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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열목어 계곡선 살갗에 소름이, 하늘정원선 가슴이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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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2번째 국립공원 된 태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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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국립공원에 포함된 경북 봉화의 백천계곡.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로 물길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봉화=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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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외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다. 지금처럼 뜨거운 여름엔 뙤약볕 아래 콩밭 맬 때가 가장 힘드셨단다. 정말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은, 버티기 힘든 그 순간 콩밭 고랑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다고. 아주 잠깐의 미세한 바람이지만 그 덕에 정신이 들고 기운이 난 적이 있었다고 하셨다. 외할머니는 고마운 그 바람을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딸에게 불어주시는 바람일 거라고 여기셨다.

올 여름은 정말 끝없이 이어지는 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말았다. 이글거리는 폭염을 뚫고 백천계곡 입구에 들어섰을 때다. 계곡의 깊은 초록 터널에서 서늘한 바람이 마중 나왔다. 그 초록의 바람에 여름 내 쌓였던 분노까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콩밭 바람만큼은 아니었지만, 끝 모를 여름을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바람이었다.

태백산국립공원 포함된 봉화 백천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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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계곡 열목어. 현불사 마당 연못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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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계곡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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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정식으로 새 문을 연 국립공원이 있다. 국내에서 22번째 지정된 태백산국립공원이다. 이제서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 의아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풍요로운 환경을 지닌 산이다. 태백산은 지난 4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후 이날 본격 국립공원사무소가 개설돼 운영에 들어갔다.

새 국립공원의 경계 안에는 강원 태백시가 아닌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백천계곡도 들어갔다. 국내 계곡 중 가장 청정하다고 자부할 만한 명품 계곡이다. 계곡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태백산 자락이 고아낸 물이 한데 모여 이룬 15km 길이의 계곡으로 낙동강의 최상류 지류 중 하나다. 이 계곡이 천연기념물인 이유는 어른 팔뚝만한 청정물고기 열목어 때문이다. 물이 맑고 차가운 계곡에서만 사는 희귀종이다. 옛날 사람들은 열목어의 눈이 붉은 것은 이름처럼 눈에 열이 많기 때문이며, 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찬물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터전에선 수온이 한여름에도 20도 이상 올라가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계곡은 햇빛이 물에 닿지 않게 나무가 우거져야 한다.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이 그런 곳이다. 천연기념물이다 보니 다른 계곡과 달리 이곳에선 야영, 취사, 물놀이가 금지됐다. 덕분에 지금의 청정 계곡이 유지될 수 있었다.

대현리 현불사를 지나 계곡과 나란히 난 임도를 따라가면 계곡 초입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깎아지른 벼랑과 우람한 금강송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을 휘둥그래 만든다. 길가에 드문드문 들어선 민가를 지나면 차량 통행을 금지하는 차단기가 길을 막고 서있다. 이곳부터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자연만의 공간. 길은 짙은 초록의 터널이다. 한여름 대낮인데도 살갗엔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하다. 최근에 비가 많지 않아 양이 많이 줄었지만 그 물길과 나란히 산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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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가지 않아 전화가 뚝 끊겼다. 통신지역 이탈. 처음의 불안감이 곧 자유로움으로 전이된다. 오로지 새소리 물소리뿐이다. 드리운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렸고, 물가 바위엔 두꺼운 이끼가 가득했다. 초록이 뚝뚝 묻어나는 계곡이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문수봉 부쇠봉 등을 통해 태백산 정상에 이른다.

계곡을 걷고 나오다 마을 주민 이석천(66)씨를 만났다. 이번에 국립공원으로 포함된 지구 안에는 6가구가 산단다. 이곳에 터를 잡은 건 45년 전. 하지만 그 이전부터 이 계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었다고. 그 동안 열목어 때문에 묶여 많은 걸 희생하고 살았다는 이씨는 국립공원 지정으로 이젠 열목어도 살고 사람도 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했다.

이씨는 태백산국립공원에 백천계곡이 포함되면서 또 하나의 명품 산행 코스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유일사나 당골 등 기존의 태백산 등산로를 통해 천제단에 올랐다가 청정 물길인 백천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을 이야기 하는 것. 기존 태백산 등산로에 부족했던 계곡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라 자랑했다.

