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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NEWS&VIEW] '종교 테러' 유럽, 난민을 쏘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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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분쟁 노린 듯… 범인들, 神父 무릎 꿇리고 아랍어로 설교]

성당에서 신부 욕보이고 살해… 관용의 한계 넘은 범행에 충격

헝가리 총리 "난민은 毒이다"

佛·獨, 잇단 테러에 반감 심화… 수용·배척 놓고 갈등 더 커져

범행 촬영, 서방종교 모욕 의도

전자발찌 찬 범인과 비슷한 요주의 인물 佛에 약 2만명

- 유럽 각국 난민 통제 움직임

"동정심에 안보 희생 안된다" 오스트리아, 국경 펜스 설치 추진

"난민은 독(毒)이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26일(현지 시각) 부다페스트에서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와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난민에 극도의 반감을 표출했다. 오르반 총리는 "단 한 명의 난민도 필요 없다"며 "그들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우리를 테러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했다. 오르반 총리 발언은 난민 사태에 직면한 현재의 유럽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럽이 난민 문제를 놓고 기로에 섰다. 2010년 말 시작된 '아랍의 봄'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던 유럽은 이제 난민을 포용할 것이냐, 배척할 것이냐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유럽 국가 간 갈등도 격해지고 있다.

조선일보

성당까지 테러… 프랑스 사회 '경악' - 26일(현지 시각) 프랑스 경찰들이 미사 도중 인질 살해극이 일어난 루앙 인근 생테티엔 뒤 루브래 성당 앞 진입로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이날 오전 이 성당에서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테러범 2명이 침입해 미사를 집전하던 자크 아멜 신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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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독일 등에서 잇달아 터진 테러·범죄는 난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적대감에 불을 지르고 있다. 이슬람국가(IS) 조직원과 IS 영향을 받은 '외로운 늑대'들은 대도시와 휴양지, 지방 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지난 26일엔 프랑스 북부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80대 신부가 IS 추종자의 칼에 목이 베인 채 숨졌다. 범인들은 신부를 제대 앞에 무릎 꿇리고 아랍어로 설교하는 자신들 모습을 동영상에 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유럽은 기독교와 이슬람 간 종교전쟁의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범행 수단도 총과 사제 폭발물은 물론, 대형 트럭·도끼·칼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인들은 "도대체 어디가 안전한 곳이냐"며 공포에 떨고 있다.

조선일보

가장 큰 고민은 이미 들어와 있는 수많은 아랍계 난민과 이주민이다. 문제는 유럽 사회가 이들을 통제하고 억누르면 난민발(發) 위기는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방과 이슬람 세계의 충돌을 노리는 IS의 전략이기도 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유럽에 살고 있는 난민·이민자를 얼마나 잘 포용하느냐에 유럽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했다.

지난 26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북부 생테티엔 뒤 루브래시(市)에서 발생한 성당 테러 당시 범인들은 자크 아멜(86) 신부를 무릎 꿇리고 아랍어로 설교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인질로 잡혔던 다니엘르 수녀는 프랑스 BFM TV 인터뷰에서 "그들(테러범)은 신부님을 강제로 무릎 꿇게 했고, 신부님이 저항하려는 순간 비극이 일어났다"고 했다. 인질로 잡힌 수녀·신도들의 "제발 그만두라.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느냐"는 만류에도 범인들은 신부의 목을 칼로 그어 살해했다. 다니엘르 수녀는 "그들은 이 장면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공포의 극대화와 함께 서방 종교를 모욕해 종교전쟁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조선일보

26일(현지 시각) 프랑스의 한 성당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범인 중 한 명인 아델 케르미슈(19)의 2011년 모습. 알제리계로 알려진 케르미슈는 테러 직후 다른 범인과 함께 현장에서 경찰에게 사살됐다. /데일리메일


프랑스 경찰 조사 결과, 범인 중 한 명인 아델 케르미슈(19)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으로, 작년 초부터 급격히 테러리즘에 빠진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 1월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잡지 테러 이후, 인터넷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프랑스 매체 RTL은 보도했다. 대학교수인 케르미슈의 어머니는 "예전엔 음악 좋아하고 여성들과 데이트하는 아이였는데 갑자기 모스크(이슬람사원) 갈 때를 빼곤 은둔자로 지냈다"며 "마치 주문에 걸린 것 같았다"고 했다.

케르미슈는 작년 3월과 5월 두 차례 시리아에 가려다 붙잡혀 프랑스로 송환돼 구속됐고, 올 3월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전자팔찌를 차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프랑스 당국은 그를 국가 안보·테러 관련 요주의 인물 등급인 S등급으로 분류해 관리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프랑스에는 현재 S등급 관리 대상이 약 2만명이며, 이 중 이슬람 극단주의 관련자는 1만5000명에 달한다.

최근 2주일 사이 프랑스·독일에서 테러·범죄가 잇따르면서 난민 유입을 통제하려는 유럽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최근 이웃 국가 헝가리와 맞닿은 300㎞ 국경 중 100㎞ 구간에 철제 펜스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하루 20~30명 정도인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 마르가르티스 시나스 대변인은 "난민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유럽) 안보를 희생시킬 순 없다"고 했다.

독일에서도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독일 시장조사기관 Gfk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83%가 이민자 문제 해결을 가장 큰 국가의 당면 과제로 꼽았다. 2014년과 작년 조사에서는 이 같은 응답이 각각 5%와 35%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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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추방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州) 요아힘 헤르만 내무장관은 "범죄를 저지른 난민은 신속하게 쫓아내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무조건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 집권 기독민주당의 아르민 슈스터 의원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는데도 국내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무려 20만명 이상"이라며 "난민에 대한 '작별(farewell)' 문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독일은 작년 입국 난민 110만명 중 14만명이 입국 등록 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정민 외대 교수는 "최근 테러를 빌미로 유럽은 난민을 향해 열었던 문을 굳게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장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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