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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냉방비 지원 제로… 무더위에 삶이 더 힘든 취약계층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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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신음하는 한국]‘한증막 쪽방’의 슬픈 이웃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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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사용 여름 최고치 또 경신 26일 전남 나주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전력상황실에서 한 관계자가 실시간 전력수요량을 체크하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최고 전력수요가 8111만 kW로 25일 기록한 여름철 최고 수치인 8022만 kW를 뛰어넘었다. 나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반지하 방. 홀몸노인 박모 씨(82·여)는 바람도 통하지 않아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조그만 공간에서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채질로 흐르는 땀을 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작은 선풍기가 있었지만 작동시키지 않은 상태였다.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과 기초노령연금으로 매달 40만 원을 받는데 병원비, 교통비, 식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마음 놓고 선풍기를 돌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연일 폭염특보가 지속되는 가운데 박 씨 같은 취약계층 노인들이 힘든 여름을 맞고 있다. 난방비가 지원되는 겨울과 달리 사실상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복지단체의 지원책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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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취약계층 노인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냉방 지원은 기초생활수급자 중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들에게 매달 전기요금 8000원을 감면해주는 것이 전부다. 정부는 지난해 겨울부터 만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여름 냉방비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무덥기는 ‘어르신 공동생활주택’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 보건복지부가 노인 주거안정 사업의 일환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이 주택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주택 및 한국토지주택공사(LH), SH공사의 공공주택을 임차해 기초생활수급 대상 노인에게 무상으로 최대 8년간 임대하는 것이다. 상당수가 준공 후 20년 이상 지난 낡은 주택인 데다 냉난방 등 더위와 추위를 나기 위한 지원도 없다. 유모 씨(84·여)가 사는 서울의 한 공동생활주택은 창문이 열려 있었지만 22일 오전에도 실내 온도가 30도에 육박했다. 그는 “집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지만 더위는 어쩔 수 없다”며 쏟아지는 땀을 연신 닦아냈다.

전국 4만1569곳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도 취약계층 노인들이 이용하기엔 역부족이다. 주로 경로당, 복지관 등이 쉼터로 지정돼 지자체가 냉방비를 지원하지만 서울의 경로당은 3분의 2가량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있고, 공동주택 경로당은 대부분 해당 주민에게 회비를 걷는 회원제로 운영돼 연고가 없는 노인이 이용하기 힘들다. 양천구 신정동 단칸방에 홀로 사는 하모 씨(85·여)는 “근처 아파트 경로당에 가려면 더운 날씨에 힘든 몸을 이끌고 나서야 하는 데다 교통비도 부담스럽고 눈치도 보여 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더위 쉼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폭염특보가 발령될 때 오후 9시까지 연장 개방하는 곳도 있지만 그 수는 서울 전체 쉼터의 17%에 못 미친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지자체별로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빠듯한 예산과 인력으로 야간까지 개방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지자체가 취약계층 노인에게 직접 지원하는 냉찜질용 얼음 팩 등 냉방용품도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일부 복지단체가 마련한 사설 쉼터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수혜자는 극소수다.

전문가들은 노인층이 온열질환에 취약한 만큼 현실적인 무더위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오재훈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노년기에는 심혈관계 기능이 떨어져 폭염에 탈진, 실신 등 열사병이 일어나기 쉽다”며 “무더위 쉼터 운영시간 연장, 직접적인 냉방지원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이영빈 인턴기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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