초창기 태백산 천제단에서 산신제를 지낼 땐 봉화의 사람들도 함께 지냈었다고. 지금은 천제단 제사를 태백시에서 주관하지만 한때는 태백시와 봉화군이 함께 지내기도 했단다.

계곡물에서 열목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지금처럼 날이 더울 땐 더욱 그렇다. 열목어는 마을 입구의 현불사 마당 연못에서 볼 수 있다. 유유히 헤엄치는 자태가 곱다.

검룡소 대덕산 금대봉도 국립공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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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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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룡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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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천계곡은 태백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있다. 국립공원의 북쪽엔 검룡소와 야생화의 천국인 대덕산 금대봉이 자리하고 있다.

창죽동 금대봉골의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다. 주차장에서 1.3km 되는 길을 약 15분 걸어야 한다.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짙은 초록의 숲터널.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시원해진다. 검룡소는 단지 이곳이 한강의 시원이라는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그 모습이 진한 감동을 준다. 이무기가 몸부림치고 올라간 흔적이라는 굽이진 물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끼 낀 바위 사이에 난 힘찬 물길을 콸콸 쏟아져 내려온다. 검룡소는 한강의 처음이라는 의미 외에 그 모습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어느 강의 발원지가 이보다 영험한 모습을 가지고 있겠는가. 마치 일부러 조각을 해놓은 듯하다. 바위를 울리는 힘찬 물소리에 맞춰 가슴 속 심박동도 함께 빨라진다.

전망대에 올라 검룡소를 내려다 본다. 폭 2~3m의 물웅덩이는 맑았다. 매일 2,000톤 이상의 물이 끊이지 않고 솟으며 사철 9도의 수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검룡소의 용출수는 금대봉 자락의 고목나무샘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이곳에서 다시 솟아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물은 임계-정선-충주를 지나 515km를 굽이굽이 흘러 한반도의 젖줄이 된다.

검룡소를 돌아 오르면 대덕산과 금대봉으로 향한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에 꽃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인적 드문 산자락에서 이제껏 지켜온 토종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하늘 정원’이다.

정선과 태백의 경계선에 솟아오른 대덕산(1,307m)은 강원 점봉산의 곰배령, 대관령 자락의 선자령 등과 함께 최고의 들꽃 군락지로 손꼽힌다. 대덕산과 금대봉(1,418m) 일대는 한국 특산식물과 희귀식물 수십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져 1993년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한 곳이다.

대덕산 높이가 1,300m에 이르지만 검룡소 주차장의 해발이 880m라 산행은 400여m만 더 오르면 된다. 다양한 야생화와 인사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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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긋 솟아있는 금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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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봉 인근의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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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산 정상 부근은 거대한 평원. 나무는 없고 거의가 풀과 꽃뿐인 초원이다. 체했던 속이 뻥 뚫리듯 활짝 열린 시야가 시원하고 장쾌하다. 이 능선을 타고 가면 어렵지 않게 금대봉과 두문동재에 이를 수 있다. 대덕산과 금대봉에서 느끼는 여름은 서울의 그것과 달랐다. 산정의 태양은 따뜻했다. 고도가 높아서인가 산머리의 초록은 그 빛이 곱다. 불과 얼마 전에 신록을 벗은 듯한 부드러운 초록이다. 주변의 물결치는 산자락들이 발 아래다. 대간 마루에 걸린 구름도 정겹다.

휙 하니 한 자락 바람이 분다. 알프스의 바람같이 상쾌했고, 외할머니의 콩밭 바람처럼 고마웠다.

태백산 천제단은 물론 함백산 만항재까지

태백산국립공원의 중심은 역시 태백산. 산의 정상엔 하늘에 제를 모시기 위해 돌로 쌓은 큼직한 제단이 있다. 태백산 제일 높은 봉우리는 장군봉. 이곳엔 장군단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태백산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공간인 천제단까지 가는 길이 태백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주변의 모든 산자락이 발 아래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함께 어우러지며 수 많은 산봉우리들이 바다를 이룬다.

정상 오르는 길에 만나는 거대한 주목도 태백산의 아이콘이다. 산행길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주목들은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태백산을 지키는 호위병마냥 우뚝 버티고 서서 동태를 감시하는 듯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나무다.

태백산과 이어지고 태백산보다 높은 함백산(1,573m) 정상과, 국내에서 차로 넘을 수 있는 고개 중 가장 높다는 만항재(1,330m)도 이번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됐다.

태백ㆍ봉화=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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