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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취재파일] '팔이 안으로 굽는' 자문의 제도…제도 개선 왜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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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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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자문의사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보험 가입자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의사 진단서와 소견서를 첨부해 보험금을 신청하죠. 그런데 만약 보험사가 진단서를 믿지 못할 경우 보험사와 계약한 자문의사에게 진단을 의뢰합니다. 문제는 이 자문의사가 보험사와 계약돼 자문 한건당 20~30만원의 자문료를 받다보니, 보험사측에 유리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 병명을 보험사측에는 암이 아니라고 했다가, 해당 가입자가 일반 환자로 가장하고 일종의 '블라인드식 진찰'을 받으면 말을 바꿔 암이라고 진단을 내리는가 하면, 심근경색으로 진단받은 환자를 그 전 단계인 협심증이라고 낮춰서 진단을 내리는 등 최대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방향으로 자문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게다가 자문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가입자를 직접 진찰하는 게 아니라 진단서나 소견서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환자를 직접 진찰한 전문의 소견보다는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가입자를 직접 진찰한 전문의보다 자문의 소견을 우선으로 해서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 거죠.

결국 이렇게 보험사 자문의 공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정부가 지난 2013년 11월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자문의사 또는 자문병원이 각 회사와 계약돼 건당 2~30만원의 자문료를 받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이른바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따라 각 회사가 아닌 보험협회 차원에서 전문 의학회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자문의사 풀을 구성해 자문을 맡기도록 했습니다. 보험사가 자문을 의뢰하면 풀에서 무작위로 자문의를 선정해 공정성을 높인다는 계획이었습니다.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취재 결과 안타깝게도 3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정책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보험협회는 당시 전문 의학회들과 협약을 맺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결국 의학회와의 의견 조율 실패로 자문의 풀단을 구성하는 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밝혔습니다. 금융위의 발표가 결과적으로 보여주기식 행정이 되고 만 거죠.

실패로 돌아간 정책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탓을, 금융감독원은 생명보험협회 탓을, 생명보험협회는 각 의학회 탓만 하고 있는데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사실 이 중 누구도 정책 실패의 책임에선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 정책을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던 건 금융위원회였고, 정책을 관리 감독하는 건 금융감독원 역할, 또 이를 실제로 행해야했던 주체는 보험협회와 의학회이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책임을 회피하는 떠넘기기식 대응보다는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보험사 자문의 공정성 논란을 어떻게 하면 불식시킬 수 있을지 정책적으로 보완하는 모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호건 기자 hogen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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