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이화여대 학생들, 나흘째 점거농성… 교수 등 5명 46시간만에 나와

댓글 2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28일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들이 이대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SNS캡쳐


이화여대 재학생·졸업생들이 학교 측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계획’에 반발해 28일부터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30일 오전 11시 15분쯤 학교 측의 요청으로 경찰 병력이 투입돼 46시간 동안 갇혀 있던 교수 4명과 교직원 1명 등 5명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흘째인 오늘 오전까지도 학생들 일부는 “미래라이프 신설 계획이 폐기될 때까지 본관에 남겠다”며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농성은 28일 오후 2시 대학본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대학평의원회(이하 평의원회) 회의에서 교육부 지원사업인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계획을 폐기하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사업 전면폐지에 서명하고 나가달라” 요구했고 남아있는 교수들은 “서명할 수 없다”며 맞섰다.

조선일보

28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7대 총장인 김활란 동상에 페인트를 뿌렸다/연합뉴스


총학생회를 비롯한 시위 참가자들은 서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학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에 참가한 학생들은 회의실에 남아있던 평의원 교수와 교직원들을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7대 총장인 김활란 동상에 페인트를 칠하고 계란을 던지며 반대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학교측은 “28일 총학생회와 시위 참여 학생들이 외부 경호업체 직원들을 고용해 교내에 무단으로 진입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1시쯤 경호업체 직원 19명과 총 책임자 1명이 학생들의 요청으로 본관 앞에 서서 대기하다 5시쯤 해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용은 학생들이 자체 모금을 통해 마련했다.

같은 날 오후엔 평의원들 중 건강이 좋지 않은 2명이 건물 밖으로 나가 30일 오전까지 3명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건물에 갇힌 지 30시간이 넘은 29일 오후 10시쯤 한 교수가 밖으로 나가겠다며 119구조대를 불렀지만 도착한 구조대가 신고자를 찾지 못해 그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조선일보

29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 병력 1600명이 투입됐다/SNS캡쳐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본관 내부에 있던 평의원들은 28일부터 경찰에 구조요청을 23차례 했다. “학교측은 28일 최경희 총장의 명의로 경찰에 출동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경찰이 학내 갈등인 만큼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이날 전화로 재차 출동을 요청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후 경찰은 30일 정오쯤 학교 안팎에 21개 중대(16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끌어냈다. 남아있던 교수와 교직원들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한 홍보팀 관계자가 30일 “경찰 병력은 우리가 부른 게 아니다. 학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내용으로 언론사와 전화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한 ‘거짓 해명’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서대문경찰서는 31일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에서는 이대 총장을 비롯한 학교 측의 명시적인 요청, 약 46시간 동안 감금된 평의원들의 23회에 걸친 '구조해 달라'는 112 신고로 학내에 경력을 투입하게 됐다"고 반박했다. 경찰이 이처럼 학내 대규모 경력 투입 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건 이례적이다.

경찰은 또 “최 총장이 30일 오전 11시 15분쯤 학생처장의 연결로 서대문서 정보과장과 직접 통화까지 해 “안에 있는 교수와 교직원들을 데리고 나와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이화여대가 학내 농성에 서대문경찰서 병력 1600여명이 투입된 경위에 대해 '거짓 해명'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SNS 캡쳐


학교 측 관계자는 “본관에 갇혀 있던 교수·교직원들은 화장실을 가려면 학생들과 함께 가야 했고, 학생들이 허용하는 시간에 식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은 “교수님들이 머무는 공간에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가동했고, 식사도 원하는 시간에 설렁탕 등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고 주장했다.

이화여대는 지난 5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선정돼 뉴미디어산업전공과 웰니스산업전공 등의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기존 학생과 신입생의 교육의 질 저하뿐 아니라 미래라이프대학 학생들도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고졸 재직자 혹은 30세 이상의 무직 성인에게 4년제 대학 정규 학위를 주는 정부 지원사업이다. 지금까지는 방송통신대학이나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 사이버대학들이 이러한 평생학습 수요를 맡아왔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해당 사업의 취지인 ‘여성의 재교육’을 위한 평생교육원은 이미 1984년부터 운영 중”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학교 측은 “타 학교도 유사한 사업을 진행한다”고 해명했지만, 학생 측은 “새로운 단과대학을 설립해 2년 6개월 간 인터넷 수강만으로 4년제 정규 학사 학위를 주는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사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총학생회 측은 “학교 측은 학생들의 의견을 단 한 차례도 수렴하지 않았고 학교가 돈벌이를 위해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며 최경희 총장과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미래라이프대학에 대해 “사회에 진출한 여성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정원 외로 뽑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점거 농성에 대해서는 “대학행정의 중심인 본관을 장기간 점거하는 것은 대학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범법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손호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