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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4만㎞ ‘탄소 제로’ 비행…에너지 혁신의 미래는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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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르, 세계 최초 태양광 비행기 세계일주 성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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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15년간 기다려 왔습니다. 석유 한 방울 없이 우리는 4만㎞를 날아왔습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26일 오전 3시47분(현지시간), 아직 해가 뜨기엔 이른 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알바틴 공항, 캄캄한 상공에 반짝이는 불빛이 나타났다. 세계 최초로 햇빛만 이용해 세계일주를 마치고 아부다비로 돌아온 태양광 비행기 솔라임펄스2였다.

마지막 비행구간인 이집트 카이로~아부다비 여행을 마친 스위스인 조종사 베르트랑 피카르는 조종석에서 나오며 “앗살람 알레이쿰(평화가 당신과 함께). 아부다비,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아랍어로 인사말을 건넸다고 걸프뉴스 등은 전했다. 505일에 걸친 장대한 여정을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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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8세로 로잔 태생인 피카르의 인생은 끝없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다. 피카르는 걸출한 과학자와 탐험가를 대대로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오귀스트는 물리학자로, 1931년 열기구를 타고 사상 최초로 성층권에 도달했다. 해양학자인 아버지 자크는 1960년 심해 잠수함으로 지구에서 가장 깊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11㎞ 지점을 탐사했다. 삼촌, 고모들도 과학자이거나 항공기·열기구 조종사였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모험가 수저’를 물고 태어난 셈이다.

피카르가 본격적으로 모험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1969년 7월, 미국에서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던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제자였던 아폴로 우주선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 덕에 피카르는 열한 살 때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 우주센터에서 인류 최초의 달 탐사단이 출발하는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피카르는 훗날 “그 순간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회고했다. 로잔대학 정신의학과에 진학한 것도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심리를 탐구하기’ 위해서였다. 졸업 후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도 열기구 비행과 항공기 조종, 글라이딩을 하며 여러 기록을 세웠다. 1999년에는 사상 최초로 열기구를 타고 무착륙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미래 세대는 ‘살 만한 지구’를 우리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태양 에너지 비행을 꿈꿔왔던 피카르는 2003년 태양광만으로 장거리 비행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재생가능 에너지만으로도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이 계획은 스위스 공군 조종사 출신인 앙드레 보슈베르를 만나 솔라임펄스라는 회사를 공동 창업하면서 구체화됐다. 2007년 솔라임펄스 1호를 만들었고, 2009년 태양광 에너지로만 87분에 걸쳐 1000m 상공을 날았다. 2012년에는 유럽에서 미주까지 첫 대륙 간 비행을 했고 이듬해에는 미국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했다.

자신감을 얻은 피카르와 보슈베르는 세계일주에 도전했다. 더 가볍고 튼튼한 솔라임펄스 2호를 제작한 뒤 UAE 정부를 비롯한 각국의 도움을 받아 2015년 3월9일 아부다비를 출발했다. 어려움이 없었을 리가 없다. 냉난방 시설이 없어 조종사는 영하 20도에서 영상 35도를 넘나드는 기온변화를 견뎌야 한다. 난기류와 고온으로 잠을 이루기 힘든 나날들이었다. 지난해 4월 중국 충칭~난징 구간을 비행할 때는 모래바람에 갇혀 일정이 3주나 지체됐고 난징에서 하와이로 갈 때는 기상이 나빠져 일본 나고야에 긴급 착륙해 한 달간 기체를 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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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랑 피카르의 ‘모험가 혈통’ 할아버지 오귀스트아버지 자크(왼쪽)-성층권 열기구 비행, 아버지 자크-마리아나 해구 탐사


505일의 여정 끝에 비행기는 시작점이자 종착점인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다. 피카르는 기자회견 내내 벅찬 표정이었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깨끗하고, 그 미래는 바로 당신입니다. 미래는 지금 이 순간이기도 합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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