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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리포트+] "걷기만 해도 6시간 드려요"…본질 잃은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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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면 6시간 인증서 까지 제공해준다는 ‘이 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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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중·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입니다.

충남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C군은 최근 지자체가 주관한 걷기대회에 참석했습니다. C군은 걷기대회에서 친구들과 잡담하며 4시간 정도 걷고, 군청에서 자원봉사 6시간을 인증 받았습니다.

지식 위주 교육을 보완하고, 인성 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자원봉사 인증제도가 일부 기관의 인력 동원 수단으로 전락한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교가 직접 학생들의 자원봉사 내역을 부풀리기도 합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지 않고, 인증서만 조작해 제출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 선생님이 하라고 했는데요?

지난해 충남의 한 자치단체가 주관한 마라톤 대회에는 1천 800여명의 해당 지역 학생이 참가 했습니다. 참가 신청한 학생들은 대부분은 자원봉사 인증이 필요한 중·고등학생입니다.

16개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 신청을 한 것이죠. 올해도 1천 700여명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자원봉사 인증을 받을 예정입니다. 학생들은 학교 측에서 자원봉사 6시간을 인증해 준다며, 대회 참가를 독려했다고 말합니다.

교사들이 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고, 참가 여부를 주관 단체에 보내면 자원봉사로 인증되죠. 마라톤 대회 참여인데도,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는 6시간 동안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으로 입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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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해 교사들이 봉사 내역을 부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운동장에서 1시간 가량 휴지를 줍게 시킨 뒤, 5시간짜리 교내 봉사활동으로 기록하는 것이죠.

학교 측은 ‘봉사 부풀리기’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도움된다고 주장합니다. 봉사활동이 중·고등학생 사이에서는 공부 시간을 빼앗는 방해요소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충남도교육청 고교 입학전형 기본계획에 따르면, 중학생의 경우 3년 동안 60시간의 봉사활동으로 내신성적 200점 가운데 12점을 받게 됩니다. 다른 지역도 봉사활동이 내신성적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죠. 이 때문에 자원봉사는 학생들에게 성적을 위해 참여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인증서 만들기에 나선 학부모들

서울의 한 장애인 쉼터는 학부모 봉사자들로 붐빕니다. 참여를 신청한 대기자가 많아, 한 달 정도 기다려야 봉사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쉼터에 신청자가 몰리는 이유는 학부모들이 아이들 대신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은 모임을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단체로 봉사에 참여해 인증서만 아이 이름으로 발급받습니다.

인맥을 통해 인증서를 위조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우체국이나 소방서 등의 기관에서 지인에게 자원봉사 인증서를 부탁하는 겁니다. 학교에 자원봉사 인증서를 제출하고 나면, 실제로 참여했는지 검증하는 단계는 없습니다. 인증서를 위조해도 발각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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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대신 봉사활동에 참여한 학부모]
“봉사활동이 내신성적에 반영되는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 요즘에는 대학입시 때도 봉사 내역 다 확인해요. 공부만 잘한다고 합격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자기소개서에도 무슨 봉사 했는지 물어보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어요?

저는 큰 아이 때 소개받은 곳에서 둘째 아이 봉사도 대신하고 있어요. 지금은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니까, 봉사는 대학가서 많이 참여하면 되죠. 그리고 제가 봉사한 만큼 시간 받는 거니까 속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각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 인증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봉사활동을 내신성적에 반영하는 제도로 인해 ‘자원봉사’가 ‘의무봉사’으로 변질된다는 겁니다. 꾸준히 ‘자원’해서 봉사에 해오던 학생들의 활동까지 퇴색시킨다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 학부모들은 중·고등학생들의 봉사활동 시간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지만, 정작 자원봉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은 어른들이 아닐까요?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임수연)

[윤영현 기자 y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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