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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축구 월드컵 최종예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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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축구는 1986년 32년만에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다.

현재까지 9회 이상 연속으로 진출한 국가는 브라질(전 대회 출전), 독일(16회 연속), 이탈리아(14회 연속), 아르헨티나(11회 연속), 스페인(10회 연속) 5개국 뿐이다.

9월 1일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첫 경기 중국전을 앞두고, 좌절과 환희가 교차했던 역대 월드컵 최종예선을 정리했다.

▲1954: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몸던지겠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는 한국과 일본만 참가했다. 일본팀의 방한이 허락되지 않던 때라 홈 앤드 어웨이가 이뤄지지 못하고, 일본에서 두 차례 경기를 치렀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출국 인사를 하러 간 대표팀 이유형 감독은 “일본에 지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비장한 약속을 했다. 한국은 1승1무로 일본을 누르고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됐다.

▲1958: 서랍속에서 잠든 참가 신청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의 대륙별 예선을 위해 FIFA는 각국 축구협회에 참가 신청서가 포함된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영어를 못하는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사무실 서랍속에 보관하고 있다가 제출 기한을 넘기고 말았다. 이 바람에 결국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1962: 첫 공산국가 원정

1962년 칠레 월드컵 예선은 아시아 1위팀이 유럽 국가와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긴 팀이 본선에 나가는 방식이었다. 아시아 예선을 통과한 한국은 동유럽의 강호 유고와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를 펼쳤으나 모두 패해 탈락했다. 유고 원정 경기는 한국 스포츠 사상 첫 사회주의 국가 방문 경기였다.

▲1966: 북한이 너무 무서워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통과를 위해 대표팀은 맹훈련을 거듭했다. 그러나 북한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은 정부 당국에서 갑자기 참가 취소를 지시했다. 북한 실력이 너무 뛰어나 질 것이 뻔하다는 이유였다. 이미 참가 신청까지 했던 축구협회는 벌금 5000달러를 물었지만, 북한에 지는 굴욕보다는 낫다는 것이 당시의 판단이었다. 북한이 본선에 나가 8강까지 올라갔으니 관계 당국의 전력 분석만은 정확했다.

▲1970: 페널티킥만 성공했더라면...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 아시아 최종전은 한국과 일본, 호주가 참가한 가운데 1969년 서울에서 열렸다. 일본을 제치고 한국과 호주가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다. 1-1 동점 상황에서 후반에 페널티킥 기회를 얻었지만 실축하는 바람에 종합 전적에서 호주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페널티킥을 못넣은 임국찬은 국민적 비난을 혼자 뒤집어 쓰다가 얼마 후 미국으로 이민갔다.

▲1974: “고기 좀 먹여라!”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한국과 호주는 1장의 티켓을 놓고 최후의 대결을 펼쳤다. 홈과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두팀은 제3국인 홍콩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계속되는 경기로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한국이 0-1로 졌다. 한국 선수들이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탈락하자 “대한축구협회는 대표 선수들에게 고기 좀 먹여라!”는 팬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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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또 호주에 지는 바람에...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최종예선은 한국, 이란, 호주, 쿠웨이트, 홍콩이 홈 앤드 어웨이로 치렀다. 차범근, 허정무, 김재한, 조광래, 김호곤 등 ‘한국 축구의 레전드’들이 포진한 한국은 초반에 순조롭게 나가다 호주 원정에서 1-2로 패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정민 감독이 사퇴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이란에 1위를 내주고 본선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1982: 편파 판정 때문에...

1982년 스페인 월드컵부터 아시아에 2장의 티켓이 주어졌다. 1차 예선은 쿠웨이트에서 열렸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쉽게 이긴 한국은 쿠웨이트와 최종예선 진출권을 다투게 됐다. 멀쩡한 골을 반칙이라고 선언하는 심판의 극심한 편파 판정속에 0-2로 패하면서 월드컵 진출의 꿈은 또다시 허무하게 날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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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꿈은 이루어진다... 32년만에 예선 통과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은 아시아를 동과 서로 나눠 진행한 덕분에 껄끄러운 중동 국가들을 피할수 있게 됐다. 말레이시아 원정경기에서 패해 감독 교체의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홈 경기에서 이기고, 인도네시아를 격파한 뒤 일본과의 최종전에 진출했다. 도쿄 1차전에서 정용환, 이태호의 골, 잠실 2차전에서는 허정무의 결승골로 승리하면서 32년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을 이뤘다.

▲1990: 전무후무한 30골 1실점으로 2회 연속 진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이회택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적수가 없었다. 1차 예선과 최종 예선을 합쳐 11전 9승 2무에 30골 1실점, 기록만으로 보면 각 대륙별 예선 참가국 중 단연 최고였다. 그러나 정작 본선 성적은 역대 최악인 3패로 끝나면서 ‘아시아에서만 골목대장’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1994: 하늘이 도운 ‘도하의 기적’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다.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이 북한을 이기고, 이라크가 일본과 최소한 비겨야 한국은 본선에 나갈수 있었다. 한국이 북한을 3:0으로 이긴채 끝났고, 잠시 후 이라크가 종료 직전 동점골로 일본과 2-2로 비긴 덕분에 한국은 극적으로 본선에 나갈수 있었다. 동점골을 넣은 이라크의 자파르는 두 달뒤 대한축구협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극진한 접대(?)를 받았다.

▲1998: ‘차범근을 대통령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골잡이 최용수를 앞세워 예선을 가볍게 통과했다. 특히 도쿄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거둔 2-1 역전승은 한국 축구사의 명승부였다. 일요일 오후 열린 이날 경기의 시청률은 57%로, 당시로서는 단일 방송사의 스포츠 중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성팬들은 ‘차범근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다.

▲2006: 예선 통과하고도 감독 사퇴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본프레레.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홈, 원정 모두 패했지만 우즈벡, 쿠웨이트를 잇따라 격파하며 6회 연속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그러나 최종예선이 끝나고 두 달뒤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에 패하는 졸전 끝에 결국 감독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후에 사령탑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였다.

▲2010: 이란에겐 피눈물을, 북한에겐 행운을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허정무 감독의 한국은 큰 어려움 없이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사우디 원정에서 승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지막 경기는 서울에서 열린 이란전. 이란은 한국을 이겨야 본선에 나갈 수 있었고, 비기거나 지면 북한이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박지성의 후반 막판 동점골로 이란은 탈락하고 북한이 진출했다. 북한의 정대세는 박지성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둘은 얼마뒤 음료 광고에 사이좋게 함께 출연했다.

▲2014: 예선 통과하고도 이 찜찜함은 뭐지?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반대로 이란에게 수모를 당했다. 원정에서 0-1로 패하더니 울산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에서도 역습을 당해 패하고 말았다. 4승2무2패 조 2위로 간신히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경기후 이란 감독 케이로스가 설전을 벌인 최강희 감독에게 주먹 감자를 날리는 추태를 지켜보면서 최종예선을 찜찜하게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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