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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특별기획/위기의 한국...상실의 시대]①모랄해저드의 극치...위도, 아래도 다 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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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사진=연합뉴스 제공


[뉴스웨이 이창희 기자]

어느 시대에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도덕적 타락은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무한 경쟁은 무한 이기주의를 낳았고 소통과 배려는 점점 사라져간다. 위부터 아래까지 이 같은 세태가 만연하게 뿌리내린 상황에서 희망의 빛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가리지 않고 끊이지 않는 비리·의혹

검찰 68년 역사상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지난 18일 진경준 검사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진 검사장은 지난 2005년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4억2500만원의 넥슨 주식 매입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탈세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본인의 처남 명의 청소용역업체에 각종 용역 사업을 몰아주도록 한 혐의도 있다.

이와 맞물려 청와대에서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의혹이 때맞춰 터져나왔다. 우 수석은 자신의 장인이 지난 2008년 4명의 딸에게 상속한 서울 강남역 인근 부동산을 2011년 3월 넥슨이 1300억원대에 매입해준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 과정에서 진 검사장의 주선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 수석과 진 검사장은 서울 법대 및 검찰 선후배 관계다.

이 뿐만 아니라 우 수석은 지난 2013년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정식으로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홍 변호사와 정 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드러난 대형 법조비리 역시 도덕적 해이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수면 위로 떠오른 비리 의혹은 우 수석이 대표적이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고위직을 꿰찬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크고 작은 결격사유가 무더기로 드러난다. 장관급에서부터 비리가 없는 인물을 찾기 어려워진 풍토에서 우 수석의 의혹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최근 개각이 단행된 지난 1월 인사청문회에서는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의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홍 장관과 함께 앞서 강병규 전 장관과 정종섭 전 장관까지 행자부 장관 3연속 위장전입이라는 진기록이 수립됐다.

이 뿐만 아니다. 앞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유기준 전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위장전입 대열에 합류했고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탈루,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아들의 병역특례 의혹에 휩싸였다.

◇“윗놈들이 저러는데 우리라고 별 수 있나”

이 같은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까지 확산 재생산되면서 편법에 대한 유혹과 준법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올초 한국법제연구원이 실시한 ‘2015 국민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준법 정신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50%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대답해 ‘잘 지켜진다(49.5%)’고 대답한 이들보다 많았다.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그 이유로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니까42.5%’를 가장 많이 꼽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18.9%)’, ‘법을 지키는 것이 번거롭고 불편해서(11.2%)’, ‘법을 잘 몰라서(7.2%)’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한국법제연구원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부 계층이 범죄행위를 하고도 처벌받지 않거나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처벌을 받는 등의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말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과 검찰에 대한 국민신뢰도는 10년 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지난 2004년 조사와 비교해 법원은 56.4%에서 24.2%로, 검찰은 43.3%에서 16.6%로 신뢰도가 급락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51.6%와 41.6%는 각각 법원과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은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더 심한 처벌을 받는다’는 질문에 응답자 중 80% 가량이 동의한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준법 의식에 대한 회의감은 10대 청소년들에게서도 두드러진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분부 윤리연구센터가 지난해 말 전국 초중고교생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정직지수’를 조사한 결과 고교생의 56%가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했다. 이는 중학생에서 39%, 초등학생에게서도 17%의 비율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이 기성세대를 통해 법보다 돈이나 권력이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학습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사법기관이 양형기준을 높이고 전관예우를 근절하는 등 자구적 노력을 통해 준법 인식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보일 필요가 있다”며 “법을 집행하는 주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 자체에 대한 불신 풍조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언제부터 어떻게 왜 잘못돼 왔나

이 같은 사회 분위기가 조성된 배경에는 범죄와 잘못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공정하고 적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가 ‘실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흠결이 적지 않은 인사들이 고위직에 대거 등용됐고 이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성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해외 자원외교, 종편 개국 등을 둘러싸고 무수한 의혹들이 쏟아지고 미심쩍은 정황들이 포착됐지만 면밀한 진상조사와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여권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면서 해당 의혹들은 해소되지 못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인사 문제를 노출했고 임기 후반기인 현재까지도 고질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몇 차례 대대적인 사정을 선언했지만 번번이 변변한 ‘실적’ 없이 칼을 거둬야 했던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적 해이 풍조가 만연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시각이 늘고 있다. 국무를 담당하는 장관들이 위장전입 정도는 간단한 사과 한 차례로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 속에 처벌 자체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 세태가 자리잡은 것이다. 각종 과태료와 벌금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영업을 지속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음주 및 성범죄가 더욱 활개를 치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한 뚜렷한 범죄 혐의점이 드러났음에도 불체포 특권을 가진 국회의원, 갖가지 병치레를 핑계로 감옥이 아닌 병원에 머무는 재벌 총수, 비리 의혹으로 옷을 벗었으나 버젓이 변호사 개업과 함께 전관예우를 받는 판검사들의 사례를 접하면서 일반 서민들의 준법 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창희 기자 allnew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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