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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월드리포트] 김영란법, 일본 '5천엔' 규정과 비교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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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29일)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합니다. 기자인 저도 적용 대상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그 파급효과가 커서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반면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청된다"고 밝혔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관련 국내 기사를 읽다보니 갑자기 일본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그간 해외 비교 기사가 몇 개 있었지만, 구체적이지 않더군요. 제가 물어본 일
본 기자들과 기업체 관계자들의 답변을 정리해봤습니다. 단순히 기자들 이야기뿐 아니라 일본의 접대문화와 세법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법률적 기준보다 실제 상황을 물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Q&A로 전합니다. 일본이 반드시 모범 사례는 아닙니다.

Q1.) 김영란법처럼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의 규정이 있나?
A : 한국의 김영란법은 한도를 넘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들었다. 일본엔 과태료 부과 규정이 없다. 대신 세법상 '손금산액' 범위라는 것이 있다. 세무회계 과세표준에서 빼주는 것을 말하는데, 이해하기 쉽게 그냥 비과세 경비 인정이라고 해두자. 식사접대비의 경우 통상 '회의비' 또는 '교제비'로 처리한다. 회의비는 100% 손금 인정, 교제비는 50%만 인정받는다. (이하 손금을 그냥 경비로 풀이)

가장 기본 원칙은 1인당 식사비가 5000엔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10년 전인 2006년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A기업 3명이 거래처 B기업 2명을 접대하며 일식집에서 총액 3만엔(소비세 포함)을 지불했다면 1인당 6000엔으로 경비 인정을 못 받는다. 5000엔까지 인정받고, 추가분 1000엔만 인정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전액을 경비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① 식사장소와 시간 참석자 소속 직급 이름 총인원수 총지불액 기타내용 등을 적은 '정산서'도 갖춰야 한다. 아래 정산서 견본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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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에 상대기업 출석자 대표의 이름과 인원이 적혀 있고, 아래 사내 직원 이름과 인원이 적혀 있다. 5만엔을 예산으로 받아 일식집에서 실제 3만6750엔을 지출했다. 참석자 8명으로 나누면 1인당 4593엔이다. 5000엔 이하로 경비 처리가 가능하다. 집에 태워보낸 택시비 2600엔도 교제비로 분류된다. 기업마다 구체적인 서류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Q2.) 이름을 적는다면 접대 실명제 같은 것. 우린 2009년 폐지됐다. 그런데, 저녁 식사와 술을 하면 1인당 5000엔을 넘은 경우가 많지 않나?

A :
맞다. 그런데, 일본 식당에는 1시간 반이나 2시간 동안 '식사 무제한에 얼마'(다베호다이), 또는 '음료.술 무제한에 얼마'(노미 호다이) 라는 제도가 있다. 예약하면서 1인당 5000엔을 맞출 수 있는 식당을 고른다. 인원수가 많으면 아예 식당 주인과 사전에 1인당 얼마씩, 총액 얼마로 금액을 맞춘다. 물론 비싼 식당에 가면 1인당 5000엔 규정을 넘길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편법을 쓴다.

앞서 설명한대로 회의비는 100%, 교제비는 50%만 경비로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5명이 1인당 4000엔짜리 식사를 먹으면 총액 2만엔을 '회의비'로 전액 경비 처리한다. 그런데, 5명이 고급식당에서 1인당 9200엔 정도 먹었다면 총액 4만6000엔를 '교제비'로 처리하고 절반인 2만3000엔을 경비 처리하는 것이다.

Q3.) 일본도 편법이 적지 않나?

A :
정산서에 참석 인원수를 부풀리기도 한다. 실명을 적는다고 해도 위 서류에서 보듯이 'A회사 B부서 C부장 외 몇 명' 등으로 적어도 어느 정도 허용된다. 물론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교제비와 회의비의 차이와 적용방식을 두고 혼란도 적지 않다.

Q4.) 1차, 2차로 접대 자리가 이어질 경우는 어떠한가?
A :
영수증 쪼개기를 막기 위해 같은 종류의 식당은 한 식사로 본다. 즉, 1차가 술집, 2차도 술집이면 두 식당 지불액 총액이 1인당 5000엔 규정에 적용받는다. 그런데, 1차는 일식, 2차는 Bar(바)라면 각각 1인당 5000엔 적용이 가능하다. 위 정산서에 나온 대로 식사가 끝난 뒤 접대 상대를 택시에 태워보내면, 그 택시비는 식사비와 별도의 '교제비'로 처리된다. 대기업은 식사비만 경비 인정이 되기 때문에 택시비는 비과세 인정을 못 받는다. 중소기업은 연간 800만엔까지 교제비 처리가 가능하다.

