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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국내 난민 인권 환기시킨 발루치인, 강제 추방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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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권 진일보" 계기된 사건

파키스탄 內 이란계 소수민족

1심법원, 독립운동가 지위 인정

2심ㆍ대법원은 “신빙성 떨어져”

재판 과정에서 신원 노출

지난달 본국 송환 뒤 연락 끊겨

“유엔난민기구 지침 고려했어야”

한국일보

우리나라 법원이 발로치인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한 확정판결은 단 3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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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내 이란계 소수민족인 발루치족(族)으로는 최초로 난민인정을 받았던 독립운동가 A(39)씨가 대법원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결국 지난달 29일 강제추방됐다. 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우리나라에서 난민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A씨의 신원이 노출돼 A씨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A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불허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2년 11월 1일 서울행정법원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A씨를 포함한 발루치 민족은 대부분 발루치를 성(姓)으로 사용한다. 파키스탄은 1947년 인도로부터 독립한 뒤 발루치스탄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60년 넘게 지배를 이어가고 있다. 독립운동을 펼치는 발루치족은 파키스탄 군정보국과 경찰 조직에 의해 살해되거나 고문을 받는 등 박해를 받아왔다. 2008년 7~8월에만 100여명이 살해됐고 20만여명이 강제이주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발루치스탄 독립운동 단체인 발루치스탄민족운동(BNMㆍBalochistan National Movement)의 일원으로, 1995년 BNM에 가입해 한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본국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A씨에 따르면, 파키스탄 정부요원들이 A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의 아버지를 감금해 추궁하기도 했다. A씨는 신분을 숨기려 다른 사람의 여권으로 입국했는데, 2011년 5월 이 사실이 밝혀져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 보호수용됐다. 이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인정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하자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대다수가 민족이름을 성(姓)으로 사용하는 발루치 민족은 이름만으로도 신원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출국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명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위명 여권으로 입국한 점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 부정적 요소로 삼을 수 없다”며 A씨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 판결 선고 이후 출입국관리소 측이 BNM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지된 이메일 주소로 A씨가 단체 회원이 맞는지 확인을 요청하자 BNM 측은 “회원증이 위조된 것”이라고 답변했다가 A씨의 변호사에게는 “회원이 맞고 활동적 멤버”라고 말을 바꿨는데,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대법원도 “A씨가 BNM에 참여했거나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주목 받았다고 볼 수 없다”며 난민인정 요건인 ‘민족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A씨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난민인권보호에 진일보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A씨의 장기구금을 계기로 대한변호사협회에 난민구금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민간 최초로 난민보호소 조사가 이뤄졌고, A씨의 1심 승소판결 후 구금이 해제되면서 보호해제 업무지침도 변경됐다. 뒤이어 다른 발루치인들이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례도 나왔다. 발루치인 중 법원에서 난민지위가 인정된 확정판결은 3건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A씨는 본국으로 송환돼 위험을 감수할지도 모를 상황에 처했다. A씨를 대리한 배의철 변호사는 “A씨가 본국에서 적발되지 않고 무사하면 연락을 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며 “발루치인들의 참상을 알린 A씨가 제3국 출국이 좌절돼 본국으로 강제송환돼 안타깝다. 앞으로 재판에서 유엔난민기구의 지침에 따라 강제송환 시 현실적인 위험이 면밀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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