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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투표함은 증언한다, ‘부정 선거’의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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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29년만에 열린 ‘구로구청 투표함’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부정선거의 증거로 여겨졌던 서울 ‘구로구청 투표함’ 하나가 29년 만에 봉인이 풀렸다. 1987년 12월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구로구청에서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지키려고 했던 구로을 선거구의 우편투표함이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명백한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와 정부 당국은 합법적으로 이송 중이던 투표함을 탈취당한 것이라고 규정해왔다. 2박3일에 걸친 구로구청 농성 사건의 발단이 된 투표함의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을까.



투표함 바꿔치기 등 선거 부정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던 ‘구로구청 투표함’이 마침내 열렸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선거연수원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한국정치학회(회장 강원택)의 주관으로 개표 및 계수 작업이 이뤄졌다. 1987년 12월16일 13대 대통령선거 당일 ‘문제의 투표함’이 된 지 29년 만이다.

이날 현장에서는 1987년 당시 구로구청 농성 투쟁의 당사자였던 ‘구로항쟁동지회’(회장 윤두병) 쪽 인사들이 “정치학회가 뭔데 당사자를 제치고 나서느냐” “선관위가 정치학회를 앞세워 서둘러 개함하고 역사의 진실을 감추려 한다”며 한때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표 및 계수 작업은 정당 참관인 등이 참가한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직원들이 나와 투표함이 당시 문제가 됐던 그 투표함이 맞는지 검증하기 위한 작업도 벌였다. 국과수는 투표함을 열기 전에 3차원 스캐너로 함을 촬영하는 등 사전 조사를 벌였으며, 개표 이후에는 정밀조사를 위해 투표함과 투표용지 등을 국과수로 옮겼다.

국과수까지 동원한 것은 우선 투표함의 진위 여부부터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투표함은 학생 시민들의 손에 있다가 경찰로 넘어가고, 다시 선관위로 되돌아가는 등 그동안 보관 주체가 여러 번 바뀌었다. 2007년까지는 구로구 선관위에 보관돼 있다가 그 뒤 중앙선관위 수장고로 옮겨졌다. 투표함이 뜯기거나 내용물이 바뀌지 않았다는 게 먼저 증명되어야 당시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접근할 수 있다.

필적 감정하면 투표지 진위 가려져

그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건 안에 있던 투표용지가 87년 당시 부재 투표자들이 직접 보낸 게 맞느냐는 대목이다. 당시 구로을 선거구의 신고된 부재자 총수는 4529명이었으며, 이 중 선거일인 12월16일 오전까지 선관위에 도착해 투표함에 들어간 숫자는 4325표였다. 부재자명부는 구로구청 농성을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에 타 없어졌지만, 투표용지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투표용지를 담고 있는 봉투가 그것이다. 당시 부재자 투표자는 우편 봉투에 자신의 주소와 이름을 직접 기입해야 했다. 당사자를 찾아 필적을 대조하면 본인 것인지 조작된 것인지 가릴 수 있다. 우체국 소인과 등기번호 역시 투표용지 진위를 가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최종 분석 결과는 국과수에서 나오겠지만, 이날 개표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투표함의 진위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체로 비슷했다. 정치학회장인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내부 봉인에 찍힌 도장이나 투표용지의 우체국 소인 상태 등으로 봤을 때 당시의 투표함이 맞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남이 중앙선관위 기록보존소장도 “육안으로 봤을 때는 필적이 동일한 봉투가 없는 등 투표함에 추가로 손을 댄 흔적은 없어 보였다”고 했다.

우편봉투에 담겨 있던 4325표를 이날 분류한 결과 기호 1번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 3133표(72.4%), 기호 3번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575표(13.3%), 기호 2번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404표(9.3%), 기호 4번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 130표(3.0%) 차례로 나왔다. 또 기권 204표, 무효 82표, 기타 1표였다. 1987년 당시 전국적으로는 노 후보가 36.6%를 얻고, 이어 김영삼 후보 28.0%, 김대중 후보 27.0%를 얻었다.

