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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폭염이라고 쉬면 생계는 누가"…온열질환자 대부분 '사회약자'(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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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노인·건설현장 인부가 환자 절반 차지…기초 수급자도 7% 달해

한낮에는 휴식하라 권하지만 막무가내…치료 후 다시 논밭 나가기도

연합뉴스

온열질환자 2천29명 [연합뉴스 DB]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기록적인 폭염 탓에 올 여름 온열 질환자가 급증했다. 전국 곳곳에서 하루 40∼50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한다.

지난 5월 하순부터 지난 23일까지 3개월 동안 전국에서 2천29명이 온열 질환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이들의 질환은 열탈진, 열사병, 열경련 등인데 모두 폭염에 노출돼 생긴 것이다.

온열 질환자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다. 모자 하나로 햇볕을 가린 채 가마솥 더위와 싸워가며 논밭에서 일하는 고령의 농민들이나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인부들이 주류를 이룬다.

행정당국이 온열 질환자 예방을 위해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점심 이후 오후 4시까지는 쉬라고 권하지만 일손을 쉽게 놓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보니 폭염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 숨 턱턱 막히는 폭염…쉬지 못하는 농민·건설 근로자들

최근 5년간 통계를 분석해 보면 올해 유독 온열 질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기록적인 더위가 얼마나 극성을 부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443명, 2012년 984명, 2013년 1천189명, 2014년 556명 수준이었던 온열 질환자는 올해 2천명을 훌쩍 넘겼다. 작년 발생한 온열 질환자 1천56명과 비교해도 갑절 가까이 된다.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올라간 날을 더한 폭염 일수를 보면 올해는 29일이나 된다. 작년 폭염 일수가 9.7일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찌는 듯한 폭염이 유별나게 기승을 부렸음을 알 수 있다.

폭염 피해자 상당수가 농촌 고령자들과 건설현장 근로자들이다.

병원 치료 후 자신을 농림·어업 종사자라고 밝힌 온열 질환자는 284명, 건설현장 등에서 일한다고 답한 근로자는 320명에 달한다. 두 분야를 더하면 전체의 29.3%(595명)인데 사무종사자(47명)나 군인(30명), 주부(151명), 학생(129명)보다 월등하게 많다.

농림·어업 종사자나 건설현장 근로자 수는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직업이 분류되지 않은 615명의 온열 질환자 대부분이 이들 직업군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온열 질환자들이 쓰러진 장소를 보면 논밭이나 실내외 작업장이 전체의 절반을 웃도는 50.2%(1천18곳)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실외 작업장이 580곳으로 가장 많고 논밭 318곳, 실내 작업장과 비닐하우스 각 95곳, 25곳이다.

◇ 기초수급자·고령자, 폭염 보호대책 시급

온열 질환자들의 보험 유형을 보면 건강보험 지역·직장 가입자 1천690명을 제외한 116명은 의료급여 1종, 23명은 의료급여 2종이다. 전체 온열 질환자의 6.9%(139명)가 생계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는 얘기다.

노인들도 폭염을 극복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전체 온열 질환자 중 60세 이상 노인이 36.6%(742명)에 달한다. 연령별로 보면 60∼69세 321명, 70∼79세 237명, 80세 이상 184명이다.

이들의 직업은 확인되지 않지만, 농림·어업 종사자일 가능성이 크다.

충북의 경우 102명의 온열 질환자 중 35명이 60세 이상인데, 이들 가운데 62.9%(22명)가 농업 종사자이다.

한낮의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속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무리하게 논밭에 나갔다가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한낮에는 쉬세요" 말려도 일손 없는 농촌 어르신들 '못 들은 척'

요즈음 농촌 마을에서는 '한낮에는 휴식을 취해 달라'는 내용의 스피커 방송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간다. 지난 23일에도 도내 814개 농촌 마을에서 이런 방송이 나갔다.

폭염 속에서 논밭을 관리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이다. 그러나 폭염·가뭄에 시들어가는 작물을 보며 속이 타는 농촌 노인들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충북도 관계자는 "한낮에는 집에 들어가 쉬라고 사정을 해도 농촌 어르신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휴식을 강제로 취하게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는 게 이들의 어려움이다.

더 큰 문제는 농촌 노인들이 폭염에 쓰러졌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하더라도 다시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해야 한다는 데 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농촌에서 대신 논밭에 나가 일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14% 이상이면 고령,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불린다.

전국 17개 시·도 중 전남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고 부산·강원·충북·충남·전북·경북·경남 등 7개 시·도가 고령사회에 해당한다. 그 만큼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대형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들에게 오후 휴식시간을 주지만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한낮에도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가 있다. 시·군은 이런 업체에 '폭염이 극에 달하는 오후 4시까지는 작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권고에 불과하다.

폭염에 쓰러져도 정부 차원의 보상을 받을 수 없지만 건설현장 근로자들에게는 휴식보다 일자리가 우선이다. 농촌의 고령자들이 굳이 논밭에 나가 자신이 심은 작물을 보살피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충북도 관계자는 "가축 피해야 재해보험에서 보상 받을 수 있지만 온열 질환자들은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건강보험 외에 다른 보험에 가입한 경우도 드물다"며 "물을 많이 마시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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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열질환자 처치하는 구급대원들 [연합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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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 하는 농민 [연합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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