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맞춤형 보육 한달…부모도 어린이집도 적응 안돼 '헉헉'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이는 낮잠 못자고 서둘러 하원…엄마는 급하게 일자리 찾기

복지부 "부정사례 철저 적발" 방침…제도 정착 시간 걸릴 듯

연합뉴스

맞춤형 보육 시행 첫날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정부의 맞춤형 보육 시행 첫 날인 1일 서울 성동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2016.7.1 kane@yna.co.kr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오수진 기자 = "맞벌이 한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하래서 주민센터를 세 번이나 방문했어요. 남편은 일용직이고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서류 준비도 쉽지 않았는데 저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엄마는 자료 발급도 그렇고 이걸 제출하러 갈 시간도 없을 거 같더라고요"

26일 맞춤형 보육이 시작된 지 약 한 달이 됐지만 아직도 보육 현장에서는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맞춤형 보육제도는 0~2세반(만 48개월 이하) 영아의 보육 체계를 하루 12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는 '종일반'과 하루 최대 6시간에 필요할 경우 월 15시간 긴급보육바우처 추가 이용이 가능한 '맞춤반'으로 이원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필요한 대상자에게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하지만 시행 직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발생한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3월 입학해 이제 겨우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한 어린아이들은 석 달 만에 바뀐 등·하원 일정에 다시 적응 중이다.

◇ 정책은 달라졌는데 변한 게 없어…"누구를 위한 맞춤형인가요"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 고모(32·여)씨는 몇 년전 아이를 12시간 맡아주는 어린이집을 찾지 못해 급여를 절반만 받는 대신 오후 3시 퇴근이 가능한 부서로 옮긴 경험이 있다.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 중인 고씨는 처음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복직을 하면 원래 일하던 부서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마음을 접었다. 정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말뿐인 종일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큰 아이는 7살이라 여전히 종일반이긴 해도 오후 6시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불 꺼진 어린이집에 당직 선생님과 저희 아이만 있다"고 말했다.

종일반에 아이를 맡기는 학부모들이 눈치 보지 않고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시설과 인력이 열약한 일부 보육기관은 예전과 차이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고씨는 "이번에 맞춤반에 편성된 둘째도 복직하면 다시 종일반으로 돌아가겠지만 지금은 어린이집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아이를 몇 시에 하원 시키느냐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어린이집에 주는 지원금액 자체가 달라지니 부모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씨는 "또래 엄마들과 이야기하는 단체 채팅방을 보면 맞춤반에 편성돼 오후 3시에 어린이집을 나와야 해서 원래 자던 낮잠도 안 재운 후 집으로 보내는 어린이집도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맞춤형 보육 시행 후 고충을 토로하는 건 학부모뿐만이 아니다.

충남 아산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바우처 사용을 전산에 입력할 때 병원 방문, 가사 등 사유를 넣어야 하는데 일일이 어머니들에게 물어볼 수 없어 그냥 1번으로 모조리 입력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바우처를 다 사용하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엄마들에게 말씀드려 바우처를 매일 쓰는 형식으로 하고 이를 다 쓴 뒤 급한 일로 긴급 보육이 필요하면 바우처 없이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 급하게 시행된 정책, 편법·질 낮은 일자리만 부추겨

자리 잡지 못한 맞춤형 보육의 문제점은 학부모와 어린이집 원장, 교사에게 일시적인 혼란을 초래한 데 그치지 않는다.

자녀가 어느 반에 편성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일부 학부모는 아이를 계속 종일반에 보내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거나 질 낮은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김모(33·여)씨는 6살, 23개월 자녀를 두고 있어 당연히 둘 다 종일반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행 한 달 반 전 둘째 아이는 종일반에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내년부터 일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둘째가 맞춤반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 부랴부랴 일자리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구직활동에 나섰으면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선택지는 아르바이트 뿐이었다"며 "그래도 지금 일하는 곳에서 발급해 준 재직증명서와 2주 치 아르바이트 비용이 들어온 통장 사본을 주민센터에 제출해 맞벌이 부부임을 증명받았다"고 털어놨다.

다급한 제도 시행에 쫓겨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거나 급하게 구직활동을 시작하는 사례는 김씨 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문미옥 의원이 최근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맞춤형 보육 시행 한 달 전인 6월에 여가부의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사업인 '새일센터' 구직활동 증명서류 발급은 전년보다 129.6% 증가했다.

4월과 5월의 구직활동 증명 서류 발급이 각각 1.4%, 41.2% 증가한 데 그친 것을 고려하면 6월에만 이례적으로 증명서 발급 수치가 폭증한 것이다.

늘어난 증명서 발급과 달리 6월 새일센터를 통한 취업사례는 전년보다 1.2% 늘어난 160건에 불과했다.

문 의원은 "맞춤형 보육의 부작용인 미취업 부모의 증빙뿐인 구직활동이 수치로 확인됐다"며 "정부의 종일반과 맞춤반의 차등지원 정책이 미취업 부모들의 서류뿐인 구직활동 증빙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 운영시간 미준수 등 현장점검 쉽지 않아…"제도 정착에 시간 걸릴 것"

보건복지부는 오는 29일까지 어린이집 현장점검을 통해 운영시간 미준수, 바우처 사용 종용 등 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맞춤형 부정 사례를 철저히 적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실제로 7월 셋째 주까지 맞춤형 보육 관련 부정 사례로 접수된 복지부에 민원은 5건에 불과하고 현장점검을 나가 행정 처분이 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어린이집 운영 기준 위반 사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은 어린이집에 운영계획서 작성을 안내하고 계도 차원에서 모니터링 중"이라며 "사실 현장점검을 나가도 운영시간 미준수 등은 쉽게 적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복지부 관계자도 "기존의 어린이집 운영 관행과 달라 많은 분이 맞춤형 보육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끼실 수는 있다"며 "맞춤형 보육제도가 수요자들에게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ujin5@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연합뉴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정부의 맞춤형 보육 정책 시행 첫 날인 1일 서울 성동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다. 2016.7.1 kane@yna.co.kr



연합뉴스

배식하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정부의 맞춤형 보육 정책 시행 첫 날인 1일 서울 성동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을 찾은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점심시간 어린이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다. 2016.7.1 kane@yna.co.kr



연합뉴스

'맞춤형 보육 정책 반대한다'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 회원들이 '맞춤형 보육'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맞춤형 보육' 정책에 반대하며 릴레이 단식농성을 열흘째 이어가고 있다. 2016.6.24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