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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을사늑약’ 비운 깃든 중명전 복원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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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0년 복원된 현재 건물은

1층 현관만 튀어나온 모양새

근대사료학자 이순우씨가 공개한

1905년 촬영 ‘원형’ 사진에선

1·2층 모두 튀어나온 형태

문화재청 “재복원 여부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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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당시인 1905년께 중명전 모습. 건물 정면부 가운데가 2층 부분까지 앞으로 튀어나온 모양(포치)을 하고 있어 현재 복원된 중명전과 전혀 다르다. 사진 이순우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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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일제가 대한제국 고종 황제와 대신들에게 을사늑약을 겁박한 역사의 현장인 서울 정동 덕수궁 중명전(수옥헌·사적 124호)의 구한말 원형을 보여주는 사진이 발견됐다. 이 사진 속 중명전의 정면 외형이 2010년 복원된 현재의 중명전과 크게 다른 것으로 드러나 재복원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근대사료 연구자인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5일 <한겨레>에 1905년 당시 미국에서 출간된 러일전쟁 사진집에 실린 당시 중명전의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1905년 혹은 그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중명전을 배경으로 그 옆 미국공사관 마당에 도열한 경비병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래에는 ‘서울 미국공사관 부근의 해병들’이란 영문 설명이 붙었다. 사진을 보면 당시 중명전은 건물 정면 가운데 부분이 1층 현관과 2층 베란다까지 함께 튀어나온 포치(Porch: 비를 피하기 위해 돌출된 구조) 형식의 얼개를 띠고 있다. 현재 복원된 중명전은 1층 현관만 튀어나와 있고, 2층 부분은 다른 면의 테라스와 같이 돌출되지 않은 구조여서 원형과 많이 다르다. 이순우씨는 “미국 도서관들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덕수궁 관련 건축물 자료들을 검색하다 최근 발견한 사진”이라며 “현재 복원된 중명전의 건축적 외형에 대한 고증이 잘못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명전은 건축면적 236평의 양식 2층 벽돌집이다. 1901년 덕수궁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을 당시엔 ‘수옥헌’이란 명칭으로 불렸으며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 집무실과 외국 사절 알현실로 쓰였다. 이듬해 11월 을사늑약이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 아래 체결된 비운의 장소로 유명하다. 2010년 문화재청이 구한말 사료들을 토대로 건물 벽면을 해체하고 옛 모습을 고증해 복원했으나 2층과 벽면 부위 등의 고증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왔다. 당시 복원공사 자문을 맡았던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건축사)는 “구한말 건물 정면을 근접해 찍은 사진은 처음 본다. 복원 당시 건물 정면 원형에 대한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벽체의 원형을 추정하면서 복원했던 만큼 이번에 발굴된 사진은 앞으로 건물 지붕과 정면 등을 재복원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 쪽은 “8월1일부터 중명전의 내부 리모델링 작업만 진행할 예정이어서 당장 재복원 방침을 정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원형 사진을 검토해 재복원 여부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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