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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심장마비 택시기사 두고 골프여행 떠난 승객들 처벌불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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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지난 25일 오전 택시를 몰던 택시기사가 차량 운행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지만 당시 택시에 탑승했던 승객들이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이들을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당 택시운전기사 이모씨(62)는 다른 시민들의 신고로 뒤 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생명을 잃었다.

사고 당일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 2명은 택시기사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음에도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승객들은 택시기사가 쓰러져 있던 운전석에 꽂혀 있던 열쇠를 빼내 트렁크 문을 열고 골프가방 등 짐을 꺼낸 뒤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현장 상황이 공개되자 거센 비난여론이 일고 있다.

하지만 매정한 승객들은 도덕적 비난을 받을 뿐 법적으로는 택시기사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우리 현행법상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경우에도 딱히 처벌할 수 있는 법률조항을 따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적 구조의무 부과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구조의무 법으로 강제해야" vs "형법은 도덕법전 아냐"

이번 대전 택시기사 심장마비 사건을 계기로 위험에 처한 사람에 대한 구조의무를 법제화할 필요성을 두고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다.

우리 형법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정해 두지 않고 있다.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법이 아닌 도덕의 영역에 속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해야 할 법적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측은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구조의무는 도적적 의무가 아닌 최소한의 법적 의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인간성이나 도덕성의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회적 법적 문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자는 측도 남을 도울지 말지 결정하는 개인의 자유를 최소한도로 침해하는 정도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적극적 구호조치를 의무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직접 나서 응급조치를 하거나 병원으로 이송하는 행위를 강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구조 능력이 있는 방재당국에 신고하거나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알리는 정도의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구조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반대론도 만만찮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할 필요성을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뿐인데 이를 법으로 강제하고 돕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은 '법 만능주의'라는 폐해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호의를 형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법적인 구조의무 부과를 반대하는 측은 입법기술상의 문제 즉 법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법으로 처벌하려면 처벌 대상이 되는 특정행위 또는 의무가 주어진 일을 하지 않는 경우를 명확히 정해야 하는데, 반드시 다른 사람을 구조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 위험한 모든 상황을 법으로 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 현행법상 처벌조항 없어 처벌 불가 … 외국은?

우리 형법은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즉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아도 그에 대해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착한 사마이라인’ 이야기는 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다. 성경 속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등 구조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특별한 의무가 없음에도 선의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하는 사람을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불러왔다.

외국의 경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 및 유럽의 식민지 생활로 유럽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남미 국가와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 전체를 중시하는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 ‘착한 사마리아인법’ 조항을 두고 있다.

영국과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두터운 보호를 중시하는 만큼 착한 사마리안법 조항을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미국 뉴욕의 길거리에서 38명의 목격자가 있던 가운데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한 ‘제노비스’라는 여성의 사건을 계기로 현재는 전체 50개 주 가운데 31개주가 순차적으로 '착한 사마리아인법' 조항을 도입했다.

유럽 각국은 구조의무를 행하지 않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형벌로 다스리고 있다. 핀란드와 터키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은 징역 3월, 체코는 징역 6월, 독일, 그리스, 헝가리는 징역 1년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불가리아와 폴란드는 징역 3년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고 가장 높은 법정형을 정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로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처벌조항을 마련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은 '응급의료법'이 전부다.

응급의료법 5조 1항은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은 "해야 한다"며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응급의료법은 벌칙조항에서 이를 위반했을 경우 어떻게 처벌할지는 정하고 있지 않아 신고의무를 위반해도 이에 따른 처벌은 없다.

이 때문에 결국 대전 택시기사 사건의 승객들처럼 택시기사를 심장마비 상태로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나도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없다. 단지 도덕적 윤리적 비난만 가능할 뿐이다.

이번 대전 택시기사 사건의 승객들은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 이유를 '공항버스 시간'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행위가 도덕적·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행위이기는 하지만 자발적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사회환경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일상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다 되레 가해자로 몰리거나, 도움을 받은 당사자는 쏙 빠지고 폭행의 양당사자 가운데 한명이 돼 처벌받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느라 발생한 손해를 보상할 수 있는 보상규정은 우리 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개인주의가 확산된 각박한 사회에서는 신고나 구조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보상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juris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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