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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폭염 탈출 낭인들 ②] 2000원으로 시원한 하루 보낸다...‘카페 죽돌이’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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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갖춰진 냉방시설ㆍ저렴한 음료가격에 하루종일 앉아 얘기 꽃

-여성노인보단 남성노인 더많아…“갈곳없는 노인들 자화상” 분석도



[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1. “2000원이면 시원하고 편하게 하루 때울 수 있지.” 한낮 기온이 35℃가 훌쩍 넘어선 지난 25일 오전 7시께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박상래(72) 씨가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도 벌써 3명이 도착해 창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박 씨는 매일 오전 6시 집을 나서 1호선을 타고 이곳 패스트푸드점으로 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다. 그는 전남 구례 출신으로 60년대 서울에 올라와 지인의 건설사에서 발주한 공사장에서 일하며 1남 2녀를 키워냈다. 지난 2011년 암 환자였던 부인과 사별하고 나선 혼자 살고 있는데 아들이 자신을 모시겠다고 해 아들이 사는 대전에 잠시 내려갔었으나 금세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반세기 넘게 산 서울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박 씨는 “경로당에 있으면 늙은이들끼리 있으니깐 기분도 우울하고 재미도 없다”며 “여기(패스트푸드점)는 2000원 주고 커피 한잔 시켜 놓으면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아무도 나가라고도 안한다”며 패스트푸드점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옆에 앉아있던 김모(70) 씨도 “여기서 길 건너 공원(탑골공원)서 만난 할아버지들이랑 주스 마시면서 얘기하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구경하거나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재미로 산다”며 “카페 쇼파는 오히려 부담스러운데 여긴 딱딱한 철제 의자라 계속 앉아있기 더 편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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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야외를 피해 카페ㆍ패스트푸드점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냉방시설과 저렴한 음료 가격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모습이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마땅한 피서 시설이나 활동 프로그램은 부족한 현상황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2.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조영환(66) 씨는 지난 2013년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한 뒤 종로구 한 상가 건물에서 경비업무를 보고 있다. 전날 야간 근무를 마친 조 씨는 근처 한 카페를 찾았다. 조 씨는 “3교대로 일하고 있는데 밤새 일하고 나면 바로 집에 가면 잠도 잘 안오고 덥다”며 “여기 카페에 들러 만나는 사람들과 점심께까지 얘기를 나누며 놀다가 이른 저녁에 집에 간다”고 했다. 조 씨는 옆 자리에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누던 박모(69) 씨와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묻자 “오늘 처음 본 사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조 씨는 “마누라는 경로당서 만난 친한 동네 할머니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하는데 다 늙어빠진 할아버지들은 마땅히 배운 취미도 없고 잘 놀러 다니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집에 가면 어차피 마누라도 없고 너무 덥고…. 여기가 시원하고 또래들도 많아 덜 심심하다”며 카페를 찾는 쏠쏠한 재미에 대해 말했다.

여름철 무더운 야외를 피해 종로구 일대 카페ㆍ패스트푸드점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기존의 많은 노인들이 찾아 인산인해를 이루던 탑골공원이나 인사동 일대는 이제 무더운 날씨로 인해 한산해졌다. 대신 근처 패스트푸드점 창가 자리를 노인들이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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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야외를 피해 카페ㆍ패스트푸드점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냉방시설과 저렴한 음료 가격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모습이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마땅한 피서 시설이나 활동 프로그램은 부족한 현상황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냉방시설과 저렴한 음료 가격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하는 김모(24ㆍ여) 씨도 “여름철이 되면서 가게를 찾는 할아버지들이 특히 더 늘어났다”며 “할머니들보다 할아버지들이 더 많이 오시고 햄버거 같은 식사류 보다는 커피나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류를 많이 찾으신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마땅한 피서 시설이나 활동 프로그램은 부족한 현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염지혜 중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히 남성 노인들은 은퇴하기 전 여가생활을 즐기는 생활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바빴다”며 “사회적 교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성 노인들과는 달리 급속히 줄어든 인적 네트워크와 부족한 경제력으로 남성 노인들이 마땅한 취미생활을 향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염 교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사회적 공간으로 끌어내 건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정책과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했다.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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