를 포기한 상태다.

덕유산 안국사처럼 가을 단풍철 한 달만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곳도 있다.

사찰에서 돈 되는 곳만 골라 관람료를 받는다는 원성을 사는 이유다.

◇ 등산객들 "사실상 통행세, 못 내겠다" 곳곳서 마찰

사찰 측은 징수한 관람료 중 47%를 조계종에 납부한다. 이는 문화재 관리 예치금 30%와 종단 분담금·발전기금 17%로 나뉜다.

예치금은 해당 사찰의 문화재 보수 등에 투입되고, 분담금과 발전기금은 총무원 운영비나 승가대학 지원에 사용된다는 게 조계종의 설명이다.

한 사찰 관계자는 "문화재 보수에는 정부예산이 투입되지만, 사찰도 20%의 자기 부담금을 분담해야 한다"며 "관람료로 거둔 돈의 절반은 평소 문화재 유지관리에 쓰이고, 나머지는 큰돈 들어갈 때에 대비해 종단에 예치된다"고 설명했다.

조계종의 이런 설명에도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싸늘하다.

국립공원을 막아놓고 사찰을 방문하지 않는 등산객에게 무차별적으로 '통행세'를 내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윤주옥 실행위원장은 "무분별하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권 침해"라며 "등산 목적의 입산객에게 관람료를 거두는 문화재 관람료 징수 방식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재 관람료 갈등은 법원 판결이 나더라도 쉽게 해결 안 된다"며 "불교 문화재를 특정 종단 소유로 볼 게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이자 국민 모두의 공공자원으로 접근해 중앙정부 차원이 대책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소송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강모씨 등 74명은 2010년 관람료를 받는 지리산 천은사를 상대로 통행방해 금지 등 청구소송을 제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도로 부지 일부가 사찰 소유라해도 지방도로는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된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박모씨 등 105명도 같은 취지의 소송을 내 동일한 판결을 받았다.

2009년 경기도 동두천에서도 소요산 자재암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반발하는 시민단체의 소송이 제기됐다. 이 갈등은 양 측의 합의로 원만하게 해결됐지만, 1심 법원은 "등산객에게 거둔 문화재 관람료를 돌려주라"고 판결한 바있다.

◇ "우리가 낄 문제 아냐"…지자체도, 문화재청도 수수방관

여론이 들끊는 데도 당국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어느 쪽 편을 들기가 난처하다는 것이다.

문화재 보유 사찰이 적법하게 관람료를 받는 것은 잘못된 게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국민 정서를 모르는 게 아니라고 말 끝을 얼버무린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때에 문화재 관람료 동반 폐지 목소리가 커지자 일부 사찰에서는 절로 들어가는 산문을 걸어 잠그겠다면서 맞섰다.

문화재 관리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던 관람료 전면 폐지에 대한 반발이다.

사찰의 이런 분위기를 고려할 때 관람료를 폐지하려면 문화재 유지 관리에 필요한 돈을 전액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소유자에게 관람료를 받게 한 데는 정부가 유지관리에 드는 모든 비용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유지관리 문제를 떼어 놓고 관람료 존폐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진국의 경우도 대부분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일본의 경우는 국립공원 입장료까지 따로 받는다"며 "옳고 그름을 떠나 문화유산을 효과적으로 보전한다는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하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bgipar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연합뉴스

문화재 관람료 폐지 요구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문화재 관람료 징수 항의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문화재 관람료 징수 항의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