정치학회 주관 우편투표함 여니
노태우 후보가 72% 압도적 우세
노 후보의 구로을 평균은 27%
봉투 필적 감정 등 진행 중이나
투표함 바꿔치기 가능성은 낮아

다른 지역의 부재자 투표도
여당 후보에게 70~80% 쏠려
87년 대선 부정 진상 밝혀져야
“군 부재자 선거 광범한 부정”
92년 이지문 중위 양심선언도


우편투표함의 개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투표함이 그동안 훼손되지 않았고, 내부의 투표용지도 부재자들이 직접 투표한 게 맞다고 밝혀질 경우, 그동안 가장 강력했던 의혹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시 현장에서나 이후 오랫동안 시민들 사이에서는 투표함 속에는 부정 선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일 오전 11시쯤 밖으로 옮기려던 투표함을 시민들이 제지한 이후, 3층 선관위 사무실에선 백지 투표용지 1506장과 인주, 붓두껍이 발견됐다. 당시 선관위는 백지 용지와 관련해 “선관위원장과 여야 대리인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때 파손되는 경우에 대비해서 예비로 갖고 있던 것이며, 인주와 붓두껍은 두달 전 개헌 국민투표 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태에서, 이러한 설명이 먹혀들기는커녕 누군가가 투표를 조작해서 투표함에 집어넣은 증거물로 인식됐다. 1만명에 가까운 학생·시민들이 구로구청으로 달려가서 2박3일간 농성 투쟁을 벌였던 것은 이런 의혹이 얼마나 강했던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의 투표함 관리 방식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면 선관위 사무실에서 부재자 투표가 조작될 가능성은 매우 약하다고 할 수 있다. 13대 국회 때인 1989년 1월에 있었던 ‘양대 부정선거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이종근)의 속기록과 검찰 수사 기록(87년 12월 29일) 등에 따르면, 우편투표함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당이 추천한 선관위원들이 사실상 관리했다. 하루에 두번씩 우편물이 오면 야당 추천 위원(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1명씩)이 배석한 상태에서 함을 열어 봉투를 넣은 뒤 안뚜껑 투입구와 겉뚜껑을 봉쇄하고 해당 선관위원들이 자신의 도장을 찍어 봉인했다. 우편투표함의 내용물을 바꿔치기 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하려면 야당이 추천한 선관위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상식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혼합 개표로 부재자 선거 부정 물타기

투표함을 빼돌려 외부에서 조작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강하게 제기됐다.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역시 각 개인이 친필로 작성한 주소와 이름이 있는 봉투를 마련해야 하고, 봉인할 선관위원의 도장도 있어야 한다는 점 등으로 판단했을 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당시 투표함을 개표 장소인 서울 시립부녀복지회관으로 예정대로 미리 옮겼다면 앞에는 경찰 호송차, 뒤에는 야당 추천 선관위원들이 따르도록 돼 있었기에 제3의 장소로 빼돌리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투표함의 개표 결과가 당시 구로을 선거관리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따라서 13대 대통령선거가 공정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투표함에 대한 직접적인 조작은 없었더라도 부재자 투표에 대한 부정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게 아니냐는 간접 증거로 오히려 해석할 수도 있다. 군인 등 젊은층이 대부분인 부재자 투표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야권 성향이 훨씬 강하게 표심에 드러난다. 따라서 야당 후보에 대한 득표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정작 구로을 우편투표함에서는 여당 후보인 노태우 후보의 득표율이 야당 후보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반대로 당시 구로을의 지역 투표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34.3%로 1위를 기록했으며, 노 후보는 27.0%로 2위에 머물렀다. 따라서 구로을의 부재자 투표에서 노 후보의 득표율은 지역 투표에 비해 무려 45.4%포인트나 높다. 부재자 투표 진행 과정이 정상적이라 보기 힘든 이유다.