Q5.) 선물은 어떤가?
A :
선물은 비싼 것을 하든 싼 것을 하든 모두 '교제비'로 처리된다. 역시 대기업은 비과세 대상이 안 되고, 중소기업은 된다. 일본에선 명절 선물을 보내는 대상과 횟수가 한국보다 많다. 또, 위에 언급한 식사비와 택시비에 골프 접대 등도 교제비로 처리된다. 중소기업의 경우 연간 800만엔의 교제비 비과세 한도를 넘기지 않으려면 비싼 선물을 보낼 수 없다. 그래서, 대체로 식사비 규정에 맞춰 한 상품당 5000엔 전후의 상품을 보낸다.

Q6.) 언론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 기자들은 취재원이나 기업홍보담당자와 식사할 때 어떻게 하나?
A :
기본은 각자 내기(더치페이)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각자 내기 문화가 일반화돼 있다. 일부 식당에 주문 전용 단말기가 있는데, 단말기 안에 각자내기 계산 기능이 있다. 아래 단말기 사진을 보자. 오른쪽 숫자들을 보면 5841엔 어치를 2명이서 먹었으니 1인당 2921엔을 내면 된다고 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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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홍보담당자가 식사비를 모두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다음에는 반드시 기자쪽이 먼저 약속을 잡고, 식사를 지불한다. 식사비는 역시 1인당 5000엔 규정을 고려한다. 그리고, 모두 회사에 돌아가 영수증을 제출한다. 음식을 얻어먹으면 접대하는 쪽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는 명확한 윤리 의식을 갖고 있다.

Q7.) 기업 측이 여러 매체 기자들을 모아놓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
A :
그럼, 사전에 기자들끼리 회비 걷는다. 출입처 기자클럽 문화 남아있어 이미 기자클럽 운영비처럼 회비걷어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회비는 언론사 본사에서 지불한다. 즉, 김영란법이 적용되면 한국도 일본처럼 기자들의 취재비용이 늘어날 것이다. 그럼, 이를 언론사 본사가 부담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주간문? 등 유력 잡지들이 특종 보도를 많이 하는데, 이들 기자는 회사에서 연간 1000만엔 정도의 법인카드를 받는다고 들었다. 취재가 돈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중소 언론에선 취재비용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Q8.) 기업들이 국내외 공장 등 현장견학 취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A :
한국은 항공비는 기업 측이, 현지 숙박비는 언론사가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일본에선 기업이 먼저 취재 요청을 했더라도 취재비 전액을 언론사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실 일본에선 현장견학 취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윤리적 이유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비용 부담으로 언론사들이 취재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본 언론들이 기업체에 대한 취재가 약하다고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 지자체의 경우는 좀 달라서 관광 정책 홍보를 위해 현장견학 취재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

Q9.) 앞서 1인당 5000엔 규정이 2006년 4월 처음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이후 경제가 위축됐나?
A :
일본 정부의 통계를 보면 2006년 일본 기업의 교제비 등 지출액은 3조5338억 엔에서 2011년 2조8785억엔까지 줄었다. 그런데, 전체 경제성장률은 살펴보면 1인당 5000엔 규정이 만들어진 2006년 2분기 이후 경제성장률은 -0.1%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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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골프나 여행 등 다양한 접대 방식이 사용되기 때문에 식사비 1인당 5000엔 규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 교제비 전체가 줄었다고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2014년 4월 일본 정부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의 교제비(접대비) 인정 한도를 높여줬다. 식사뿐 아니라 전반적인 접대 규정을 완화한 것이었다. 역시 접대비가 다소 늘어났다. 그런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아래는 2014년 2분기 이후 일본 민간소비의 변화인데, 오히려 2014년 소비세 인상(5%->8%)이 악영향을 주며 소비를 위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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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의 경우를 한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한국의 현재 접대선물 문화를 생각할 때 김영란법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 주변 서너 명의 일본 기자와 기업체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을 정리했습니다. 전문적인 취재는 아니기 때문에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1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일본은 75점으로 18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국은 56점으로 37위입니다. 김영란법 적용 이후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본처럼 일부 편법도 생길 겁니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반부패 청렴 사회로 가는 한 계단임을 부인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최호원 기자 bestig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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