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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리포트+] 취준 헬 뚫었더니 연수원 헬…신입사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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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신입사원으로 당당히 합격한 A양.

힘든 취업 준비 기간을 거쳤기에 성취감이 큽니다. 부모님의 걱정도 덜어드린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들었죠.

신입사원 연수 일정 안내 이메일을 받은 A양은 사회인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 딛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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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연수 장소에 도착하자, 연수 활동복을 지급받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서 입사 동기들과 함께 운동에 나서죠.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모든 단체 활동은 점수로 평가됩니다. 개별 활동을 하면, 팀 전체에 벌점이 주어지기 때문에 A양은 잠시 숨돌릴 틈도 없습니다.

끊임 없이 주어지는 과제와 체력 단련 활동들. A양은 이런 활동이 회사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 회사에 ‘주인정신’을 가져라?

지난 2014년, 모 은행은 신입사원 연수 동영상이 공개돼 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입행원들이 '기마자세'를 한 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주인정신' 글귀를 복창해야 했습니다. 3시간 동안 기마자세를 버텨야 하는 이 교육은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얼차려' 같은 교육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다수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 과정에는 체력 단련 일정이 남아있습니다. 무박 2일동안 30km를 행군하거나 험한 산을 등반하고, 해병대 캠프에서 연수를 진행한 기업도 있죠. 이런 과정에서 낙오되면, 능력 없는 신입사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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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신입사원 연수 중도 퇴소자 ]
“제가 연수했던 곳은 체력 단련 일정이 많았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등반도 해야 하고, 행군도 했죠. 몸이 약한 편이라 체력 단련을 할 때면 뒤처졌어요. 저 때문에 팀원들이 오리걸음으로 얼차려를 받기도 하고, 벌점이 쌓였죠. 다른 과제를 아무리 잘해도 팀원들한테 폐를 끼치게 되니까 눈치도 보이더라고요.

영어점수랑 각종 자격증 따서 힘들게 합격했는데, 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능력 없는 사람이 되니까 견디기 힘들었어요. 결국 부모님께 전화 드려 펑펑 울며 그만두겠다고 말씀 드렸죠. 다른 기업 지원도 생각했는데, 이 정도 체력 단련은 다 한다고 해서…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에요.”

● 춤, 노래, 음주…만능 신입 사원

신입사원 연수 일정을 살펴보면, 다재 다능한 사람들의 집합소로 보입니다. ‘기업에서 추구하는 정신’이라는 주제로 안무를 구상해 춤을 추고, 노래까지 가미한 장기자랑이 이어집니다. 기업 창업자의 삶을 그린 뮤지컬과 연극도 선보이죠. 기업 회장의 어록과 업적을 모아 암기한 뒤, 시험을 치르기도 합니다.

‘비즈니스 매너’를 배우는 시간도 있습니다. 한 기업은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강조하며, ‘술자리에서 갖춰야 할 태도’를 교육합니다. 상사 술잔 닦는 법, 좌식 술집에서 상사의 신발을 기억하는 법 등을 교육하죠. 밤새 술을 마시며, 선배 직원들이 직접 음주 교육에 나서는 기업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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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중견ㆍ대기업에 취직한 신입사원 4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의 34%가 연수원 교육 후 입사 포기를 고려하거나 퇴사했다’고 답했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연수 중 힘들었던 항목은 ‘빡빡한 일정(18%)’이 가장 많았고, ‘지나친 단체 생활 강조(12%)’ ‘극기훈련ㆍ리크리에이션 참여 강제(9%)’ 등이 뒤를 이었죠.

강압적인 신입사원 연수 문화는 대규모 공채 위주의 한국 기업문화가 낳은 악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말 잘 듣는 기업의 ‘구성원’을 만들어내고자 ‘상명하복’식 교육을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개인의 잠재력을 중시하는 스펙 타파 채용이 활발해진 만큼, 연수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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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생들은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에 대한 논의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연수 과정이 공개적으로 비난 받지 않는 이상 기업에서 바꿀 의지가 없는데다, 참여하는 신입사원들도 크게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죠.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연수 문화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입사 포기까지 가는 일은 드문 일입니다.

[ □□기업 신입사원 연수 참여자 ]
“다들 힘들어하죠. 취직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연수 중에 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열두 번도 더 들어요. 그런데 그만둔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나요? 어차피 입사해도 상명하복 문화는 똑같고, 100개 넘게 원서 써서 겨우 하나 합격한 건데 누가 그만두고 나갈 수 있겠어요. 연수원도 ‘헬’이지만, 취업 준비하는 것은 더 ‘헬’이니 다들 참는 거죠.”

(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

[윤영현 기자 y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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