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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앵커브리핑] "내가 없으면 누가 너희들을 웃겨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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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하늘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림 같은 구름을 내보였습니다.

바람이 살갗을 간질이고 서걱대는 이불의 감촉이 행복한 시절. 한 달 넘게 세상을 괴롭혔던 폭염은 어느새 거짓말 같은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화가 나 있었던가…

말도 안 되는 이 더운 날씨를 원망하고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쓰라 강요하던 관계자에게 화를 내고 그리고 전해진 엄청난 누진 전기료 고지서에 기막혀하고 매번 헛다리만 짚어대는 기상청을 흘겨보고.

그리고 거짓말처럼 펼쳐진 하늘…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문을 열어보니 다른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다시 더워질 것이라던 기상청 예보는 또다시 어긋났지만 이번에는 화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보가 틀려서 오히려 다행이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 우리의 행복이란 것은 이렇게나 단순하고 쉬운 것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러나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너무나 많은 것인지… 어딘가를 바라보면 여전히 그 길고 지리했던 폭염의 한가운데에 놓인 세상도 있습니다.

폭풍 같은 논란의 와중에도 여전히 건재한 그와 오늘(29일)은 실명이 등장한 언론사의 주요인물까지 얽혀 들어간 사건의 전개.

사람들은 어느 어두웠던,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어떤 영화를 떠올려야 했습니다. 이 밝고 맑은 하늘 아래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인사 난맥상…

누군가가 거주했던 93평 용인 아파트 전세금은 7년간 변함없이 1억 9000만 원이었다 하고, 누군가의 생활비는 3년 8개월간 18억 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음주운전 단속의 수장이 됐지만 실은 그가 바로 음주운전의 주인공이었던 것까지…

폭염은 물러갔지만 어떤 곳은 마치 섬처럼 여전히 폭염이 지배하는 한가운데에서 이런 이유로 또는 저런 이유로 버티는 중입니다.

지난 주말 세상을 떠나 오늘 영결식이 치러진 코미디언 구봉서 씨는 생전에 출연했던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누가 너희들을 웃겨주니?]

그러나 그의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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