한겨레

1987년 12월 16일 오전 11시쯤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이던 때에 선관위 사무실 밖으로 들고가려다 공정선거감시활동을 벌이던 시민들에게 발견된 우편 투표함의 모습. 시민과 학생들은 부정선거의 물증이라며 이 투표함을 놓고 구로구청에서 2박3일간 농성을 벌였으며, 정부는 경찰 4천여명을 동원해 이들을 강제 진압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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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의 부재자 투표 역시 비슷하다. 당시에는 부재자 투표함을 별도로 개표하지 않고 지역의 일반 투표함 하나와 섞어서 혼합 개표를 했기 때문에 지역별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혼합 개표한 득표율이 남아 있어 부재자 투표의 득표율이나 투표 성향을 개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김대중 후보가 94%를 얻은 광주의 경우 노 후보는 4.8%밖에 얻지 못했으나, 혼합 개표에서는 36.9%의 득표를 기록했다. 혼합 개표에 섞인 일반 투표함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지지율도 지역 평균과 마찬가지로 90% 정도였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부재자 투표함에서 노 후보 지지가 70~80%가 나와야 얻을 수 있는 수치다. 김영삼 후보가 56%를 얻어 1위를 한 부산도 마찬가지다. 혼합 개표에서는 노 후보가 60.1%를 얻었으며, 김 후보는 33.4% 득표에 그쳤다. 이는 부재자 투표에서 노 후보가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어야 가능한데, 이는 당시 부산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과 완전히 다른 결과다.

87년 대선 당시의 군 부재자 투표 실태가 명확하게 드러난 적은 거의 없다. 육군 8350부대에서 부재자 투표를 한 날 저녁에 내무반 선임병이 후임병 9명을 불러 세워놓고 주먹으로 구타하다가 당시 정아무개 상병이 넘어져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부재자 투표를 상관 마음에 들지 않게 한 데 대한 보복 폭행설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국회 양대 부정선거조사특위에서 관련자들을 불러 진행한 심문에서 군 관계자들은 단순 구타였다고 주장하거나 입을 다물어 더이상 조사가 진척되지 않았다.

경찰 강제진압 등 국가폭력도 규명돼야

군 부재자 투표의 실태는 1992년 총선 때 비로소 드러났다. 육군 9사단 28연대의 소대장으로 근무 중이던 이지문 중위는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단위 부대에 따라서는 중대장이나 인사계 등이 지켜보는 앞에서 (투표를) 찍도록 하는 등 공개 기표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또 이 중위는 “기무대 파견 장교가 일부 중대장들을 만나 여당표가 80% 이상 나오도록 하라고 회유 설득했다”고 밝혔다. 이 중위의 폭로는 잇따른 증언으로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고, 이를 계기로 1992년부터 군 부재자 투표소가 부대 바깥에 설치됐다.

일단 정치학회는 진상 규명에 적극적이다. 강원택 정치학회장은 “투표함 개함으로만 봐도 군 부재자 투표에 광범위한 부정이 있었던 것 같다”며 “당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폭넓은 인터뷰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사와 선거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객관적으로 정리할 때가 됐다”며 “이를 토대로 민주화 30주년인 내년부터는 심화된 민주주의를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구로항쟁동지회는 진상 규명에 회의적이다. 황세연 구로항쟁동지회 회장 권한대행은 “구로구청 투표함 하나의 내용물만이 아니라 13대 대통령선거의 부정 의혹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야 하는데 수사권도 없는 학술단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구로구청 농성 사건 당시의 관련자들을 인터뷰해서 2004년 다큐멘터리 영화(‘돌 속에 갇힌 말’)를 만든 나루 감독은 “구로구청 농성 사건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음에도 중앙선관위는 아직까지 이를 ‘투표함 탈취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칫하면 투표함 개함이 선관위에 면죄부만 줄 수 있다”며 “조사를 하려면 군 부재자 투표 실태와 당시 개표방송 조작 의혹, 시위자에 대한 경찰의 강제진압 등을 다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표함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이나 합의에 의한 투표함 개함 등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당시 전두환 정부는 28개 중대 4천여명의 경찰을 동원해 시위자들에 대한 강제 해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생 양원태씨가 5층 강당에서 추락해 척추를 다치는 등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연행자 1천여명 중 208명이 구속되고, 이 중 114명이 기소됐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뒤 처음 치른 선거가 남긴 거대한 생채기가 덧날지 치유될지는 한국정치학회가 앞으로 내놓을 종합보고서에 달렸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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